
“차세대 항공전투 시스템 개발 사업이 전혀 진전이 없다. 이대로 놔둘 수가 없다.”(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이런 야심 찬 개발 사업은 각국의 이해가 충돌하기에 시행이 매우 어렵다. 필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1000억 유로(약 160조원)가 넘게 들어가는 독일과 프랑스·스페인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이 삐거덕거린다. 올해 말까지 갈등을 해결해야 2단계 사업이 진행되지만 독일과 스페인의 계약 준수 요구를 프랑스가 거부하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유인에도 유럽의 방위력 증강은 쉽지 않다.
첨단 신무기체계 개발 협력 3국
일자리 배분·의사결정 갈등 지속
시너지 살릴 정치적 타결 필요
2017년 5월 39살의 나이로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한 마크롱은 그해 9월 파리 소르본대에서 미국에 대한 지나친 안보 의존을 탈피해야 유럽의 주권을 확립할 수 있다며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 유럽의 협력 강화를 제안했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 통합을 주도해온 독일은 이 요구에 응해 ‘차세대 항공 전투시스템(FCAS)’ 개발에 합의했다.
FCAS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술을 장착한 6세대 전투기와 첨단 드론, 신제트 엔진, 센서 등을 포괄하는 신무기 개발 계획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쓸모가 입증된 드론의 경우 조종사와 함께 작전을 할 수 있는 자율조정 드론을 개발한다. ‘전투 클라우드(Combat Cloud)’는 원격의 안전한 네트워크로 각종 작전과 전투에서 수집하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육해군 및 우주군 간에 공유하고 다른 군 사이의 통신도 가능하게 해준다. 2040년부터 실전 배치되며 내년부터 시험용 전투기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

프랑스의 기술력에 독일 자금 결합
FCAS는 총 사업비 1000억 유로가 넘는 대규모 사업으로 2019년 스페인도 합류해 유럽 주요 3개국의 협력 사업이 됐다. 합의 초기에는 이 개발 사업의 성공이 요원한 듯했다. 하지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럽의 안보가 위협받고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의 안전보장자 역할을 점차 줄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유럽의 자주국방 향상에 필수 사업이 됐다.
하지만 사업의 시급성에도 3개국 사업자 간의 분업과 의사 결정 방식의 이견이 사업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주사업자는 독일의 에어버스방위항공, 프랑스의 다소항공, 스페인의 인드라(Indra Systemas)다.
FCAS에서 가장 중요한 차세대 전투기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다소항공은 더 많은 정책 결정권을 요구해왔다. 모든 의사 결정이 ‘1국 1표’로 이뤄지는 탓에 수년간 함께 일하며 실력이 검증된 자국의 우수한 협력업체조차 단독으로 선정하지 못하고 일이 너무 지체된다며 불만이 폭증한 것이다. 반면 독일과 스페인은 어렵게 합의한 ‘1국, 1표’ 의사 결정 변경 시도를 계약 위반으로 보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우주항공산업의 발전과 자주국방 강화를 목표로 한 사업이지만 세 나라 모두 관련 일자리 창출 확대를 노린다. 프랑스가 전투기 개발을 주도하더라도 협력업체 결정과 일자리 배분은 계약대로 합의해 나누자고 독일과 스페인이 요구하는 이유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일 독일 일간지 파츠(FAZ)와의 인터뷰에서 “공장 건설 유치와 일자리 창출 규모 등에서 합의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소는 프랑스 공군의 주력기인 라팔(Rafale)을 개발해 수출까지 해왔다. 에릭 트라피에 다소 최고경영자(CEO)가 “6세대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보유한 만큼 단독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프랑스의 문제는 기술력은 있지만 부족한 자금이다. 올해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500억 유로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 5월에 출범한 독일의 메르츠 정부는 앞으로 12년간 1조 유로(약 1600조원)가 넘는 돈을 인프라와 국방비 증액에 지출한다. 이 중 절반인 5000억 유로를 국방비 증액에 쓴다. 독일의 자금이 없으면 설령 기술을 보유했다 해도 6세대 전투기 개발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를 아는 독일과 스페인이 함께 프랑스에 계약 준수를 압박하는 것이다.
세 나라의 밀고 당기기 속 국방장관들이 몇 차례 만나 쟁점에 대한 타결을 시도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독일 내에서는 스웨덴으로 협력 파트너를 교체하거나, 영국·이탈리아·일본이 함께 진행 중인 ‘글로벌 항공전투 개발 사업(GCAP)’ 참여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22년 12월 시작된 GCAP는 2035년부터 실전 배치될 예정이며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안보 협력에 적극적인 영국조차 독일의 뒤늦은 GCAP 합류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걸림돌이다.

에어버스의 성공 사례 기억해야
프랑스는 국방비 증액에 적극적이다. 2026년 예산에서 복지 관련 지출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국방비를 크게 증액하려고 하면서 유권자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67억 유로의 국방비 증액을 예산안에 포함시켰던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지난달 초 실각했다. 총리 교체 후 복지 예산 삭감 폭을 줄이긴 했지만 국방비 증액은 유지하려고 한다.
각국이 제 갈 길을 찾기보다 올해 안에 메르츠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이 만나 정치적 타결을 해야 한다는 게 유럽 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1970년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 보잉사에 대적할 민항기 제조사 에어버스를 설립했다. 스페인이 이듬해 합류했고 현재 에어버스와 보잉이 세계 민항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2003년부터 유럽 영공을 수호하고 있는 4.5세대 다목적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Eurofighter Typhoon)’도 독일과 영국·스페인·이탈리아가 참여한 전투기 개발 사업을 통해 탄생했다. 이처럼 항공기 공동 개발의 시너지를 익히 알고 있는 세 나라인 만큼 결국엔 이견을 조정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유럽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안병억 대구대 국방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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