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고 안에서 흔들렸다…10대 키워드로 돌아본 2025년 대중문화

2025-12-25

2025년 대중문화계는 한국 영화의 부침과 K콘텐츠의 확장, 그리고 연예계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며 유난히 진폭이 큰 한 해를 보냈다. 콘텐츠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고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을 넓힌 동시에, 내부에서는 사건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올 한해 대중문화를 관통한 10가지 키워드로 다사다난했던 2025년을 뒤돌아봤다.

1. ‘케데헌’ 신드롬…K콘텐츠의 확장

‘K콘텐츠’는 올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와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를 통해 또 한 번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난 6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케데헌>은 누적 시청수 3억 회를 돌파하며 넷플릭스 역대 영화·쇼 전체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OST 앨범은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의 정상에 올랐고, 주인공 헌트릭스가 부른 주제가 ‘골든’은 애니메이션 OST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달성하는 등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발매됐던 로제의 싱글 ‘아파트’(APT.)의 인기는 올해도 뜨거웠다. 로제가 미국 가수 브루노 마스와 듀엣한 ‘아파트’는 발매한 지 1년이 지난 11월까지 빌보드 ‘핫100’에 머물며 56주 연속 차트인 신기록을 세웠고, 지난 9월 미국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K-팝 최초 ‘올해의 노래’를 수상했다. 로제는 오는 2월 열리는 제6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노래’ 후보에 오르며 글로벌 무대에서 K팝 솔로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입증했다.

2025년 한국 영화계에 ‘대박’은 없었다. 천만 영화는 고사하고, 올해 500만 누적 관객 수를 넘은 한국 영화는 <좀비딸>(563만 명)이 유일하다. 337만 명을 동원한 <야당>이 그 뒤를 잇는다.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간 텐트폴 작품은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300억 제작비의 <전지적 독자 시점>(106만 명)이 대표적이다. 봉준호·박찬욱 감독도 구원투수가 되지 못했다. 봉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17>(301만 명)과 박 감독의 <어쩔수가없다>(294만 명)는 국내 흥행에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 영화들의 잇단 흥행실패로 인해 투자가 줄었고, 이는 한국영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제작환경에 이르렀다. <서울의 봄>(2023)으로 1300만 관객을 모은 김성수 감독과 <파묘>로 12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장재현 감독은 지난 10월19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미쟝센단편영화제 올해 한국영화는 ‘붕괴’했다고 말했다.

다만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로서 13년 만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 한국 장편영화가 아예 초청받지 못한 충격을 상쇄한 낭보였다. 최근 <어쩔수가없다>는 오스카(아카데미상) 레이스에 본격 진입했다. 미국 골든글로브 3개 부문 후보와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예비후보 등에 올랐다.

올해 우리 극장가는 누적 관객 수 ‘1억’을 가까스로(24일 기준 1억163만 명) 사수했다. 해외 애니메이션이 선전한 덕이 크다.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1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700만 명), 2위와 5위는 각각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568만 명)과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342만 명)이었다.

작품의 높은 완성도와 충성도 높은 팬덤이 흥행을 견인했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원작 만화로 팬층이 견고하다.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굿즈가 ‘N차 관람’을 유도했고 4DX, IMAX 등 기술특별관에서의 재관람 수요도 높았다. 국내에서는 이우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50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 오컬트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엿봤다.

한국 영화의 위기 속에서도 옹골차게 빛나는 독립영화들이 있었다.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인 ‘주인’(서수빈)의 찬란한 열여덟 살을 담았다. 무거운 주제를 섬세하고도 희망차게 풀어낸 이 작품은 평단과 대중의 호평 속에 18만 관객을 모았다.

사회 주변부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낸 수작이 많았다. 중소기업 현장 실습생들의 불안한 매일을 포착한 <3학년 2학기>(이란희 감독), 북한이탈주민 동성애자 ‘철준’(조유현)의 서울 적응기를 담은 <3670>(박준호 감독), 지방 소도시 학생들의 미묘한 우정을 그린 <여름이 지나가면>(장병기 감독) 등이다.

연상호 감독이 제작비 2억으로 만든 영화 <얼굴>(107만 명)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촬영 회차와 인건비를 줄이고 출연진과 제작진은 최소 비용으로 참여하는 대신 영화 수익에 따라 ‘러닝 개런티’를 약속받았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영화가 속출한 가운데, 영화 제작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다.

2025년은 장르물보다 스토리의 힘이 강한 드라마가 사랑받은 해였다. 따뜻한 봄에는 애순과 관식이(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찬 바람 부는 가을에는 ‘김부장’(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 우리를 울리고 웃겼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장르물 시리즈가 쏟아졌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배우 전지현과 강동원(<북극성>), 마동석(<트웰브>), 소지섭(<광장>), 고현정(<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이영애(<은수 좋은 날>) 등 톱스타들이 오랜만에 드라마에 얼굴을 비췄지만 아쉬움을 남겼다.

문법에 갇히지 않은 작품들이 오히려 범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두 여자의 애정 어린 우정 일대기를 담은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은 소재 측면에서 흥행을 예상한 이가 적었으나, 섬세한 감정 표현과 배우 김고은, 박지현의 열연에 힘입어 화제작에 올랐다. 판타지 사극 tvN <폭군의 셰프>는 고증에 갇히기보다 B급 감성과 요리의 화려함을 끝까지 밀어붙여 17%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가요계에서는 5세대 아이돌의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대형 기획사들은 ‘젠지’(Z세대·1995∼2010년 출생자) 감성을 전면에 내세운 신인 그룹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건 혼성그룹 ‘올데이프로젝트’의 선전이다. 흔치 않은 남녀 혼성 구성에 힙합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인 음악으로 아이돌 팬덤은 물론 대중들의 인기를 끌어모았다. SM의 ‘하츠투하츠’와 스타쉽의 ‘키키’, JYP의 ‘킥플립’과 하이브의 ‘코르티스’ 등도 5세대를 대표하는 아이돌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대기만성형’ 아이돌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그룹 엔믹스는 타이틀곡 ‘블루 발렌타인’으로 데뷔 3년여 만에 첫 음악방송 1위와 음원차트 월간 1위를 달성했으며, 지난달 첫 단독 콘서트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룹 우주소녀 출신 다영은 지난 9월 발매한 솔로곡 ‘바디’로 지상파 음악방송 1위는 물론 ‘바디 챌린지’ 열풍을 이끌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들의 행보도 주목받았다. 지드래곤은 올 초 11년 만의 정규앨범 <위버맨쉬>를 발표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증명했고, 블랙핑크는 2년 만에 완전체로 월드투어에 나서며 글로벌 영향력을 과시했다.

2025년은 해외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내한공연이 유독 풍성했다. 지난 4월 밴드 콜드플레이를 시작으로 건스 앤 로지스, 펫메시니, 라우브, 뮤즈 등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들이 한국관객을 만났다. 특히 15년 만에 재결합한 밴드 ‘오아시스’의 콘서트는 하루 공연에 5만5000여 명을 동원하며 단일 공연 기준 국내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힙합 아티스트들도 많았다. 카녜이 웨스트, 트래비스 스캇, 도자 캣 등은 대형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열띤 공연을 펼쳤다.

일본 아티스트들의 내한공연도 이어졌다. 일본 내에서 독보적 인기를 자랑하는 밴드 ‘미세스 그린애플’, 영화 <체인소맨>의 OST 등 다양한 히트곡을 부른 요네즈 켄시, 싱어송라이터인 아이묭, 호시노 겐과 버추얼가수 하츠네 미쿠 등 일본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찾았다. 스파이에어, 챤미나, 세카이노 오와리 등 한국에도 인지도가 있는 일본 가수들도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2025년 방송계에서 스포츠는 가장 뜨거운 키워드 가운데 하나였다. 배구, 야구, 복싱 등 종목을 넘나든 스포츠 예능들은 실제 경기 못지않은 리얼리티와 감동을 앞세워 경기장의 열기를 안방으로 옮겼다.

<신인감독 김연경>(MBC)은 ‘배구 레전드’ 김연경이 감독으로 변신해 팀을 이끌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아내며 큰 화제를 모았다. 선수들을 향한 독설과 애정 어린 피드백, 승패에 따라 울고 웃는 현장의 감정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김연경의 스타성과 리더십, 그리고 선수들의 성장 서사를 동시에 부각시켰다. 스포츠 팬은 물론 예능 시청자까지 끌어안은 이 프로그램은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당초 계획보다 회차를 늘려 총 9회로 마무리됐다.

피지컬 경쟁의 무대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한 <피지컬: 아시아>(넷플릭스)와 권투 서바이벌 <아이 엠 복서>(tvN)은 ‘경쟁’과 ‘승부’라는 스포츠의 본질에 충실한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미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골때리는 그녀들>(SBS)과 <최강야구>(JTBC)도 시즌을 거듭하며 브랜드 예능으로 자리매김했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2025년 방송가에서 가장 풍성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장르였다. 이른바 ‘연프’는 하나의 유행을 넘어 플랫폼 경쟁을 좌우하는 핵심 IP로 자리 잡았고, 시즌제 화제작과 신개념 포맷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특히 관계 설정과 출연자 구성, 감정 수위를 세분화하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환승연애4>(티빙)와 <나는솔로>(ENA)는 기존 팬덤을 공고히 하며 ‘연프 유니버스’를 확장했다. 여기에 <내 새끼의 연애>(tvN STORY)와 <진짜 괜찮은 사람>(tvN) 등 가족이나 지인이 관찰자로 참여하는 포맷이 연애 예능의 새로운 하위 장르로 떠올랐다. 남매가 함께 출연한 <연애남매>(JTBC),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리얼리티 <너의 연애>(웨이브), 연애와 다이어트를 결합한 <잘빠지는 연애>(TV조선) 등 이색 포맷으로 특수성을 앞세운 프로그램들도 눈길을 끌었다.

2025년 연예계는 크고 작은 논란과 사건이 잇따르며 바람 잘 날 없던 한해였다. 친근한 이미지로 사랑받던 얼굴들이 사생활 논란과 과거 범죄 문제로 연달아 퇴장 위기에 놓이면서 대중에게 실망을 안겼다.

올 초 배우 김수현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며 상반기 공개 예정이었던 김수현 주연의 디즈니+ 시리즈 <넉오프>의 공개가 무기한 연기되는 등 파장이 일었다. 또 다수의 연예인이 참석한 ‘W 매거진 코리아’의 유방암 자선 파티가 선정적 연출과 상업성 논란에 휩싸이며 대중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배우 조진웅은 청소년 시절 범죄를 저질러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 범죄 전력을 인정하고 하루 만에 은퇴를 선언해 충격을 안겼다. 예능계에서는 박나래가 갑질과 불법 의료 행위 논란에 휘말렸고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이 제기된 후 예능에서 하차했다.

더불어 이순재, 전유성, 김지미 등 한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던 원로들의 세상을 떠나며 한 시대의 퇴장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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