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있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신문사에 합격했을 때 사보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실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매일 매일의 ‘일용(日用)할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기사를 놓쳤다는 지적이었다. 내가 가야 할 현장, 내가 쓰고 싶은 기사에 관한 고민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Ⅱ’는 하노와 마크리누스, 두 인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로마제국의 변방, 누미디아의 지휘관이던 하노는 로마 군(軍)에 아내를 잃고 그 자신도 노예로 끌려간다. 검투사가 된 그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오로지 로마제국을 향한 적개심이다. 마크리누스는 하노의 분노를 이용해 음모를 꾸미는 야심가다. 그는 하노에게 말한다. “노예의 꿈은 자유가 아니라 다른 노예를 사는 거”라고.
두 사람은 목적이 다르다. 싸우는 곳도 다르다. 마크리누스는 콜로세움을 발판으로 정치권력을 거머쥐려고 한다. 하노의 무대도 콜로세움이지만 그의 적은 동료 검투사가 아니다. 부정부패에 썩어 들어가는 로마제국이다. 두 사람의 결투 장소가 ‘닫힌 콜로세움’이 아니라 로마군 장병들이 지켜보는 ‘열린 벌판’이란 점은 상징적이다.
“문제는 ‘어디서 이기고 싶은가?’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보라. 생각하고 생각하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생각해서, 선택해라.” 일본 만화 ‘중쇄를 찍자’에서 출판사 사장이 젊은 시절 방황할 때 만났던 노인의 충고다.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는 갈등들을 보노라면 과연 ‘어디서 이기고 싶은지’ 묻고 싶어진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걸까.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진짜 이기고 싶은 곳이 어딘지는 알아야 한다. ‘내가 설 콜로세움’을 그쪽으로 옮겨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