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일 관세 협상 타결의 핵심 역할을 한 일본의 5500억달러(약 75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미국은 일본의 5500억 달러를 강조하면서 한국을 향해서도 ‘통 큰 투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재계도 관세 협상에 대비해 1000억달러(13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미국에서 일자리 창출 기여도가 가장 높은 국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금융지원·투자 계획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는 8월 1일 관세협상 마감 시한을 앞두고 미국은 한국에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최근 4000억달러(55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4000억달러 투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557조원으로 일본(609조엔·5706조원) 절반도 되지 않는다. 경제 규모가 다른데 같은 수준의 투자금액을 요구하는 건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이다.
한국 재계의 1000억달러 투자 계획과 일본의 5500억달러를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다. 일본은 ‘대출’ 등 금융지원 성격이 강하지만, 한국은 직접 생산시설 투자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 임기 4년간 210억달러(29조원)를 미국에 직접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계획엔 앨라배마·조지아공장 설비 현대화, 제철소 건설, 자율주행·로봇·인공지능(AI) 기술 투자 확대 등이 포함된다.

특히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 비영리단체 ‘리쇼어링 이니셔티브’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미국 내 일자리 창출 기여도 1위 국가는 한국으로 전체의 31%를 차지했다. 일본(6위·5%)보다 6배 이상 높다. 투자 건당 평균 창출하는 일자리도 509개로 2위인 중국(199개)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대규모 공장이나 생산시설을 짓고 미국인을 직접 고용하는 경우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25일 미국의 면을 세워주면서도 한국의 실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제 규모는 일본의 절반 정도이고 일본이 5500억달러를 약속했으니 한국은 그 절반 정도인 2500억~3000억달러 정도에 상응하는 규모의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 규모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면을 세워주면서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 미국의 예봉을 피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일본은 엔화가 국제통화여서 대미투자에 외환보유고를 동원할 필요가 없지만, 한국은 1000억달러만 투자해도 외환보유고의 4분의 1이 줄어든다”며 “(4000억달러를 내느니) 차라리 트럼프 행정부 임기 4년간 25%의 관세를 부담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