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PICK] ‘신뢰의 붕괴’…캄보디아 납치 사태가 산업계에 던진 경고

2025-10-15

산업을 움직이는 단어 하나, 그 안에 숨은 거대한 흐름을 짚습니다. ‘키워드픽’은 산업 현장에서 주목받는 핵심 용어를 중심으로, 그 정의와 배경, 기술 흐름, 기업 전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차분히 짚어봅니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 기술의 흐름 속에서, 키워드 하나에 집중해 그 안에 담긴 구조와 방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범죄 산업으로 확장된 ‘스캠 콤파운드’의 실체

캄보디아의 범죄 양상은 이미 단순한 온라인 사기를 넘어섰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전역에 최소 50개 이상의 스캠 콤파운드가 존재하며 이들 시설이 인신매매·강제노동·고문을 자행하는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밝혔다. 폐허 호텔이나 카지노 건물을 개조한 이 시설들은 외국인을 고수익 아르바이트나 취업 명목으로 유인해 여권과 휴대폰을 압수한 뒤, 온라인 사기나 가상자산 범죄에 동원하는 구조다.

문제는 최근 피해가 한국인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캄보디아 보꼬르 산 인근에서 발견된 한국인 대학생의 피살 사건이 공개되며 여론이 폭발했다. 해당 사건은 중국인 3명이 체포되며 수사가 진행 중이나, 현지 조직 범죄와 공권력의 결탁 의혹까지 불거지며 파장은 더욱 커졌다. 한국 정부는 10월 10일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하고 프놈펜 지역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으며, 15일에는 외교부·경찰청·국정원이 참여한 합동대응팀을 현지로 급파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사이 캄보디아 내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감금·실종 사건은 330건을 넘었고, 이 중 80건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단일 국가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인신구속 사건이 집중된 것은 전례가 없기에 이번 사태는 단순한 안전 문제가 아닌 국가 신뢰와 산업 안전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

투자와 인력 운영, 변화의 흐름이 시작됐다

캄보디아 사태는 산업계의 투자와 인력 운영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국내 보안 업계에서는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보안 컨설팅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일부 보안 전문기업들은 동남아 각국 정부·기업을 대상으로 보안 인프라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며 ‘K-보안’ 브랜드 확산에 나서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형 EPC(플랜트) 및 인프라 운영 기업들의 보안 수요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국내 한 보안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해외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현지 치안 리스크를 체감하면서 사업 착수 전 보안 컨설팅이나 정보보호 예산을 별도 항목으로 관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과거에는 형식적인 점검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안전이 비용으로 현실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한 해외 리서치 기업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험업계에서도 캄보디아·미얀마 등 위험국가의 납치·몸값(K&R) 보험료가 15~20% 인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해외 파견 인력 관리 체계 역시 재검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미동남부상공회의소는 최근 열린 연례 행사에서 “한국 기업 주재원 교육과 안전관리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이 파견 인력에 대한 보호 패키지 제도(보험·의료·보안 지원)를 확대하고 고위험 지역의 파견 승인 절차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또 한국은 원래부터 파견근로 비중이 낮은 구조다. KDI의 ‘파견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임금근로자 중 파견 비율은 약 1% 수준으로, 일본·독일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런 배경은 오히려 기업들이 파견 인력 전략을 재검토할 여지가 크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서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낮은 파견 비중 때문에 기업들이 로컬 인력 비율을 늘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SG와 금융으로도 번지고 있는 위기감

이번 사건은 산업 신뢰의 균열을 보여준 동시에 기업의 ESG 평가 체계에도 새로운 변수를 던졌다는 점에서 더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글로벌 발주사와 금융기관은 협력사의 인권·안전 관리 수준을 ESG 평가의 핵심 지표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인권 리스크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게 되면 이는 단순한 평판 문제를 넘어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직결될 수 있다.

무역보험공사(K-SURE)와 수출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은 최근 고위험 국가의 정책·사회 리스크 계수 반영을 강화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투자 보증과 대출에서 국가별 리스크 가중치가 확대되는 추세”라며 “캄보디아는 단기적으로 ‘보증 한도 축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결국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이 위험도가 높은 지역을 회피하고 베트남·태국 등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투자와 생산 거점을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산업의 핵심 가치사슬이 비용보다 신뢰를 기준으로 재조정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신뢰를 복구하지 못하면 산업도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히 캄보디아의 치안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납치와 인권침해가 구조적으로 확산하는 환경에서는 어떤 산업도 안전하게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합동대응팀을 일회성 조치에 그치지 않고 해외 인력보호 상설기구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기업 또한 단독 대응을 넘어 산업별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업계에서는 KOTRA, 대한상공회의소, 무역보험공사 등이 공동으로 ‘해외 리스크 맵’과 현지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이 조기 경보를 받고 비상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산업 보호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글로벌 산업이 의존해온 신뢰의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기술력과 자본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력의 안전과 인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산업 경쟁력은 존재할 수 없다. 이제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속도도, 규모도 아닌 산업을 이끄는 핵심 개체인 사람을 지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만약 이 기초적인 힘이 마련되지 않고 무너진다면 공급망과 시장도 모두 함께 무너지고 말 것이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