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전 정부가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막았던 ‘국회 증언·감정법(증감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내용은 더 강력해졌다. 국회에 불출석한 증인을 사실상 국회의 모든 회의에 불러낼 수 있도록 했다. 상법과 노란봉투법에 이어 증감법까지 ‘기업 족쇄법’이 될 수 있는 법안들이 줄줄이 재추진되자 재계는 긴장하고 있다.
1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민희 민주당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11일 증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국회 동행명령 범위를 국정감사·국정조사에 한정했는데, 이를 상임위원회 전체 회의 등 일반적인 경우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해 민주당이 추진했던 증감법 개정안은 동행명령 범위를 ‘중요한 안건 심사 및 청문회’까지 확대하도록 했는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그 범위가 대폭 넓어졌다. 지난해 말 증감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365일 내내 기업인을 국회로 부를 수 있는 법’으로 보고 있다.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낸 총수 또는 최고경영자(CEO)를 국회가 언제든 다시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국회 과방위는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 청문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는데, 최 회장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대미 통상 관련 행사 참석 때문에 출석할 수 없다는 사유서를 냈다. 개정안 통과 시, 이런 경우 시기와 상관없이 출석을 강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은 경영진에 대한 소환이 일상화되고, ‘총수 망신주기’식 출석이 잦아질 수 있다며 반발한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현장에서 움직이는 기업인의 경영 활동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피의자도 아닌 기업인을 상시로 부를 수 있는 법을 만든다면 국회가 ‘무소불위 권력’이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은 또 동행명령을 거부하면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허위 진술을 하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각각 부과하는 조항도 신설했다. 이는 현행 증감법 제12조의 형사처벌(징역 또는 벌금)과 중복돼, 헌법상 이중제재 금지원칙·과잉금지원칙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의성이 없는 단순 불출석까지도 고액 과태료 부과가 가능해져 기업 부담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지난해 추진한 개정안에 담겼던 ‘자료 제출 요구를 개인정보보호 또는 영업비밀보호 등을 이유로 거부할 수 없다’는 조항은 이번에 제외됐다. 기업의 기밀 침해라는 비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는 전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들이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 주도로 일방적으로 처리될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경우 경제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달라는 호소가 나온다. 김병기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은 공정한 시장 질서와 코스피 5000시대를 여는 출발점인 만큼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상법 개정은 취지와 달리 헤지펀드의 공격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부작용이 너무 클 수 있다”며 “재계와 대화를 통해 대안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