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게임업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코로나 때 호황의 역풍을 정통으로 맞았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국내 최대규모의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가 500명 이상의 희망퇴직 접수를 진행 중이고, 넷마블 에프엔씨, 컴투스, 데브시스터즈, 쿡앱스 등 공식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인원 감축은 물론, 넥슨처럼 게임 프로젝트 종료 및 스튜디오 폐쇄 결정을 한 회사들을 합치면 두 자릿수가 넘는다.
2024년 한국 게임업계의 불황은 2012년 이후 최대 수준인 ‘역대급 찬바람’이라고 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이 불황에는 코로나 시절 게임업계로 몰려든 막대한 투자 금액이 회수되고, 한국 게임의 고질적인 특징인 ‘모바일 MMORPG 쏠림 현상’에 염증을 느낀 유저들이 줄어드니 투자금과 시장 규모가 같이 줄어드는 암울한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20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최대의 종합게임쇼인 지스타 2024는 게임업계 불황을 극복하려는 듯 대규모 부스 운영과 행사를 운영해 올해도 대규모 방문객 유치에 성공했으나, 전체 행사 진행 내용과 각 기업의 신작 게임들에 대한 전시와 행사 내용은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었다.
먼저 부정적이었던 요소들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지스타 흥행을 책임지고, 또 실제로 지스타 운영과 규모를 결정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 게임 회사 부스들은 올해도 흥행에 성공했지만 불안한 요소들이 있었다.
가령 현재 한국 게임산업에서 새로운 신시장으로 주목받는 콘솔 게임 시장에 도전장을 낸 ‘붉은 사막’을 개발 중인 펄어비스는 역대 최대규모 부스에서 붉은 사막의 게임플레이 시연을 최초로 공개하여, 수많은 관람객이 3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플레이했으나, 그 평가는 크게 갈려 ‘호불호 게임’으로 남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난이도 때문이다. 펄어비스는 시연에 참여하는 유저들에게 20분 이상 상영해주는 세계관과 조작법 설명 영상을 시청했음에도 게임패드와 키보드를 사용한 조작이 지나치게 복잡하여 일부 유저들만 시연 버전에서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또한, 로딩 없는 광활한 세계를 구현하는 오픈 월드 게임으로 개발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픈 월드를 선보이지 못하고 세 종류의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 시연만 가능한 일명 ‘지스타 빌드’를 선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또 다른 대형 부스였던 카카오게임즈 산하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는 거대한 부스를 내고 개발 중인 신작 게임 4종을 공개했으나, 실제 시연이 가능했던 게임인 ‘발할라 서바이버’는 게임의 재미 요소에 대한 호평은 있었으나 지난 2022년 발매되어 엄청난 인기를 끈 1인 개발자의 인디게임 ‘뱀파이어 서바이버즈’(Vampire Survivors)의 게임플레이 방식과 구성을 그대로 답습한 매우 간단한 게임플레이를 가진 모바일 게임이어서, 대작 게임을 기대했던 유저들에게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반면 게임성을 증명하여 현장에서 호평받고, 게임플레이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얻은 회사들도 있었다. 크래프톤이 출품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의 경우 올해 8월 공개한 캐릭터 생성 기능에 생활형 콘텐츠가 추가된 버전을 선보였는데, 한국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이나 미국 대도시 등 실제 도시를 모방한 생활권에서 분식집 떡볶이를 먹거나 해수욕장을 거닐고, 기타 연습이나 일을 하는 등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체험해보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의 주요 요소들을 많이 구현하여 유저들에게 호평받았다.
넥슨이 이번 지스타에서 처음 공개한 ‘프로젝트 오버킬’ 또한 게임성에 대해서 호평받은 대형 부스 중 하나였다. 지금의 게임 왕국 넥슨을 만드는데 이바지한 ‘던전앤파이터’의 세계관을 계승한 프로젝트 오버킬은 2D 그래픽으로 만든 던전앤파이터의 느낌을 3D로 옮겨서 특유의 타격감과 싸우는 재미를 잘 살렸다.
프로젝트 오버킬은 비록 혁신적인 신기술이나 창의적인 게임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사용자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타격감 좋은 액션 RPG의 정석을 구현하여 많은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필자가 시연 중에 중국 대형 게임 회사 담당자가 필자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의견을 묻는 등 유저는 물론 국내외 퍼블리셔들도 큰 관심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지스타에서 우리 한국 게임이 보여준 또 다른 가능성은 중소 게임 기업 및 인디게임의 질적, 양적 성장이었다. 코로나 사태 전후로 지스타는 대형 개발사들뿐만 아니라 1인 혹은 소규모 팀 단위로 개발하는 인디(Indie)게임의 부스를 점차 늘려왔는데, 이번 지스타에서는 대형 기업 부스뿐만 아니라 소규모 인디게임 및 스타트업 게임에도 많은 유저가 방문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이용하는 플랫폼인 스팀(Steam)에 입점했거나 입점을 준비한 게임들은 그동안의 비공개 테스트와 데모 공개를 통해 받은 유저 피드백으로 더욱 발전된 게임을 이번 지스타에서 선보였다.
가령 2인 개발자로 이루어진 이프문게임즈(IF Moon Games)의 ‘RIM: 영혼의 항아리’나 오민랩(5MIN Lab)의 ‘PMC 매니저’의 경우 현재 유행 중인 ‘뱀서류 액션 게임’이나 ‘자동진행형 시뮬레이션 게임’의 대중성은 유지하면서도 다른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액션이나 게임플레이를 제공하여 게임의 핵심 가치인 ‘재미’를 찾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행사장 밖에서도 소규모 개발사들의 독특한 행보가 눈에 띄었다. 소규모 개발사인 ‘에피드 게임즈’가 내놓은 ‘트릭컬 리바이브’의 경우 최근 각종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저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행보로 급격히 성장 중인데, 이번 지스타에서는 전시 대신 대표와 부대표가 선거용 차량을 개조한 게임 홍보 차량을 타고 직접 유저들을 만나러 다녔다.
사용자들은 게임 회사 대표를 찾아가 사인과 악수를 요청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최근 유저들이 대형 게임사의 불통 행보에 항의하거나 일명 ‘트럭 시위’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중소 게임사가 유저 피드백을 받아 인기를 끄는 대단히 희귀한 모습이 펼쳐진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아무리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자주 쓰이지만, 현재의 한국 게임산업은 모바일 MMORPG의 흥행 부진과 유저들의 단체행동, 그리고 투자금과 매출의 동반 하락으로 희망적인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번 지스타에서는 이런 게임업계 불황 속에서도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추구하고, 서비스로서 게임의 필수조건인 유저들과의 소통과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 주체의 모습도 함께 보인 만큼, 게임업계가 지스타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부분을 잘 살려내어 내년 게임시장이 다시 희망을 찾길 기대해본다.
김민석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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