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자마자 커피 뿜을 뻔했다” 거장 빙의한 25살 ‘지휘 천재’

2025-06-19

김호정의 더클래식 in 유럽

검은 셔츠는 그의 몸집에 비해 좀 헐렁했다. 무대로 걸어 나올 때 실크 셔츠가 유난히 펄럭여 작은 체구를 휘감았다. ‘음악가를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 그래도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저 사람, 이 큰 무대를 장악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정도 생각은 그나마 올바른 편이다. 서양의 좀 알 만한 평론가 중에는 더 솔직한 평을 내뱉어 버린 경우도 있다. “얼굴만 보면 열두 살 같은 지휘자”라든지 “또 한 명의 수염 없는 지휘자” 같은.

그는 열두 살도 아니고, 수염 없는 소년도 아니다. 다만 지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소년 급제형 지휘자는 맞다. 2000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타르모 펠토코스키(Tarmo Peltokoski). ‘음악계에서 다음 스타는 누구?’라는 질문에 1번 후보로 올라 있는 인물이다. 이 귀여운 이름과 어려운 성(姓)을 기억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아직 한국에 온 적이 없는 지휘자다. 그의 지휘를 꼭 봐야 했다. 이제 지휘자의 나이가 어려지다 어려지다 못해 2000년생까지 내려갔다는, 그리고 천재성이 극대화되다 못해 2000년생이 바그너의 ‘반지’ 사이클 4부작을 (22세에) 이미 끝냈다는 충격 때문이다.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의 보자르 홀로 찾아갔다.

게다가 이날 무대는 바그너였다. 11세에 바그너를 처음 듣고 사랑에 빠졌다는, 그 후로 바그너의 모든 선율을 흥얼거린다는 타르모다. 초등학교 4학년 나이에!

공연 전 본 영상에서 동그란 안경을 낀 타르모는 범재들을 안심이라도 시키듯 이렇게 말했다. “아, 바그너의 ‘홀랜더’는 조금 늦게 접했어요. 한…. 열여섯 살?”

뭐? 늦은 나이 16세? (*‘홀랜더’는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가리킨다.)

이 소년풍 지휘자에 대해 사전에 많이 찾아봤지만, 아직도 상상이 잘 안 된다. 이날 무대 위 특별하게 더 큰 사이즈의 오케스트라, 최고 69세(바리톤 알베르트 도멘)인 경력직 성악가들, 거기에다가 두 개의 합창단까지 휘어잡아 바그너의 오페라를 완성하는 장면이 말이다. 아직도 그가 루빅스 큐브를 5초에 맞추는 챔피언이라거나,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 금메달 수상자라고 하면 더 쉽게 수긍할 것 같다.

이제 그가 지휘대에 올라 지휘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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