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인한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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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계엄 관련 소식만 보내드린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네요. 곧 계엄이나 탄핵 얘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도 전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시기와 내용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이런 불의의 참사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난 29일, 방콕에서 무안으로 향했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에서 활주로 담벼락과 충돌해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181명이 타고 있던 여객기에서 2명의 생존자만이 구조됐습니다. 참사 희생자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구조된 분들의 회복을 기원합니다.

오늘 레터는 이 소식으로 시작한 뒤 계엄 사태 관련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는 지난주 나온 가습기살균제 판결의 의미를 짚어보겠습니다.

지난 금요일(27일), 뉴스레터를 보내는 플랫폼 스티비의 서버 불안정으로 배송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메일을 늦게 혹은 못 받아보신 독자님들이 계셨을 거예요. 약속드린 시간에 메일을 보내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더불어 12월 17일, 스티비가 해킹돼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스티비는 점선면팀의 이메일 등이 유출됐지만 구독자들의 개인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

점선면은 오는 2025년 1월 1일 쉬어갑니다. 1월 3일 금요일에 새해 첫 메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점선면팀 드림

오늘의 주요 내용

💡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했다

💡 탄핵에 탄핵을 더해서

💡 그날 밤, 광란의 지시

💡 탄핵심판 첫 법정 풍경

💡 살균제 고른 '엄마' 책임인가요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 문재원 기자

단 둘만이 살아남았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도중 공항 구조물과 충돌한 뒤 폭발했습니다. 꼬리 날개 일부를 제외한 부분이 완전히 불탔습니다. 탑승객 181명 중 2명이 구조됐고 17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습니다. 생존자 2명은 모두 승무원입니다. 전남소방본부는 "구조자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누가 타고 있었나

크리스마스를 맞아 태국 방콕으로 3박5일 여행을 떠났던 승객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승객 175명 중 태국인 2명을 제외한 대다수가 한국인이었고, 승무원 6명이 함께 탑승했습니다.

전남·광주 주민들이 많았고, 한 해 농사를 마친 농민과 수능을 마친 전남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암 투병 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여성이 여객기에 탔습니다.

사고 원인은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29일 국토교통부 발표와 목격자 증언을 종합하면, 비행기가 새떼와 충돌했고 랜딩기어(바퀴)가 정상적으로 내려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장은 바퀴 대신 항공기 기체로 착륙(동체 착륙)을 시도했지만 속도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기체가 공항 끝단 구조물을 정면으로 들이받았고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탄핵에 탄핵을 더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헌정사상 첫 권한대행 직무정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소추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건 헌정사상 처음입니다. 이로써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습니다.

헌법재판관 임명할까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지가 주목됩니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 사유 중 하나는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였어요. 더불어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최 권한대행에게 재판관 임명 보류를 요청했고요.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고 계신다."

최 권한대행은 한 전 권한대행의 탄핵안이 가결되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한대행을 맡게 되더라도 헌법재판관 임명 등 적극적인 권한 행사가 어려울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경향신문 사설은 "'권한대행의 대행'은 우리 헌법에 없는 직위다"며 "국가 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것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내란 특검법' 및 '김건희 특검법' 공포도 남아있어요. 두 특검법을 공포하거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한은 오는 1월 1일입니다. 민주당이 최 권한대행 탄핵 여부를 판단할 1차 시점은 이날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작된 공식 일정

최 권한대행은 27일 대국민 담화로 권한대행으로서 첫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담화에서는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현 상황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굳건한 안보, 흔들림 없는 경제, 안정된 치안 질서 등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후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주재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최상목 권한대행과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습니다.

29일 최 권한대행은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전남 무안을 찾았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하고 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1월 4일 24시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광란의 지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공소장에 나온 '내란수괴' 행적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지난 27일 재판에 넘겼습니다. 검찰이 쓴 공소장에 12·3 비상계엄 때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발언과 행동을 했는지가 상세하게 담겼습니다. "체포의 '체'자도 꺼내지 않았다"던 석동현 변호사 말과 정반대로, 윤 대통령은 계엄 당일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들의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이 낸 보도참고자료에는 김 전 장관보다 윤 대통령이 더 많이 등장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가 정당하다고 주장한 윤 대통령의 12·12 대국민 담화를 조목조목 반박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공소장 내용을 보면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밤에는 국회에 출동한 이진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전화해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아직도 못 갔냐. 뭐 하고 있냐.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고 지시했습니다.

지난 4일 새벽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자 윤 대통령은 이 사령관에게 "국회의원이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것은 확인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계엄이)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했습니다. 조지호 경찰청장에게도 수차례 전화해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야.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야. 체포해"라고 말했습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단은 이 공소장에 대해 "픽션"이라며 검찰의 공소장 유출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범죄"라고 입장문을 냈습니다.

줄줄이 잡혀가는데

김 전 장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진 인물입니다. 군 장성들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속속 재판에 넘겨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내란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윤석열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세 번째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공수처는 조만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장이 나오더라도 경호처가 막아서면 집행에 실패할 수 있고, 체포에 성공하더라도 48시간 이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 검찰로부터 수사 기록을 넘겨받지 못해 윤 대통령을 불러도 조사 성과가 부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동안 바로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 측은 "공수처는 내란 혐의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30일자 사설에서 "(공수처는) 윤석열에 더이상 끌려다니지 말고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탄핵심판 첫 법정 풍경

정청래 국회 탄핵소추단장과 법률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권도현 기자

윤 대통령 측 연기신청 '기각'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이 지난 27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습니다. 변론준비기일은 재판부가 양측 입장을 듣고 증인·증거와 재판 일정 등을 조율하는 절차입니다. 전날까지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던 윤 대통령 측은 이날 오전 '출석하겠다' 밝히고 헌법재판소에 나왔습니다. 변호인들은 법정에서 "변론준비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국회 탄핵소추단장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날 헌재에 출석하면서 "내란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며 "헌재에서 가장 빠르게 윤석열을 파면할 수 있도록 소추위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측 소추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윤석열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지연 전략을 쓰리란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면서 "지연책에도 헌재가 제대로 된 심리를 거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헌재는 탄핵심판 변론준비기일을 내년 1월 3일 한 차례 더 열기로 했습니다. 윤 대통령 대리인인 윤갑근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탄핵심판에 직접 나와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한 온라인 방청 신청에 2만여 명이 몰렸는데요. 225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기회를 얻은 시민 10여 명이 방청석에 자리했습니다. 재판을 방청하러 온 박모양(13)은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탄핵 반대' 손팻말을 들고 방청한 시민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은 탄핵 찬반 의견이 모두 분출하며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정형식·이미선 헌법재판관. 권도현 기자

시간끌기 전략 '사전 차단'

헌법재판소는 변론준비절차에서 탄핵소추 사유와 쟁점을 정리하면서 이번 탄핵심판이 "형사재판이 아닌 헌법재판이다"라고 규정했습니다. 형사소송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을 주장하며 재판을 지연하려는 윤 대통령 측 전략을 사전에 차단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입니다.

윤 대통령 측은 형사재판에 준하는 수준으로 증거·증인 등을 검증해야 한다며 시간끌기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도 비슷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엄격한 입증 책임이 있는 형사재판 방식을 요구하고 90명에 달하는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지만 당시 헌재는 "형사재판이 아니라 헌법재판"이라고 거듭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2대 쟁점'은 헌법과 법률 위반입니다. 헌법 위반은 법적 요건과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계엄 선포가 헌법을 위반했는지입니다. 법률 위반은 계엄법 위반과 내란죄·대통령 권한남용·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 위반 여부입니다. 탄핵심판은 헌법 위반만 확인돼도 중대한 위헌이라면 '인용(파면)'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살균제 고른 '엄마' 책임인가요

지난 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동훈 기자

13년 만에 나온 '가습기메이트' 판결

독자님, 요즘 가습기를 사용하시나요? 겨울이면 편집국이 매우 건조해서 점선면팀은 가습기를 켜고 일합니다. 가습기를 닦을 때마다 수천 명의 피해자를 남긴 '가습기 살균제'를 떠올리곤 합니다.

피해가 처음 수면 위로 떠 오른 건 지난 2011년입니다. 여러 제품 가운데 '옥시싹싹'에 관해선 지난 한참 전인 2018년 이미 '유죄' 판결이 나왔는데요. 또다른 제품인 '가습기메이트'에 대한 판결은 무려 13년 만인 올해 나왔습니다.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SK케미칼·애경 관계자들은 '가습기메이트'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고 제조·판매해 98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2019년 7월 기소됐습니다. 1심에선 무죄를 받았지만, 지난 1월 2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옥시싹싹'을 만든 옥시 관계자는 2018년에 이미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2심 재판부는 '가습기메이트' 관계자들을 옥시와 '공동정범'으로 묶어 처벌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가습기메이트'와 '옥시싹싹'이 성분은 다르지만, 성분을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가 볼 때는 비슷한 상품이었고, 비슷한 유형의 제품을 제조·판매한 이들은 '공동의 주의 의무' 아래 있다고 본 겁니다.

"결과적으로 면죄부를 줬다"

지난 26일, 대법원이 이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가습기메이트'와 '옥시싹싹'은 성분이 다른 별개의 상품이므로 공동정범으로 묶어 처벌할 수 없다며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낸 겁니다. 대법원은 "그런 사정들만으로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한다면 인터넷망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쉽게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했습니다.

파기환송심에서 SK케미칼 등이 '옥시의 공범이 아니다'라고 최종 확정되면, 공소시효가 끝나 소송이 그대로 종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민단체는 "대법원이 결과적으로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합니다. 본인 포함 네 가족이 가습기살균제 후유증을 앓는 피해자 김선미씨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살균제를 직접 고른 엄마를 가해자로 지목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 점선면은 독자님의 의견을 담아 만듭니다. 그간 독자 방명록을 통해 레터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의견에서 의견으로 독자님들이 연결되는 장면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 동안 치열한 고민과 따뜻한 연대의 장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많은 이야기를 남겨 주세요. 그럼, 새해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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