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국제 해상 운송 산업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 UC 산타바바라(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Marine Pollution Bulletin에 발표한 논문에서, 항구에서의 화물선 대기 방식을 디지털화하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를 최대 24%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항만에서의 전통적인 '선착순' 방식 대신 선박이 이전 항구를 떠난 시점에 따라 하역 순서를 정하는 디지털 대기열 시스템을 도입하면, 선박들이 바다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어져 연료 소모와 배출량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연구진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1,100여 척 이상의 컨테이너선이 태평양을 횡단한 항로와 연료 사용량을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프로젝트 수석 저자인 레이첼 로즈 박사(UCSB 베니오프 해양 과학 연구소)는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CO₂ 배출을 줄이는 것”이라며 “이 시스템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로 빠르고 저렴하게 도입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이 시스템은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로스앤젤레스(LA) 및 롱비치(Long Beach) 항만의 병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처음 도입되었으며, 태평양 관리 시스템(PacMMS)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LA/LB 항만을 오가는 선박들의 평균 탄소 배출은 항차당 16~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글라스 맥콜리 UCSB 교수는 “마치 시속 85마일 대신 65마일로 운전해 연비를 높이는 것처럼, 선박들이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지 않음으로써 연료를 절약하고 배출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시스템은 설치와 운영 비용이 낮고, 기술적으로도 복잡하지 않아 전 세계 항만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로즈 박사는 “세계 9위 항만에서 불과 한 달 만에 시스템이 설계되고 작동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변화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해양 생태계 보호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연구진은 선박 속도를 줄이는 것이 멸종 위기 해양 생물인 고래와의 충돌 위험을 줄여주는 부수적 이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향후 이 시스템을 더 정밀하게 조정함으로써 추가적인 탄소 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평균 속도를 1노트만 낮춰도 연간 약 3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는 UCSB 외에도 NOAA, 캘리포니아 해양 보호구역 재단, 글로벌 낚시 감시국 등 여러 기관의 협력을 통해 진행됐다. 연구진은 디지털 대기열 시스템이 해운 산업 전반의 탈탄소 전환을 위한 실용적이고 신속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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