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1.4℃ 상승했다.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프로그램은 이 추세라면 5년 내 1.5℃를 초과할 것으로 내다본다. 1.5℃는 기후 피해가 급격히 심화되는 임계점으로, 국제사회가 목표로 삼는 기준이다. 올여름 우리나라 역시 기록적인 폭염, 집중호우, 홍수로 기후위기가 먼 미래가 아닌 '뉴노멀'임을 실감했다.
하지만 국내·외 기후정책은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잘해야 본전'의 함정, 즉 예방의 역설이 있다. 정책이 성공해 피해가 줄어들면 대중은 원래 별일 없었다 생각하며, 이는 예산과 정책 의지 약화로 이어진다. 1.5℃ 기후목표 달성을 위한 글로벌 탄소중립 추진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탄소중립은 결코 비용이 아닌 투자다. 미국 기후정책연구소(CPI)에 따르면, 올해부터 2050년까지 필요한 탄소중립 투자액은 266조달러에 달하지만, 이를 달성하면 경제적 피해가 1266조달러 줄어든다. 수익률이 380%에 이르는 고수익 사업인 셈이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탄소중립에 나서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첫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으로 국제사회 약속인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선언을 지켜야 외교적 신뢰와 무역 협상력이 유지된다. 둘째, 저탄소 경제 전환은 수소, 배터리, 탄소포집·저장(CCUS),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을 선점할 기회다. 셋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규제 강화로 수출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넷째, 화석연료 의존도 감소는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낮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온도 상승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빨라 선제 대응이 필요하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우리나라 탄소중립 투자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시장 가격 기능 정상화가 필수다. 배출권거래제 총량을 감축 목표에 맞춰 줄여나가고 무상할당 비중을 낮춰 탄소배출에 대한 명확한 가격 신호를 줘야 한다. 전기요금에 탄소배출 비용을 반영해 현실화하고, 지역별 한계가격제(LMP)를 도입해 송전망 효율화와 지역 재생에너지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 수요자원(DR), 가상발전소(VPP), 전기차(EV) 등 유연성자원도 발전자원과 동등하게 보상해 시장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이처럼 탄소배출 비용이 꾸준히 상승한다는 확실하고 장기적인 신호를 시장에 전달해, 질서 있는 탄소중립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기술혁신은 탄소중립 추진의 핵심 동력이다. 전력부문은 감축 효과가 크고 파급력도 높아,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원할 대규모 공공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탄소중립은 어림도 없다. 정유, 석유화학, 시멘트, 제철,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송, 건물 등 부문별 감축 기술과 잠재량이 크게 다르다. 각 부문에 맞는 에너지효율, 연료대체, 수소활용, 소형모듈원자로(SMR), 탄소포집·활용, 비이산화탄소 감축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더 이상 감축이 어려운 잔여 온실가스는 공기 중 직접포집, 광물탄산화, 육상흡수원·해조류 기반 제거, 해외 감축사업으로 대응해야 한다. 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탄소포집·활용을 혁신할 후보 물질 발굴, 스마트그리드, 자원순환, 탄소흡수원 관리와 모니터링에도 적용해야 한다. 기술혁신은 탄소중립의 사회적비용을 낮추고 정책 지속성을 높이며, 글로벌 규제 속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와 신산업 창출에 기여한다.
녹색금융은 이러한 변화를 촉진하는 핵심 수단이다. 명확한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와 측정·보고·검증(MRV) 고도화를 통해 투자 기준을 명확히 하고, 기후리스크 평가에 기반해 금융조건을 차등화해야 한다. 초기에는 공공금융이, 확산과 스케일업은 민간금융이 맡는 구조가 바람직하며, 공공·민간 자금을 결합한 혼합금융으로 민간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자본 유입을 촉진해야 한다. 공공구매 및 사전구매 약정으로 초기 시장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탄소중립 전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 관리도 중요하다. 화석연료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지역경제 침체와 일자리 감소에 대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며, 취약 산업과 계층을 지원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 완화를 위해 기후 적응형 보건체계 구축, 취약계층 보호, 재해·감염병 대비 체계 강화도 필수적이다.
결국 탄소중립 투자 수익률은 기후정책, 기술혁신, 녹색금융, 전환관리가 간 조화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데이터와 AI 기반의 최적 전략과 통찰, 즉 '넷제로 인텔리전스(Net-Zero Intelligence)'가 필요하다. 효과적인 기후정책을 위해서는 소비자 선호와 정책 수단에 대한 반응, 기업의 생산구조와 탄소저감 의사결정에 관한 실증적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후 취약계층을 진단하고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과학적 기후대응 의사결정 체계도 갖춰야 한다. 또 데이터에 기반해 기후기술별 시장 경쟁력과 국내외 잠재량을 고려한 혁신 로드맵과 시장 인텔리전스가 요구된다. 기업과 국가의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최적의 에너지믹스와 인프라 확충, 탄소크레딧 및 국제감축사업 개발을 지원하는 분석 체계가 필요하다. 녹색금융 또한 자본시장의 녹색사업 프리미엄과 기후리스크가 기업가치 및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하고, 이를 공시기준과 금융정책에 반영해 지속가능 금융으로의 자본흐름을 촉진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며, 대응은 곧 미래 경쟁력이다. '잘해야 본전'의 함정에 머물지 말고, 데이터와 AI가 뒷받침하는 조화롭고 전략적인 탄소중립만이 우리와 미래세대를 살릴 길이다.
엄지용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장
〈필자〉엄지용 교수는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원장이자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다. 2009년 스탠퍼드대에서 경영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2013년까지 미국 에너지부 산하 세계변화연구소(JGCRI)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KAIST에서는 기후·에너지 기술경영, 기후정책과 금융을 강의하며, 에너지·환경경제, 기후변화 통합평가, 기후금융 리스크, 에너지 수요관리 분야 연구를 수행해왔다. 지금까지 세계적 학술지에 6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IPCC 제5차 평가보고서에 기여했으며, 한국에너지모델링포럼을 공동 설립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연속으로 클래리베이트 선정 사회과학 분야 'Highly Cited Researcher'로 이름을 올렸으며, 현재는 데이터와 AI 기반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전략 분석 체계 '넷제로 인텔리전스'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