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안드레이가 죽었다. 이 화창한 오월의 햇살 속에서. 안드레이는 책 속의 인물이고 그 세계에서는 오월이 아니다. 그러나 강렬한 독서는 책 여백에 일렁이는 빛까지 필름처럼 찍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이 햇살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애도하는 마음이 생겨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길 수 없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덧붙일 말이 필요 없는 대작이다. 그러니 이 거대한 숲에서 방금 내 손에 들어온 나뭇잎 하나만 책갈피에 꽂아두려 한다. 잘나고 똑똑한 안드레이, 안드레이를 보고 있으면 잘난 사람의 패착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잘난 사람의 문제는 그보다 못난 사람과 얽혀서 살아가야 한다는 데 있다. 안드레이는 인간 전체가 못마땅하고 그로 인해 고립된다. 전쟁에 참전하고, 인생에 드물게 온 행복의 기회도 날려버린다. 어린 약혼자의 실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또다시 전쟁에 나가 부상을 당한다. 주요 인물만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이 대작을 엮으면서 톨스토이가 인간을 얼마나 멀리서, 그야말로 전지적으로 바라보는지 감탄했다. 이 거리감이 지혜를 선사한다. 덕분에 안드레이보다 똑똑하지 않은 내가 ‘똑똑한 사람이 지게되는 운명의 문제’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깨닫고, 수많은 사람이 얽혀있는 우주 속에서 그를 지켜보게 된다. 톨스토이가 그렇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에 앉아 무수한 인간사의 움직임과 개인의 운명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는 시야각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 『전쟁과 평화』의 본질적 경험이다. 따라서 책의 진정한 제목은 인간, 또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나 카레리나』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뿐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의 진정한 제목은 인간, 또는 인생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의 영혼 속으로 더할 수 없이 깊게 육박해 들어간다면 톨스토이는 인간을 아주 멀리서, 거의 신과 같이 머나먼 곳에서 말없이 지켜본다. 그 결과 두 작가 모두 인간에 대해 무한한 연민의 감정을 들게 하는 것이다.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