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 먼저 도착한 사회

2025-12-29

최근 논쟁과 감정이 집중되는 기사들의 댓글을 읽다 보면,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결론이 먼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억울하다고 할 게 뻔하다.” “저런 스타일은 꼭 저러더라.” 사건의 맥락이나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 사람은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되었고, 그 유형에 맞는 반응만이 반복된다. 어느 순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그를 미리 짜인 범주 속에 밀어넣고 판단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만약 이 글에서 특정 사건의 이름을 꺼낸다면, 이 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소비될지 모른다. 언급하지 않으면 비겁하고, 언급하면 편을 가르는 글이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사건을 걷어내고 그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댓글의 공기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현상은 단순한 무례나 온라인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를 붙잡아두고 그것을 데이터로 만들고 수익으로 전환하는 시대에 인간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플랫폼 위에서 개인의 삶은 맥락을 잃은 채 하나의 입장과 하나의 이야기로 축약되고, 이 축약된 기호는 곧바로 평가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특히 “억울하다고 할 게 뻔하다”는 말은 타인의 말하기를 내용 이전에 무효화하는 선언에 가깝다. 말할 기회는 주어진 듯 보이지만 사실상 듣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진다.

인류학자 로이 와그너는 멜라네시아 다리비족 연구를 통해 서구적 ‘문화’ 개념이 지닌 오만함을 비판했다. 다리비족에게 서구의 물건이나 제도는 문화라기보다 ‘카고(Cargo·어떤 것을 옮기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잇고, 끊고, 새롭게 만들어내기 위한 매개다. 다리비족에게 문화란 고정된 틀이 아니라 관계를 살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 논리의 정반대에 서 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과 정보를 이용하기보다 특정 기호와 이야기들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 있는 인간관계를 소모한다. “저 사람은 반드시 저래야만 한다”는 확신은 이해라기보다 단정이다. 이는 타인을 고유한 삶을 지닌 존재로 대하는 대신 이미 만들어진 문화적 분류 속에 밀어넣는 일종의 폭력이다. 이제 댓글을 위시한 소통의 문화는 인간관계를 잇는 도구, 즉 카고라기보다 관계를 삼켜버리는 몰이해의 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비난의 감정은 실제로는 힘이 아니라 힘처럼 느껴지는 감정에 가깝다. 키보드 뒤에 숨어 타인을 재단할 때 느끼는 순간적인 우월감은 내 삶을 움직이는 힘이 아니라 니체가 말한 원한감정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더 쉽게 증폭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무력감을 마주하기보다 타인의 고통을 도덕적으로 소비하며 잠시 위에 서려는 태도. 그런 일상적 냉소가 이제는 공기처럼 퍼져 있다.

인류학자 나이절 래포트는 이러한 집단적 분위기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개인의 실존을 이야기한다. 그가 니체를 원용해 말하는 ‘마흐트게퓔’, 즉 힘의 감각은 관념이나 타인의 평가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내 몸이 환경을 느끼고 스스로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고 느낄 때 생겨나는 감각이다. 래포트의 관점에서 개인은 사회의 단순한 산물이 아니라 스스로를 만들어가며 버텨낼 힘을 가진 존재다. 모니터 속 기호에 분노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아니라 타인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느끼는 망설임과 책임감, 그 신체적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실존의 자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플랫폼의 시선(종종 나 자신의 판단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플랫폼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와그너가 말한 차이의 지혜란 타인을 뻔한 기호로 환원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사람으로 만나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의 플랫폼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은 디지털 공간이 뿜어내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는 존재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내 몸의 감각을 통해 관계를 다시 만들어보려는 선택이다. 관계를 위해 댓글을 사용할 줄 아는 힘, 다시 말해 마흐트게퓔을 되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소비하는 사회에서 한 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관계를 잃어버린 문화 속에서 서로를 ‘뻔한 기호’로 소모하며 각자의 방에서 조용히 병들어갈지도 모른다. 아직 달리지 않은 타인의 댓글을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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