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대화 형식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진료와 처방전 발급 서비스를 선보여 의료계의 질타를 받고 있다. AI가 문답을 통해 예상 병명을 제시하면 환자는 하나를 선택해 처방전을 내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은 의사가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 교부하거나 발송하는 것은 의료법상 금지된다. 서비스를 이용해보니 비대면진료 지침 위반과 의료기관 정보 도용 등의 정황도 발견돼 충격을 더한다.
#본인확인 절차 없이 AI가 진료부터 처방전 발급까지
지난달 30일 A 사 홈페이지 ‘통합 내과’ 카테고리에 들어가 직접 비대면진료를 받았다. AI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라고 물으며 진료를 시작했다. 약 3분 동안 증상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특정한 자세에 더 심해지는지, 식사나 수분 섭취는 어땠는지 등을 물었다. 약 16개의 질문을 마친 AI는 확률 순으로 병명 세 가지를 제안했다.
AI가 일관성 있게 처방하는지 확인하고자 진료를 다시 신청해 동일한 증상을 호소했다. AI는 앞서와는 다른 질문을 이어갔고 질문 개수도 절반가량 줄어든 10개에 멈췄다. 그 결과 다른 병명이 나왔다.
AI가 제시한 세 가지 병명 가운데 하나를 이용자가 선택하면 AI는 처방전을 발급한다. 이 과정에서 ‘처방전에 대한 동의서’도 받는데, 처방전 발급에는 의사 면허가 필요하며 이는 사용자와 AI의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데이터와 부가세, PG 수수료를 포함한 금액을 결제하면 A 사와 가맹을 맺은 의료기관명과 의사 실명, 요양기관번호 등이 추가된 처방전 링크가 문자로 발송돼, 직접 다운로드를 하면 된다.
기자가 발급받은 처방전에는 가맹 의료기관으로 한 내과 의원이 적혀 있었다. 가맹 의사의 이름, 면허 번호 등도 적혀 있었다. 요양기관번호를 검색해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의원을 특정했지만, 해당 의원 측은 “가맹한 적 없고, A 업체를 알지도 못한다”라고 답변했다. 의료기관명, 요양기관번호, 의사 이름 등은 모두 도용된 정보였다. 또한, 진료를 마칠 때까지 별도의 ‘본인 인증’ 절차가 없었음에도 처방전에는 이용자가 작성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처방전에 대해 약국가는 “병원에서 의약품명을 처방하고 대체조제가 가능한 의약품 목록을 주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성분명만 적어 놓은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약사 A 씨는 “의약품 보험코드가 없고 환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블러 처리돼 보험 적용은 불가하다. 다만 비급여로는 성분명만으로도 처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지침에 따르면 비대면진료는 화상통신 혹은 전화를 활용해야 한다. 메시지나 메신저만 이용한 비대면진료는 불가하며, 본인 확인 절차 역시 필요하다. 처방전의 경우 의사는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직접 전송해야 하며, 환자는 플랫폼에서 다운로드가 불가하다. A 사의 AI 진료는 이러한 비대면진료 지침을 모두 지키지 않은 셈이다.
의료법 또한 의료인이 아닌 이의 의료행위와,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은 의사가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 교부하거나 발송하는 것을 금지한다.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아닌 A 사와 대표 B 씨가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 A 사 관계자는 “AI 진료 결과를 참고해 의사가 재처방하는 시스템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약사회와 협업 약속했지만…약사회 “이야기 오간 적 없어…되돌릴 수 없는 피해 발생할 것”
A 사에 따르면 진료 AI는 과목별로 100만 건 이상의 처방 자료를 학습했다. 업데이트도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지난달 24일 자로 향정신성 약물 처방의 경우 처방코드 강제 말소에서 신고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모바일 메신저로도 진료가 가능하지만 처방전 발급은 홈페이지에서만 가능하다. 회사는 경품 이벤트와 블로그 홍보 게시글 의뢰 등으로 이용자를 모집하고 있다. 1일 자로 처방 시에 ‘병원과 계약 만료로 11월 11일까지 처방이 불가능하다’라는 안내문이 올라왔다. 다만 안내와 달리 결제와 처방전 발급은 아직 가능하다.
A 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2026년 예정된 국민건강보험의 적자 상황에서 의료 서비스의 혼란을 방지하고 국가 지출을 최소화하는 AI 기반 의료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용자에는 ‘무료 진료’와 ‘온라인 처방전 발급의 편의성’ 등을 내세운다. 기자가 두 차례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처방전 발급까지 들어간 비용은 각각 327원, 421원이었다.
약사계에는 “매년 종이 처방전으로 인한 국가 손실 금액이 2300억 원이다. 일부 약국에서 팩스를 요청하는 구세대 방법을 이용 중이다. 많은 약국사업자와 약사회를 다니며 이를 개선하는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간단하게 다운로드 버튼을 사용해 저장하면 된다. 현재 팩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2025년부터 약사회와 함께 ‘종이 처방전 OUT’ 운동을 할 예정이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A 사와 처방전과 관련한 어떤 이야기도 한 적이 없다”며 “AI 진료에 대한 필요성이 논의된 적도 없고, 법령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오로지 수익적인 측면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는 되돌릴 수 없는데, 비급여이기에 심평원이나 공단으로 자료가 들어가지도 않아 검증할 수도 없다. 또 A 사가 처음에는 특정 의료기관과 협약을 맺었다고 했다가 지금은 그곳이 어딘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8일 A 사와 대표 B 씨에 대한 고발장을 안산단원경찰서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의협은 보도자료를 통해 “A 사는 AI 채팅을 통해 자의적인 진료 및 처방을 하고 처방전을 발급하며 서비스 이용료까지 받았다. 처방전에 A 업체의 연락처와 이메일 등을 기재해 허위 발급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A 사를 통해 처방전을 발급한 사실이 없는 의료기관의 명의를 도용해 무단으로 처방전 발급에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서비스는 사용자의 비대면진료 대상 여부 확인 없이 단순 메신저만을 이용해 환자를 진단한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처방전을 발급받을 수 있어 무분별한 의약품 오남용이 우려된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이번 사건의 처리 과정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이와 같은 무면허 의료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기관 정보 도용에 대해 A 사 관계자는 “(도용은) 사실이며 해당 병원장에게 사과하고 마무리 짓는 단계”라고 밝혔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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