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의 민속씨름 한라급(105㎏ 이하)에서 2003년생 3년차 김무호(울주군청)가 새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김무호는 지난 9월 ‘위더스제약 2024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한라장사에 등극했다. 한라장사 결정전(5판3승제)에서 만난 김민우(수원특례시청)를 3-0으로 누르고 환호했다. 김무호의 개인 통산 5번째 장사 타이틀이다.
김무호는 민속씨름 데뷔 시즌인 2022년에 두 차례(괴산·평창)에 정상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2년 차인 지난해에는 추석대회에서만 우승하며 잠시 주춤했으나, 올해 하반기에 들어 다시 2승으로 반등했다. 김무호는 올해 삼척 대회에 이어 추석 대회 2연패까지 달성했다.
김무호의 최근 기세가 좋다. 한라급에서 차민수(영암군민속씨름단), 박민교(용인시청)와 함께 한라급 강자로 평가받는 김무호는 추석 대회에서 고비였던 박민교와의 준결승을 3-0으로 가볍게 승리했다. 김무호는 지난 5월 유성 대회에서 박민교에 패해 준우승했다. 6월 단오 대회 결승에서는 차민수에게 져 우승을 놓쳤는데 이번에 그 아쉬움을 모두 지웠다. 김무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모래판에 올라갈 때부터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목표로 했던 추석 대회 2연패라는 결과까지 얻으면서 자신감은 더 커졌다.
김무호는 경기에 앞서 모래판에 올라서면서 오른발로 점프하는 루틴이 있다. 김무호는 “원래부터 하던 것인데 나만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행동”이라며 “딱 뛰면서 착지할 때 가벼우면 컨디션이 좋은 것이다. 요즘은 뛸 때마다 가볍다”며 웃었다.
울주군청 이대진 감독은 김무호를 ‘대나무’로 표현했다. 이 감독은 “한라급 다른 경쟁 상대들의 딱딱한 몸이라고 하면 김무호는 조금 다른 유형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좋다. 이런 두 장점이 조화를 이룬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김무호는 짧지 않았던 슬럼프를 이겨내며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감독은 “사실 김무호가 데뷔 시즌에 그렇게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기대보다 빨리 두 차례나 장사 타이틀을 따냈다. 너무 빨리 성공하면서 슬럼프가 왔을 때 자칫 사기가 꺾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면서 “그런데 김무호가 부상 등으로 생긴 부진을 잘 이겨냈다. 나이는 어리지만 멘털적으로도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길어진 우승 공백 중에 어깨와 이두근 부상까지 겹쳤다. 결국 우승이 약이었다. 약 11개월 만인 지난 8월 삼척 대회에서 장사에 등극하며 마음의 부담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
사실 김무호는 두 번의 부상 시련 속에서 씨름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났다. 이 감독은 “김무호가 팔 부상을 겪은 뒤로 ‘밀당’이 가능한 선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는 준비 자세부터 힘이 빡 들어간 채로 시작했다면 지금은 강약 조절로 상대를 요리할 줄 안다”고 덧붙였다.
어린 나이에 씨름 완성도를 끌어올린 김무호의 전성기가 이제 시작될 것이라고는 기대감도 크다. 이 감독은 “김무호가 시합 때 흥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때 자기 실력의 70% 수준 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면 지금은 거의 100%의 경기력이 나온다. 그만큼 안정감이 생겼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무호도 “모래판 위에서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힘을 뺐는데도 파워는 더 쎄진 느낌”이라고 이야기했다.
전북 칠보초 5학년 때 씨름을 시작해 전주 풍남중-공주생명과학고를 거치며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김무호는 왼 발목이 부러졌던 고교 2학년 때 말그대로 씨름에 눈을 떴다. 반년 정도 훈련을 하지 못했던 시기였는데, 그때 오히려 곽대성 감독님 옆에서 씨름을 봤던게 시야를 더 넓게 했다. 김무호는 “감독님 옆에서 경기를 보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많은 대화 속에서 상대를 읽고, 경기하는 노하우를 들었다. 그 때 이후로 씨름하는 길이 다 보였고, 거의 진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무호에겐 어찌보면 행운같은 일이다.
이 감독은 영남대 동계 전지훈련에서 고교 3학년 김무호의 훈련 모습을 보고 울주군청 영입을 결정했다. 이 감독은 김무호의 하체 활용을 장점으로 꼽으면서 “이만기, 강호동 같은 씨름 레전드들도 골반을 부드럽게 잘 썼다”며 “추석 대회 경기력을 보면 김무호가 롤모델로 삼는 한라급 강자 최성환(영암군민속씨름단)과 닮았다. 최성환이 천하무적일 때 모습을 지금 김무호에게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무호는 “한라급에서 한 번에 떠오를 수 있는 선수로 올라서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천하장사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목표를 씩씩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