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은 읽을 때마다 가르침이 새롭다. 3권분립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 보지도 않은 중국 이야기를 듣노라면 놀라움이 앞선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입만 벌리면 예의를 따지는 중국이 저토록 부패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법의 정신』 I-XIX-20) 얼마 전 중국에 갔더니 국방 담당 제이인자가 부패 혐의로 처형된 것이 화제였다. 얼마나 치부했느냐고 물었더니, 믿지 않을 텐데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들어보자고 졸랐더니 현찰이 2000t이 나왔다고 한다. “2t이겠지?” “그래서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잖소.” 그러고 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 한국에서도 2t 트럭으로 돈 나르다가 몰락한 정치인이 있었으니, 돈 2t은 별것이 아니었다.
윤의 개혁 실패는 때를 놓쳤기 때문
한국 사법부는 수치를 잃은 지 오래
법치 문란으로 민중은 폭발 직전
자손에 오욕의 역사 물려줄 순 없어

중국의 국부 쑨원이 공화국을 창설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부패였다. 그인들 왜 몽테스키외의 3권분립을 몰랐을까마는, 신생국 창설을 앞둔 중국의 가장 큰 고민은 부패한 과거(科擧)제도를 어떻게 청산하는가의 문제였다. 그래서 쑨원은 과거제도를 대신할 고시원(考試院)을 창설하여 4권분립을 시도했다. 그러고 보니 고시원을 세워도, 그 고시원은 또 누가 감시할 것인가? 로마법 이래 통치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누가 감시자를 감시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래서 쑨원은 다시 감찰원(監察院)을 창설하여, 5권분립 체제를 채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국 초기, 한국의 국부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5권분립의 정체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1960년대 선거관리위원회와 감사원을 설치함으로써 준(準) 5권분립 체제를 제정하여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쑨원이 걱정하던 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선관위의 비리가 878건인데, 헌법재판소는 그곳이 헌법기관이어서 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평결했다. 지역 선관위원장을 지나면 헌법재판관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니 한통속인 것은 알겠는데, 헌법기관은 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해괴한 유권해석 앞에 망연자실하겠다. 저 시골의 9급 공무원에서부터 고위공직자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모든 공직자는 궁극적으로 헌법기관이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이니 감찰의 대상이 아니라면 헌법기관인 대통령도 감찰의 대상이 아니다.
이 ‘썩어빠진 선관위’와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헌법재판소가 나라를 누란(累卵)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일부 이념에 몰입한 헌법재판관은 사건을 결심(結審)하기에 앞서 이미 결론을 결심(決心)을 하고 취임한다. 이는 공의롭지 않다. 정치가 역사와 도덕을 조롱할 때 사법부가 마지막 의지처인데 그것이 정치보다 더 썩었다. 서구의 법원 건물 앞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는지 사법연수원 시절에 그들은 익히 들었을 터이지만, 그런 법의(法義)는 이제 개도 안 물어간다. 한국의 사법부는 이미 수치를 잃은 지 오래다.
지금 국민 사이에는 “이게 나라냐?”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길게 보면 로마 집정관 소(小) 카토(기원전 95~기원전 46)의 말처럼, “선출직 공직자가 잘못되었으면 뽑은 국민의 죄도 함께 크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고전적 이론이다. 그러나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도 크다. 국민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취임과 함께 조셉슨(M Josephson)이 말하는 ‘강도 같은 귀족들’(robber baron)을 감옥에 보내기를 국민은 기대했다. 그런데 그 강도들이 더 능글맞게 천하를 횡행하고, 범법 국회의원이 “어디 사는지 몰라 법원 서류를 송달하지 못하고”, 임기가 끝나 재선이 되도록 선거법 위반 재판은 진행 중이다.
윤석열은 당선되어 검찰총장의 카리스마와 개혁의 동력이 살아 있을 때 몇몇 파렴치범들의 물고를 냈어야 한다. 강골 검사를 전진 배치해서 추상같이 법을 집행하여 기선을 제압했어야 한다. 강인하다는 것은 소문만으로도 정적의 수효를 감소시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개혁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실기(失期)였고 사람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취임 초기에 사법 논란의 김명수(대법원장)·권순일(대법관) 등의 문제를 엄정 처리했어야 한다. 노정희·노태악 등이 이끈 선관위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멈칫거렸고, 그때 이미 그의 동력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그 뒤로 권력이 푸석푸석해진 틈을 타 안팎으로 악의 세력이 발호했다. 권력자가 만만한 싹을 보였을 때 밑에 깔린 정적들(underdog)은 살판난 듯이 날뛴다.
지금 한국의 법치 문란은 민중적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서 폭발 전야의 휴화산과 같다. 그 상당 부분은 윤석열의 오판과 멈칫거림에서 왔다. 우리 세대는 스스로의 책임을 아프게 후회하며 이 굴절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자손에게 이 오욕의 역사를 물려줄 수는 없다. 살을 저미는 결기(決起)가 없다면 향후 30년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황현(黃玹)의 탄식처럼, 이 썩어빠진 사법 치하에서 배운 대로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亂作人間識字人).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는 것은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