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뉴욕양키스 로저 매리스가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깨고 역사적인 61호 홈런을 날렸을 때, 얼떨결에 그 공을 잡은 행운아는 19세의 살 듀란테였다. 입장권조차 여자친구가 대신 사줘야 했던 가난한 그 청년은 대기록을 세운 매리스에게 공을 돌려주려 했다. 스스로는 그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 마음이 고마웠던 것인지, 매리스는 공을 받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꼬마야, 그 공을 경매에 내놓으렴. 그러면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처럼 공은 캘리포니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샘 고든이 5000달러에 샀다. 지금 시세로 치면 약 6700만원에 해당한다. 그리고 고든은 몇년 후 매리스에게 그 공을 대가 없이 돌려줬다. 선수도, 팬도 서로 양보하려 했던 매리스의 61호 홈런공은 결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전시돼 아름다운 미담을 완성했다.
지금 와서 보면 참 믿기 힘든 동화 같은 얘기다. 메이저리그 인기와 규모에 비례해 기념비적인 홈런공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의 70호 홈런공은 300만달러(약 40억원), 2022년 매리스의 기록을 깬 뉴욕양키스 에런 저지의 62호 홈런공은 150만달러(약 20억원)에 팔렸다. 그러니 선수에게 돌려주기는커녕 홈런공을 서로 갖겠다고 팬들끼리 다투다가 소송전까지 벌어진다.
지난 20일 전 세계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50홈런-50도루’ 기록을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세웠다. 그 50호 홈런공을 잡은 행운의 팬도 공을 오타니에게 돌려주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벌써부터 이 공이 경매에 나오면, 미국은 물론 일본 야구 수집가들이 구매 경쟁에 적극 뛰어들어 낙찰가가 크게 뛸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홈런공은 누가 가져야 맞는 것일까. 오타니의 50호 홈런은 ‘오타니의 순간’이다. 팬은 그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그곳에 있다. 그러나 우연히 낚아챈 공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쉽게 포기할 팬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순간 공은 더 이상 야구공이 아니라 ‘로또’가 된다. 매리스의 61호 홈런공이 아득히 먼 옛날 얘기로 기억되는 세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