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여성 리더 20%로 늘린다…육아·병역에도 ‘경단’ 없게

2024-09-27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공공연구기관의 여성 보직자 비중을 크게 늘리고 출산과 육아, 병역으로 인한 연구자의 경력 단절을 최소화하는 등 이공계 인재 확보를 위한 유인책을 강화한다. 의대 선호와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이공계 인재 풀이 좁아지지 않도록 대응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제3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과학기술 인재 성장·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과기정통부가 올 3월 교육부와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연구현장 의견수렴을 통해 마련한 범부처 이공계 인재 확보 계획이다. 이공계 학생 장려금과 장학금, 교육과 취업 지원, 해외 인재 영입 등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3대 전략, 9대 과제로 나눠 추진해나간다.

정부는 우선 상대적으로 이공계 종사비율이 낮은 여성 인재를 늘릴 계획이다. 공공연구기관 보직자 중 여성 비중을 현재 10% 수준에서 20%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여성 보직자 목표제를 도입한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2028년까지 모든 연구기관에 적용한다. 대체인력 지원 확대, 전용 펀드 조성, 육아 중인 연구자의 연구과제 협약기간 연장 등 우대책을 마련한다. 정부는 유럽연합(EU)의 다자 간 연구협약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 가입 조건이기도 한 이공계 성평등 실현을 위해 ‘젠더혁신 확산방안 추진방향’을 마련해 관련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남성 연구자의 병역 지원도 강화한다. 이공계 인재가 군 복무 기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연구개발(R&D)을 수행해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과학기술전문사관 모집대상을 기존 학사에서 석사로 확대하고 내년 연 25명의 석사생을 모집한다. 사이버전문사관 제도도 올해 신설했다. 전문연구요원 병역지정업체 선정 시 기존 소재·부품·장비와 반도체 분야 연구기관에만 적용했던 가점을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로 확대한다.

포스트닥터(박사후연구원)를 늘리는 등 일자리 정책도 마련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의 포스트닥터 채용 규모를 현재 150명 수준에서 2034년 1500명으로 약 10배 늘린다. 대학부설연구소까지 포함해 10년 간 2900명 규모다. 연구자가 하나의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여러 분야 출연연을 오가며 융합 연구를 할 수 있는 ‘국가연구원제도’ 도입도 검토된다.

해외 인재 영입도 이번 전략의 한 축이다. 이공계 외국인 비자 ‘사이언스카드’ 소지자의 배우자도 취업을 허용하고 부모를 국내에 초청하기 위한 소득 기준을 기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2배에서 1배로 완화함으로써 해외 인재가 국내에 더 쉽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의 국내 정착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전주기 지원 서비스도 마련될 예정이다. 국내 젊은 연구자의 해외 연수지원 프로그램은 지원 규모를 올해 1014억 원에서 2030년 3000억 원으로 지원 규모를, 대상자도 1496명으로 4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재외 한인 과학자의 국내 복귀 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연구자에 대한 보상 강화를 위해 대학과 출연연의 임금 실태를 내년부터 주기적으로 파악하고 종사자의 실질소득을 증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동시에 대학창업펀드는 현재 1400억 원에서 2030년 2300억 원 규모로, 첨단기술스케일업펀드는 800억 원에서 연내 137억 원을 늘린다. 스타트업코리아펀드도 올해 약 8000억 원에서 2027년 2조 원 규모로 키운다. 직무발명보상금의 비과세 한도를 올해 연 700만 원으로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추가 지원책을 마련한다.

또 인재의 스타트업 생태계 진입을 유도하기 위해 주식을 통해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는 주식 보상 특례제도를 확산한다. 내년 1월부터 포스트닥터의 과학기술인공제회 가입을 허용하고 중소기업 종사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공제회 회원을 현재 12만 명에서 최대 25만 명으로 늘린다. ‘정년 후 재고용 제도’ 등을 통해 일자리 안정성도 강화한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위해 신설된 경제적 지원책으로는 이공계 대학원 연구생활장려금(한국형 스타이펜드)과 석사특화장학금 제도가 있다. 스타이펜드는 국가R&D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에게 석사 기준 월 최저 80만 원, 박사 110만 원을 보장하는 제도다. 정부는 학생별 부족분을 국비로 지원해주며 이를 위해 내년 6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석사특화장학금은 매년 이공계 석사 1000명에게 500만 원을 준다. 그밖에 4대 과기원 정원과 대학들의 계약학과·계약정원제 확대를 추진한다. 내년 신규 도입되는 국가대표연구소(NRL 2.0)를 포함해 2027년까지 100개의 대학연구소를 선정한다.

정부는 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 마이스터고의 정원을 확대하고 이공계 종사자의 유튜브 운영을 지원하는 등 이공계에 대한 관심 제고도 꾀한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전략은 향후 과학기술 인재 정책의 로드맵으로서 과학기술 인재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미래 진로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고 노력과 성과에 대한 경제적 처우와 보상체계를 강화하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며 “우수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를 매력있는 진로로 선택하고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가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큰 그림을 갖고 향후 세부적인 대책들을 마련해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의대 쏠림’ 현상의 심화와 학령인구 감소 등 당장 현실화한 문제 대응을 위해 단기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대책 역시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령 의대로 이탈하는 상위권 대학의 학부생을 붙잡아둘 정책이 여전히 모호하며 그나마 구체적 대책인 스타이펜드마저도 실효성을 두고 연구현장의 이견이 여전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대학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내년부터 상위권 대학의 학부생이 의대로 이탈하는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스타이펜드로 대학생이 (의대가 아니라) 대학원으로 몰려갈 것이라는 기대는 허무맹랑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게다가 스타이펜드는 연구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는 장학금인 만큼 연구현장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부가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문·이과 통합으로 줄어든 이공계 심화교육을 강화하는 식의 대학들이 실제 원하는 변화와는 이번 전략 방향이 어긋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에게 필요한 추가 조치로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연구현장에는 올해 국가R&D 예산 삭감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내년도 예산 복원과 연계한 구체적인 인재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무환 전 포항공대(POSTECH) 총장도 “줄어드는 학령인구 속에서 우수인재를 꾸준히 늘리려면 교육의 질을 올려야 한다”며 “스타이펜드 같은 학생 개인에 대한 지원책뿐 아니라 교육기관인 대학 자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학의 1인당 공교육비는 미국 같은 선진국 대학은 물론 국내 고등학교보다 낮은 실정으로 이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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