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있어야 할 곳

2025-08-25

2009년 여름, 인턴기자로 서울 중구 회현동 쪽방촌을 찾았다. 어르신은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전기요금 부담에 그마저도 마음껏 켜지 못한다고 했다. 연신 땀을 흘리던 기자가 마음에 걸렸던지 그는 선풍기를 ‘강풍’으로 돌려주었다. 그가 손에 쥐여준 미지근한 콜라의 온도를 잊지 못한다.

16년이 지나 2025년 여름이다. 그사이 지구는 더 뜨거워졌다. 6월부터 끓기 시작해 처서를 지나 9월까지 계속될 모양이다. 올해 6월1일부터 8월23일까지 전국 일평균 기온은 25.6도로 역대 최고치다. 올여름 누적 온열질환자 수는 3800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악의 더위로 불렸던 2018년 다음으로 많다.

취약계층에게 여름은 더 잔혹하다. 지난해 기후위기 취약계층 2388명을 대상으로 한 정부 실태조사에서 67.5%가 폭염으로 생계에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소득이 줄고 물가는 올랐는데, 냉방비 부담까지 더해져 생활고를 겪는다는 얘기다. 재난 문자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취약계층을 가까이서 돌본 이들의 기록은 더 생생하다. “앞마당 평상 위에 그늘막을 설치하고 얼음물에 의존해 폭염을 견딘다. 입댄 얼음물에 세균이 증식해 설사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고산지대 판자촌에 거주하는 1인 가구 여성. 실내가 더워서 좁은 마당에 나와 혼자 쉬다가 쓰러졌다.”

정부 지원은 팍팍하다. 얼마 전 폭염 취재를 위해 서울 성동구 노부부의 집을 찾았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으로 선정돼 정부 지원으로 옥상에 열 차단 페인트를 칠한 집이다. 체감 효과가 높다고 했다. 노부부 모두 장애가 있고 별다른 수입이 없다. “자신들과 처지가 비슷한 이웃이 많다”며 “이웃들도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서울에서 ‘페인트’ 지원을 받은 집은 20곳뿐이다. 성동구에서만 88가구가 신청했지만 수혜자는 적다. 사업비가 모자란 탓이다. 올해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사업 예산은 95억원으로 3년째 제자리다.

폭염·폭우·가뭄·산불·한파까지 기후재난은 해마다 더 잦아지고 있다. 취약계층이 겪는 고통도 그만큼 커졌다. 기후재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자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 지자체장에게 기후위기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신임 기상청장은 취임사에서 기상청이 기후위기 대응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노라 선언했다.

정작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보이지 않는다. 올여름 환경부의 최대 관심사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이었다. ‘에너지’ 정책 주도권을 두고 부처 간 힘겨루기가 길어지면서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조직 개편을 앞두고 ‘윗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부처 신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무진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올해 부실한 취약계층 지원사업의 책임을 묻자 “예산이 적다”는 뻔한 변명만 내놓는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당장의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부처 간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부처가 필요할 뿐이다. 환경부가 서야 할 자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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