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구글 반독점 소송 과정 중에 미국 법무부가 증거로 제출한 오픈AI의 내부 문건이 공개됐습니다. 2024년 말에 작성한 ‘챗GPT: 2025년 상반기 전략(ChatGPT: H1 2025 Strategy)’이라는 제목의 이 내부 문서는 내용 일부가 가려져 있지만, 챗GPT가 단순한 챗봇 이상의 ‘무언가’가 되려는 야망이 드러나는 문서였습니다.
내부 문건에 따르면, 오픈AI는 “사용자를 깊이 이해하고, 인터넷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AI 슈퍼 어시스턴트(AI Super Assistant)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내년 상반기에 챗GPT를 ‘슈퍼 어시스턴트’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즉, 사용자를 이해하고, 사용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며, 컴퓨터를 사용하는 똑똑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감정적으로 지능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도와주는 슈퍼 어시스턴트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오픈AI는 챗GPT를 이러한 ‘AI 슈퍼 어시스턴트’로 만든다는 계획이 있다는 건데요. 오픈AI가 생각하는 ‘슈퍼 어시스턴트’는 무엇이고, 어떤 목적으로 만든다는 걸까요? 또, 이걸 통해서 뭘 얻고 싶은 걸까요?
챗GPT는 어디까지 왔나
오픈AI는 현재 챗GPT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위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오픈AI는 현재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시기가 적절합니다. o2와 o3와 같은 모델은 마침내 에이전트 작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만큼 충분히 똑똑해졌고, 컴퓨터 사용과 같은 도구는 챗GPT의 실행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멀티 모달리티 및 생성 AI와 같은 상호작용 패러다임은 챗GPT와 사용자 모두가 작업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o2와 o3는 오픈AI가 선보인 추론 모델입니다. 그중 오픈AI는 o3를 지난 4월 출시했고, 자사 모델 중 수학, 코딩, 시각 정보 인식 등에서 가장 성능이 높은 추론 모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용자가 업로드한 이미지를 인식하는 단계에서 이미지에 있는 정보를 해석하고 추론까지 가능해졌습니다.
오픈AI는 자사 추론 모델이 AI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향상됐다고 평가한 것이죠. 오픈AI는 이러한 ‘슈퍼 어시스턴트’로서의 챗GPT를 ‘T자형 기술을 갖춘 지능형 개체’라고 표현했습니다.
‘T자형 인재’는 세로줄에는 전문성(스페셜리스트)을 가지고, 가로줄에는 융합력(제너럴리스트)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전문가이면서 제너럴리스트의 특성을 보유한 사람을 뜻합니다.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분야의 기초 지식을 융합할 줄 아는 인재입니다.
챗GPT는 그런 점에서 특정 분야에 깊은 전문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반적으로도 폭넓은 이해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T자형 지능형 개체인 챗GPT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들을 대신 수행할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는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질문에 답하고, 집을 구하고, 변호사와 연락하고, 헬스장을 등록하고, 휴가 계획을 세우고, 선물을 사고, 일정을 관리하고, 할 일을 관리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등의 업무를 할 수 있습니다.”
오픈AI는 챗GPT가 일상적인 삶에 녹아들길 바라는 듯합니다. 챗봇에서 정보를 찾고 조언하는 걸 넘어서, 실제로 일상에서 작업을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거죠.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으려면, 물리적 실체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픈AI는 챗GPT가 하드웨어로 진출할 필요성을 느낀 듯합니다.
슈퍼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기기를 만들려는 이유
“오늘날 챗GPT는 웹사이트, 휴대폰, 윈도우, 모바일 앱 등 기존의 폼 팩터를 통해 우리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챗GPT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어디에 있든 여러분의 모든 삶을 돕는 것입니다.”
음악을 재생하고, 레시피를 추천하고, 목적지를 찾고, 회의록을 작성 등 업무를 도울 수 있는 챗GPT 기기가 생기는 거죠.
오픈AI는 지난 5월 애플 디자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니 아이브의 AI 기기 개발 스타트업 ‘아이오(io)’를 65억달러(약 8조931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조니 아이브는 애플 수석 디자인 책임자였습니다. 2019년까지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을 비롯한 애플의 핵심 제품 디자인을 담당했고, 지난해 아이오를 설립했습니다. 아이오를 인수한 오픈AI는 아이오 팀과 협력해 AI 기기 개발 전담 부서를 꾸렸고, 2026년 첫 AI 기기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오픈AI는 아이폰의 시리나 안드로이드 기기의 구글 제미나이처럼 자사 기기에 기본으로 탑재되는 챗GPT를 만들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오픈AI는 구체적으로 경쟁사를 앤트로픽의 클로드, 구글의 제미나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메타의 메타AI 등으로 지칭했습니다. 경쟁사들의 추격이 매섭죠. 오픈AI는 “(AI 챗봇 분야에서) 우리는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쉴 수는 없다”라며 압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픈AI는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제품 중 하나, 업계를 선도하는 브랜드, 연구 책임자(추론 및 멀티모달), 컴퓨터 책임자,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팀, 그리고 제품 출시에 대한 의욕을 가진 유능한 인재들을 갖고 있습니다.”
오픈AI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다른 경쟁 분야에서도 우위를 얻고자 합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회사는 모든 자사 제품에 AI 기능을 내장할 수 있죠. 구글이 올해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구글 I/O 2025)에서 발표한 기능 ‘AI 모드’가 그렇습니다. 검색 엔진이 ‘AI 개요’처럼 검색 결과를 AI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더니, 한 단계 발전시켜 추론, 후속 질문 등을 처리해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챗봇과 아주 유사해졌죠. 나중에는 AI 검색 엔진이 기존 검색 엔진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구글이 이를 먼저 선보였습니다.
오픈AI는 “자사 제품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유통망을 활용하는 강력한 기존 기업들”이 존재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업체는 가려져 있긴 하지만, 문자 길이로 추정할 때 ‘메타’로 추측됩니다. 메타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 메타AI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 5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메타AI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10억명을 돌파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AI 경쟁 시장이 치열해졌다고 느낀 오픈AI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려는 겁니다. 하드웨어 기기도 만들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챗GPT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슈퍼 어시스턴트’로 발전시키는 거죠.
핵심 AI 구독 서비스가 되고픈 챗GPT
이 내부 문건은 구글이 온라인 검색 및 광고 시장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소송에서 미국 법무부가 증거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4월 구글의 반독점법 재판에서 닉 털리 오픈AI 챗GPT 책임자는 증인으로 서기도 했습니다. 구글이 반독점법 위반으로 크롬 브라우저 등 사업 일부를 매각할 위기에 놓였고, 판사가 “크롬 브라우저를 인수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닉 털리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오픈AI는 지난해부터 자체 검색 인덱스를 구축하는 등 구글이 꽉 잡고 있는 검색 시장에서 독점이 해소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오픈AI는 문서에서 “진정한 선택이 경쟁을 촉진하고 모두에게 이롭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챗GPT를 “iOS, 안드로이드, 윈도우 등에서 기본값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용자가 원한다면 기본 검색 엔진으로 ‘챗GPT’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AI 어시스턴트(에이전트)도 마찬가집니다. 아이폰에서 기본으로 호출되는 AI가 ‘시리’가 아니라 ‘챗GPT’도 선택지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AI 어센트 행사에서 “대학생은 복잡한 워크플로우를 갖춘 운영체제로, 2030 직장인은 생활 상담 도구로, 고령층은 검색에 AI를 사용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연령대별로 AI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겁니다. 젊을수록 이미 AI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로 여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샘 올트먼은 사람들이 챗GPT를 선택하게 할 전략으로 “사람들이 핵심 AI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더욱 스마트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며, 미래의 기기나 운영 체제와 유사한 사물 같은 것을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픈AI는 슈퍼 어시스턴트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AI 모델이 챗GPT가 되고, 물리적 세계를 결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샘 올트먼은 “내년이면 AI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매우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하거나 인간을 도울 수 있다”며, “2027년은 그 모든 것이 지적인 영역에서 물리적 세계로 옮겨가는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가람 기자> ggchoi@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