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시는 삭막할까? : 제3의 장소와 입장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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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시는 삭막할까? : 제3의 장소와 입장료

Gen Z are Craving 'Third Place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49), 2025.3.5,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웹에서 보기 Web link

키워드: 제3의장소, 도시, 환대, 입장료, 생명력

1.머리말

2.‘싼 가격’ : 문턱을 낮추는, 환대의 핵심 조건

3.‘규칙 위 자유로움’ : 효율적인 소비만 남은 도시에서 탈출하기

4.빗장 커뮤니티는 생기 넘칠까?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우리 세대는 ‘제3의 장소’가 없어서 정말 우울해요.”

과거 틱톡에서 ‘제3의 장소’를 원하는 한 미국 20대 청년의 영상이 인기를 끌었습니다.(링크)

제3의 장소The Third Places란,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제시한 개념인데요. 제1의 장소(가정), 제2의 장소(일터) 외에도 가볍게 동네에서 부담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뜻합니다.

이 틱톡은 50만 조회수를 넘기고 각종 SNS에서도 꽤 이슈가 되었는데요.

실은 이 1분 남짓한 영상 자체는 제3의 장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엔 동네 사람들이 일이 끝나고 나서 술집이나 센터 등에서 서로 자유롭게 어울리며 긴장을 풀고 즐길 수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런 장소를 잃었다” “우리는 방에만 처박혀 있는 대신, 나가서 서로 어울려야 한다”라고 씁쓸하게 말하는, 딱히 그렇게까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영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영상 그 자체보다도 스크롤을 내리며 이 영상에 달려있던 다소 의외의(?) 댓글, 반응들 때문에 이 영상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제3의 장소'가 없다고 슬퍼하는 미국 틱토커 크리스티안 보니에(24)의 모습. 그가 올린 짧은 영상은 수십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얻을 정도로 이목을 모았었죠.(링크) 보니에 외에도 최근 Z세대 사이 대면 커뮤니티를 선호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링크) (왼쪽) '제3의 장소'라는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쉽게 말해 우리가 부담없이 들를 수 있는 주변의 장소를 뜻합니다. 가게의 경우에도 물건을 사고파는 역할 외에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죠. 1968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복덕방의 모습. / Tiktok, 경향신문 자료사진

얼핏 생각하기론,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요새 애들은 다들 스마트폰에 빠져있기 때문에 서로 대화도 하지 않아, 쯧쯧” 등의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댓글들은 [돈] 이야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했죠.

“유튜브, SNS만으론 충족되지 않는 걸 알아요. 하지만 돈이 없는 걸요.”

“나도 동네술집이나 독서 모임, 헬스장 등 커뮤니티에 가고 싶지만 모든 활동이 너무 비싸서 갈 수가 없어요...”

*

저는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물론 교류가 끊어진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습니다마는 - 왜 지금까지 서로 대화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특히 젊은세대)를 이야기할 때, 언론 등에선 젊은 세대의 접촉을 싫어하는 성격의 문제라든지 스마트폰 문제(오늘날 간편하게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의 이야기가 주로 나올 뿐 돈에 대한 이야기는 한사코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인데요.

실제로 이들의 고민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에서 돈 없이도, 혹은 적은 돈으로도 시간을 느긋하고 재밌게 때울만한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걷다가 잠깐 쉬어가려고 하더라도 벤치가 없어 카페로 들어가야 하고요.

원한다면 수십년, 수백년 전의 사람들처럼 동네 술집의 단골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몇만원씩 돈을 선뜻 내며 (더욱이 술에 큰 관심이 없다면) 죽치고 앉아 스몰토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겠죠. 그런 공간이 누구나 오가는 자유롭고 지속가능한 - 공동체로서의 분위기를 내기도 어려울 테고요.

질문은 이어집니다.

과연 오늘날 도시에 저렴하게 멋대로 점유하고 느긋하게 ‘딴짓’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과거에 그런 공간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오늘날과 다른 점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도시에서 비싼 입장료로 둘러쳐진 빗장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런던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매튜 그린)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데이비드 하비) 등을 지팡이 삼아, 제3의 장소와 가격(입장료)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싼 가격’ : 문턱을 낮추는, 환대의 핵심 조건】

앞서 강조했듯, 장소에 있어서 가격은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평소 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어느날 책꾸러미를 안고 돌아오다가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만약 도서관에 목욕탕이나 놀이동산처럼 입장료가 있고, 책을 뒤적여보는 횟수(?)나 빌려오는 권수마다 돈을 꽤 많이 내야했다고 한다면, 그리고 오래 앉아있을 때 눈치를 봐야만 했다면 내가 지금처럼 부담없이 일주일에도 몇번씩 도서관에 다닐 수 있을까?’ 하고요. (실은 오늘날 도서관의 대단한 점은 단순히 ‘책’이 많은 공간이라는 것보다도, 이 모든 게 ‘공짜’라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1))

앞서 말했듯, 가게나 여가생활, 커뮤니티 활동 등에서 ‘가격’은 어떤 행동을 하는 데 있어 생각보다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장소라고 해도, 가격이 부담된다면 자주 방문하기 어려울테니까요.

실제로 레이 올든버그는, 누구나 환대하고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제 3의 장소’의 주된 특징을 책에서 일곱 항목정도로 정리했었는데요.2)

저는 이 항목들 중에서도 결코 빼둘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만한 요소는 바로 아래의 두 가지가 아닐까? 생각해왔습니다.

ㄱ.#무료이거나 저렴한 가격 (Price) : 자격 조건(문턱) 없거나 매우 낮음

ㄴ.#규칙이 있는 자유로움 (Freedom) : '단골'과 매너

그리고 이하, 두 항목 각각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ㄱ.우선, ‘가격’의 문젭니다.

우리가 책 등에서, 과거의 정감가고 좋았던 마을 공동체, 카페, 술집 등의 이야기를 할 때 ‘전등 밑 그림자’처럼 간과하곤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과거의 ‘정감가고 좋았던 공동체’들을 만든 핵심 전제는 그 장소의 이용료가 무료이거나 혹은 굉장히 저렴해 전혀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눈치를 크게 볼 필요도 없었죠. 그런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든 남루한 사람이든 누구든 ‘문턱’ 없이 환대를 받을 수 있었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때론 섞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제가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라는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대목이기도 한데요.

하비에 따르면 19세기 중후반 ‘맨손의 빈곤한 시골출신 노동자들’로 북적법석이던 파리 골목은 그야말로 [노동자용 저렴한 식당·술집·카페의 시대]라고도 할 만했다고 합니다.

1851년 기준 4000곳이었지만, 불과 30년만에 4만2000곳(1885년)으로 10배가 늘었을 정도니까요.

역사지리학계의 개척자라고도 불리는 영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 그는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들며, 특히 자본주의와 도시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왼쪽)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 1830~1871>(데이비드 하비)의 영문판 표지 / Wikiwand, Routledge

비좁은 쪽방에 사는 이들에겐 공동의 주방, 사랑방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곳은 조금 시설이 허름할지라도 명백히 저렴하고 매력적인 가격, 외상, 자유로운 출입을 장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식량 분배 시스템에는 몇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대다수 하숙집 거주자와 부엌 시설이 부족한 수많은 가구 때문에(빈민의 63퍼센트는 요리시설로 화덕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식량의 소비와 준비를 길거리에서 하거나 카페로 갈 수밖에 없었다 [...] (또한,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노동 소득이 정기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식량을 외상으로 구입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다르게 말하면, 빈민 대상으로는 이처럼 싼 값에, 적당히 사정을 봐주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오늘날에도 부엌이 너무 비좁거나 재료를 사고 직접 만들 여유가 없어서 집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도시노동자들에게 더 싼 값에 더 질좋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이 시기엔 음식협동조합인 라 마밋(La marmite·‘냄비’라는 뜻의 프랑스어)이 결성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반 식당의 15%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친근한 분위기에서 조리된 식사를 할 수 있었기에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지부를 두고 운영되었다고도 하네요.3)

이런 곳은 주방 외에 사랑방의 역할도 톡톡이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렴한 밥을 간편하게 먹는 것 외에도, 노래를 부르거나 대화를 하며 즐길 수도 있었는데요. 이런 장소는, 꼭 노동자들‘만’ 오는 것은 아니었고 지식인(특히 학생)이나 부르주아 중에서도 ‘싼값’과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매력에 이끌려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이곳은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평소 억눌려있던 - 가정이나 일터에서도 말할 수 없는 불평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꾸준히 오랜 세월동안 적당히 싼 값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술집, 노동자 카페, 밥집은 정부 당국의 요주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고도 하죠.

* (경영자, 부르주아의 입장에서) 이웃의 술집은 골칫거리였다. 노동자, 심지어는 온 가족이 습관적으로 그곳에 모여 작업장이나 집에서 격리된 상태로 수행하는 하도급 일터의 억압적 여건하에서는 말할 수 없는 불평들을 털어놓곤 한다. 술집 단골이 대부분 직업상의 손님이라기보다는 이웃이므로 특정 직업 내의 노동 조건보다는 노동계급 일반의 여건에 기초한 관점이 형성될 수 있었다.

(리처드) 세넷이 지적하듯이 “카페가 동료 일꾼들 사이의 연설장소가 되면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곳이 된다. 카페에서 술기운 때문에 연설이 죽어버리는 분위기면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

* 발자크가 “인민의 의회”라고 부른 곳이 된 [...] 노동자 카페는 제2제정기동안 심한 규제와 감시를 당했다 [...] 부르주아들은 소란스러운 프롤레타리아의 길거리 생활 때문에 불안해져서 안정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확신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그런 공간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부르주아들은 대부분 늘 그런 곳을 기피했다 [...] 통제하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비좁고 부족한 주거 사정때문에 길거리와 카페는 노동계급 거주 구역의 사교 중심지로서 언제나 필요한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빈민들은 비좁은 단칸방에 살면서도, 밥을 먹으며 공동의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이웃사촌’들과 부담없이 사교 활동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식당, 카페에 정이 들었기 때문에 심지어 이사를 가더라도 너무 멀지만 않으면, 기존에 다니던 곳으로 계속 다니기도 했다고 하네요.

오늘날 통상 '민폐' '진상'으로 표현되는 배민 '외상요청'입니다만, 사실 과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수중에 돈이 없어졌기 때문에 노동자 대상 가게는 항상 외상이 기본이었습니다. 다만 차이라고 한다면 과거엔 손님이 주인과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외상을 갚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는 점이겠죠. (왼쪽) 19세기 프랑스의 노동자 대상 선술집의 내부 풍경을 묘사한 Léopold Flameng의 판화. 아이, 여성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노동자 대상의 카페, 식당에서는 신문 등 간행물을 저렴한 값에 이용할 수도 있었고 학식과 교양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연설, 설명을 들을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로 치면 큐레이션 레터라든지 시사해설 유튜브, 칼럼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실제로 과거 선술집에서 벌어진 연설, 설전의 내용이 그래도 신문에 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어 소개할 커피하우스는 아예 자체 신문을 발행하기도 하고요.) / 온라인커뮤니티, MAHMAH.CH(링크)

*

펍이나 노동자 식당 외에도, ‘제3의 장소’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영국의 ‘커피하우스’가 있었습니다.

커피하우스란 17~18세기 런던에서 번성했던 장소인데요. 이곳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누구나 다양한 소식을 얻거나 토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런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를 쓴 매튜 그린에 따르면 - 사실 커피하우스가 영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런던에서 커피하우스가 대중적이고 독창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렴한 입장료와 자격 조건에 제한을 두지 않은 환대의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커피하우스가 기능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어느정도 분화되긴 했지만 계급을 나누어 입장 자격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간단히 커피를 사는 것을 통해 통신원, 기자 등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자신의 취미에 맞는 클럽에서 - 일터나 가정에선 나누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입장료는 1페니 동전과 ‘비장의 잼얘(재미난 이야기)’ 정도였죠.

* (17세기 커피하우스의 풍경 묘사) 거기에는 온갖 뉴스가 있습니다. 원하는 만큼 앉아 있을 수 있는 좋은 난로도 있고, 커피 한 잔도 있으며,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도 모두 1페니(현가치 약 1500원·계산)에 불과합니다. 더 쓰고 싶지 않다면요 -Maximilien Misson

* 일단 커피하우스에 들어가 기다란 나무 테이블 앞에 다다른 손님이라면, 뉴스든 소문이든 간에 뭔가 한 가지는 말해야 했다. 어디서 들었던 것이든, 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것이든, 거리에서 목격한 것이든, 혹은 즉석에서 지어낸 것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 이 일까지 마무리 되었다면 이제 담배와 파이프, 마시고 싶은 음료를 큰 소리로 주문하면 된다.

-매튜 그린, <런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이하 동일)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계급보다는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기지 넘치게 그 장소에서 행동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에 스며들 수 있었죠. 그리고 펍 식당과 마찬가지로, 이런 공간은 비좁은 집에서, 훌륭한 서재와 간행물을 갖춰두지 않더라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 서민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

펍, 노동자식당, 커피하우스 등 이런 제3의 장소들은 사적이기만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얻을 수 없는 우연한 만남, 소속감, 기분전환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핵심을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싼 값]은 이 모든 평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환대의 핵심 전제라고도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1) 실제 단순히 책이 많은 공간이라고 한다면, 과거의 도서대여점이라든지 오늘날 입장료를 내는 북카페 등도 마찬가지겠죠. 네이선 로빈슨은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링크)에서 꽤 여러번 도서관의 '완전 무료'라는 믿기 어려운 특징에 대해 강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통상 어떤 것을 무료로 누린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도서관이야말로 이미 이용료, 입장료 등 모든 게 공짜인 엄청 급진적인(!) 공간이라는 거죠. 다만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도서관엔 입장료가 존재하기도 했습니다!(레터)

“도서관 모델이 삶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해보라 […] 도서관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좌파적 길의 전형을 보여준다 [...] 좌파는 ‘공짜’를 원한다고 툭하면 조롱당한다. 무료 대학이라니! 세상에 다음은 뭔데? 공짜 조랑말? 뭐라고 비웃든 도서관은 잘 굴러간다. 누구나 도서관을 사랑한다.” -네이선 로빈슨,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 中

2)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에서 제3의 장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 ①중립지대(Leveler) : 부담없고, 평등한 환대의 분위기 ②접근성과 편의(가격 등) ③단골의 존재 ④소박한 외관(일상성) ⑤대화가 일어남 ⑥장난스러운 분위기(놀이와 위트) ⑦또 하나의 집(소속감, 따뜻함)

오늘 레터에서는 그중에서도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저렴한 가격'(부담없음, 환대) '단골,매너'(자유롭게 대화 등이 오가지만 서비스가 아닌 공동체적 의미에서 진행) 두가지 포인트에 집중해보았습니다.

3) 라 마밋은 견습노동자 출신의 노동운동가인 외젠 바를랭 등이 1866년 설립한 식품회사였습니다. 사회적 기여금, 후원금, 밥값 등을 기반으로 운영한 이곳에서 그는 '중간관리업자'들을 제외해 가장 싼 값에 직접 재료를 공수해 노동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질좋은 음식을 먹게 했죠. 또한 저렴한 가격에 주간지 등을 읽을 수도 있게 했고, 이곳에서 노동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직접 듣기도 했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죠. (링크)

【3.‘규칙 위 자유로움’ : 효율적인 소비만 남은 도시에서 탈출하기】

“어쩌면 하버마스(<공론장의 구조변동>)처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과 뒤섞이는 것 자체를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 매튜 그린

이쯤 되면 조금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현재도 그럭저럭 싼 값에 밥이나 술, 커피 등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잔뜩 있는 것 같은데, 왜 오늘날엔 이런 장소에선 과거 제3의 공간 같은 커뮤니티가 발달하지 않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고객의 느긋한 머무름, 자유로운 활동’이 점차 허용되지 않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일텐데요.

오늘날 도심에 위치한 대부분의 저렴한 가게는 회전율을 높게(빠르게) 하는 박리다매형 모델(테이크아웃, 불편한 자리 등)을 띠고 있고, 충분히 장소에 머무르며 자연스러운 놀기, 딴짓, 떠들기, 눌러앉기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점차 도심지의 월세가 오르면서 주인 입장에서도 ‘느긋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보다는, 조용히 재빠르게 교환만 하고(밥↔돈) 사라지는 모델이 이득이었을테니까요. 실제로 곰곰 생각해보면 그간 제가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거나 먹는 행동은 대체로 컨베이어벨트 위의 사람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도심의 임대료가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실제로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로 인해 동네가 번성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해 기존의 가게가 속속 밀려나게 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링크)

요리사나 웨이트리스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원하는 음식이 든 상자에 동전을 넣어 조용히 먹은, 주로 20세기 중~후반에 뉴욕 등지에서 유행한 자동판매기 식당Automat Restaurant(링크)을 배경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독백을 하고 있는 1960년대 영상. 오늘날에도 인건비 절감, 회전율을 위해 이와 비슷한 식당들이 문을 열고 있다고 합니다.(링크) (왼쪽) 오늘날 도시의 거의 모든 가게-장소가 자동판매기 식당과 이미 유사한 상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객단가가 낮으면서(=서민대상) '비싼땅'일수록 회전이 빨라야합니다. / 유튜브(영상), 뉴스1

여기서는, - ‘자유로움’이 있을 때 그 장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이어서 주목해볼까 합니다.

*

ㄴ. 규칙 위 자유로움 = ‘단골’과 공동체

커피하우스와 펍 등은 공통적으로 아직 도시의 구획화가 그렇게까지 극심하지 않았던, 혼란스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시대에 유행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여튼 이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상상하는 거의 모든 기상천외하고 자유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커피하우스에 음식을 가져와서 먹는 것은 물론, 커피 한잔을 두고 몇시간을 앉아있을 수도 있었으며, 아이들은 돈을 내지 않고도 펍에 가서 일손을 좀 돕고는 소다수를 마시며 놀잇감으로 놀기도 했죠. 매일 밤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오갔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국 북부의 퍼블릭 바를 관찰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똥을 누지 않는 한, 거의 모든 행동이 허용되었다.”(레이 올든버그, <제3의 장소>) 라는 얘기(...)가 있기까지 했죠.

이런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가게 주인이 보살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임대료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무엇보다도 이렇게 자유롭게 행동하더라도, 주로 이 가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터줏대감들(단골)이 존재했고 공간의 ‘암묵적인 규약’이 자세하게 존재했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죠.4)

예를 들면, 라틴어 커피하우스에서는 반드시 라틴어 문법을 지켜서 이야기를 해야한다든지(틀린다고 해서 쫓겨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툼이 일어나면 선동자는 화가 난 사람에게 커피 한잔을 사야한다든지, 종교와 관련된 주제는 금기라든지, 욕설을 할 경우 12펜스를 내야한다든지 등입니다. 논쟁, 다툼이 생긴다 해도 주인이나 경찰이 개입할 것도 없이 대부분 손님들 사이에서 ‘해결(배심원의 최종 판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하죠.

이런 분위기가 너무도 재밌는 나머지, 정작 커피가게에서 커피는 안중에도 없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하네요.

* 1660년 겨울 피프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날 저녁 처음으로 콘힐에 있는 커피하우스에 갔다. 그곳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너무도 즐거웠다.” […] 다양한 손님들, 유쾌발랄함,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범위한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커피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 당시 런던에는 온갖 뉴스가 넘쳐 났다. 또 커피하우스 붐이 일었을 당시 런던은 호기심과 들뜬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런던은 “무슨 새로운 소식 없소?”라는 이 신성한 네단어만 외치면 누구와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화를 갈구한 것은 뉴스에 대한 굶주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신의 거칠고 비사교적인 부분을 다듬을 수 있고, 교양과 품위를 갖춘 타인들과의 “우호적 충돌”을 통해 교양, 미덕, 위트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대면’이라는 요소 - 상대방의 존재감 역시 커피하우스의 개방적이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소통의 핵심 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대면 상황에서는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에 대한 예의, 조리있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초조함, 어색함 등이 모두 벗겨져나갑니다. 상대를 마치 감정도 주관도 없는 NPC처럼 대하게 되는 거죠.

“엄청나게 맛있는 퀸 파인애플”에서부터 1715년 인신보호율 효력 중단 조치의 법적 타당성에 이르기까지, 대화의 범위는 실로 다양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제가 아무리 바뀌어도 정중하면서도 공손한 어조, 이 한가지는 변함이 없었다. 낯선 대화 상대자가 바로 자기 앞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즈웰은 1763년 어느날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코벤트 가든에 있는 톰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두시간을 보냈다. 대화의 주제가 문학 쪽으로 넘어갔다. 엘베시우스, 볼테르, 루소, 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대로 잘 말한 것 같다. 오늘처럼 이성적인 대화를 나눈 게 언제쯤이었는지 모르겠다 [...] 터무니없는 감정을 토로하거나, 무절제하게 웃지 않았던 것은 낯섦에서 비롯된 거리감 덕분이었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곪아 터지고 있는 적나라한 편협성, 독설에 찬 고함, 이유없는 인신공격과는 얼마나 다른가! 화면 뒤로 몸을 숨기면 우리는 얼마든지 무례해질 수 있다[...]이는 상대방이 바로 앞에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커피하우스에서 벌어진 논쟁은 언제나 배심원단의 평결로 끝났다

여기서 저자의 생각을 받아, 잠깐 오늘날의 소통을 놓고 해찰해보자면 인터넷에서의 모욕, 잦은 소통 실패는 꼭 모욕당한 상대방의 손해만은 아닐 겁니다. 이는 말하는 사람의 손해이기도 한데, 상대방을 벽지처럼만 대하는 사람은 단지 감정의 배설과 의미없는 말을 하는 데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쓰면서도 또 자신의 교양과 균형 감각을 키울 수도, 당혹감이나 뿌듯함을 느낄 수도, 세계를 넓힐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 낭비라고 할만하죠.

*

펍과 커피하우스 등의 진솔하며 왁자한 분위기는 자주 정치적이고 (권력자 입장에서) ‘불온한’ 방향으로 뻗어가기도 했다는데요.

이는 자신을 꾸며내고 남들을 모욕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서로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재미를 얻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어쩌면 당연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입니다.

4) 이 부분은 <제3의 장소>에서도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단골들은 항상 주인을 도와 '뉴페이스'가 오면 친절하게 이야기를 걸어주거나 건강한 토론을 이끌고, 싸움을 중재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관리하는 등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오늘날 인터넷 공간에서의 게시판 관리자, 올드비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분위기는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제3의 장소가 만들어질 수 없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이같은 우아하고 친숙한 단골의 비중이 적다는 것도 큰 이유일 것입니다(대부분의 인터넷 논쟁이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이유이기도요). 책 속 관련 대목을 짧게 인용합니다. “수가 적든 많든 단골손님은 그 자리를 편하게 느끼며 흥겨운 분위기를 주도한다. 단골손님의 기분과 태도는 전염성이 있는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4.빗장 커뮤니티는 생기 넘칠까?】

여기까지 읽다보면, 과거 유럽 거리는 ‘유토피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동전 하나를 가지면 누구나 함께 어울리고 적당한 값에 사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 특히 도시에서라면, 언제나 새롭고 다양한 손님들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정중하게 타인의 세계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제3의 장소는 끈적한 공동체라기보다는, 적당히 예의있고 거리감 있게 서로를 호기심과 존중으로 대하는 느슨하고 산만한 공동체에 가까웠죠.

하지만 점차 도심지역의 땅값이 오르고, 기존의 사교 클럽들은 ‘빗장 커뮤니티화’* 되면서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느긋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들은 빠르게 부유층, 특권층만의 특권이 됩니다. 실제로 매튜 그린에 따르면 19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들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이같은 ‘빗장 커뮤니티(신사 클럽)’가 늘어나면서였다고 하죠.

*빗장 커뮤니티 = 제3의 장소와는 반대로, 입회/출입에 엄격한 자격 조건을 두고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 등을 통해 비슷한 지위의 사람들(주로 부유층)만 모이는 종류의 커뮤니티

이는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고급’ 아파트 안에 경로당과 주민자치시설, 식당, 영화관 등 모든 것을 마련하고 심지어 문을 걸어잠그고 그곳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기사에 나오곤 하죠. 이에 대해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이기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그렇게 값을 올리고, 환대의 분위기 대신 ‘격조높은 자격 조건’을 내세운 빗장 커뮤니티 안은 아주 생동감 넘치고 즐거웠을까? 하는 지점이죠.

이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하고 우화적인 실화(?)를 짧게 소개하며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

앨러스테어 보네트의 <장소의 재발견>은 ‘지도에 없는 장소’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인데요. 이 중 ‘빗장 커뮤니티’와 관련해 제가 주목한 한 장소는 바로 ‘더 월드 호’라는 커다란 배(링크)입니다.

더 월드 호는 2002년부터 바다를 떠다닌 초호화 크루즈인데요.

다른 크루즈들과 달리 독특한 점은, 이 배는 130가구가 각자 직접 소유한 ‘물을 떠다니는 공동주택’이라는 점입니다. 자격 조건은 1000만달러 이상의 순자산 보유 여부이고, 한 가구당 기본으로 최소 200만달러에서 700만달러(약 30~100억)를 지불, 매년 수억에 달하는 막대한 관리비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대단한 부자들만의 ‘섬’이라고 할만 합니다.

'움직이는 고급주택'이라 불리는 The World 크루즈 선상 수영장의 풍경 (왼쪽) 서울 소재 한 아파트 단지 내부에 존재하는 입주민 대상 카페 라운지의 모습. / The World, 아시아타임즈(링크)

처음엔 티켓을 가지고 승선한 일반 승객들과 크루즈의 공간을 나누어 썼지만, 수백만달러를 투자한 부자들의 항의로 ‘자격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치우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온전히 이 떠다니는 섬을 소유하게 됐다고 하죠.

더월드호는 2002년부터 전세계를 순회하고 있는 거대한 민영 유람선으로 그곳은 물에 떠있고 울타리 있는 공동체이며, 풍요하기 짝이 없는 고립 영토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사치스러운 구명선이라고, 우리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피난민들이 가득한 배라고 할 수 있다.

[...] ”나는 이곳에 아파트를 얻으려고 수백만달러를 썼는데, 어떤 사람들은 고작 수백달러를 쓰고서도 나와 똑같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이런 불평이 지속되다가 급기야 주민들이 저항에 나섰고, 2003년에 이 배의 소유권을 완전히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앨러스태어 보네트, <장소의 재발견>(이하 동일)

하지만 과연 이곳의 사람들은 행복하고, 언제나 장소는 느긋하고 생동감과 우아함, 열정에 넘쳤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영국의 탐사기자는 이곳에 탑승하고 나서 “이 배에는 깊은 우울이 스며들어 있다. 분위기는 마치 장례식 같다. 여기보다는 차라리 철 지난 바닷가 휴양지가 더 멋져 보일 것이다”고 말했죠.

또한 한 연구소에서 이 배의 공간 효용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구원들은 이 배가 지나치게 ‘낭비가 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나치게 크고 잘 구비된 공간에 비해 공간 곳곳이 방치되어있고(아무리 ‘청소’를 한다고 해도) 생명력 없이 죽어있고, 호화롭지만 그저 겉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죠.

조금 길긴 하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대목이므로 일부 옮겨보겠습니다.

연구소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놀라운 부분은, 선상 공간 가운데 상당수가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상갑판의 테니스장에는 웅덩이가 생겼고, 각종 물품이 그 옆에 쌓여있었다. 식당이 대여섯군데 되지만, 한번에 겨우 두군데만 문을 여는데, 그 수요가 별로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떠 있는 도시’는 차라리 더 수수한 규모에서 잘 작동할 것 같다 […]

테니스장 이야기로 돌아가면, 더 월드 호는 실물 크기의 테니스장을 보유한 유일한 배이며, 이것 역시 마케팅에서 독특한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이것은 배를 진정한 장소로 바꾸려 노력하는 것의 무익함을 부각시키는 특징일 뿐이다 […] 이런 시설이 사치로 여겨질 때가 있다면, 여러분이 어딘가 좁은 곳에 있음을 자각할 때뿐이며, 실제로 이 선박에 있는 여러 시설물이 딱 그렇다. 이 유람선의 식당, 극장, 온천이 특별하고도 휘황찬란해 보이는 까닭은 바다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테니스 경기가 더 훌륭해지거나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

본질적으로 운송 수단인 것이 공동체 감각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 하지만 부자들도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이란, 진정한 역사와 관계가 모두 사라진 뿌리 뽑힌 존재이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샹들리에와 테니스장이 있는 커다란 배에서 사는 삶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런 선박은 더 일상적인 장소들이 손쉽게 달성하는 것의 모조품만을, 그것도 일시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모조품만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장소는 그곳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 떠들썩함, 우연들이 없다면 생동감을 얻지 못합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해봤자 어설프고 어색한 모방에 지나지 않죠.5)

공간에 다양성과 숨결을 불어넣고, 공간에 ‘기생’한다기보다는 공간을 진짜로 살게하고 생명력, 다양성 그 자체를 불어넣어주는 ‘사람들’의 존재 말이죠.

*

이 책을 덮으며 저는 곰곰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마치 더 월드 호처럼 대부분의 공간이 수익을 내기 위한 배타적인 공간으로 생명력을 잃은 채 시무룩해지게 되었고 - 극소수의 공간만을 겨우 가지고 살아갈 뿐인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런 도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스럽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5) 이 대목을 쓰며, 최근 본 영화 <슬픔의 삼각형>(2022·링크)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일부 배경은 초호화크루즈인데요. 승선객보다 이들을 보조,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더 많은 이 지루한 고급배에서 한 엄청난 부자 여성 탑승객(러시아 대부호의 아내)은 강제로 젊은 직원들에게 '즐겁게 놀아!'라고 강요하며 업무시간에 억지로 수영, 슬라이드타기를 시킵니다. 처음 그 영화를 볼 땐 '갑질 진상이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 장면은 화려하면서도 뻔하고 생명력 없는 공간에 평생 익숙해져있던 이의 애처롭고 무익한 시도를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을지도요.

【5.맺음말】

오늘 레터에서는, 조금 낯설 수 있는 ‘돈’의 차원에서 - 환대와 소통, 장소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해보았습니다.

사실 오늘 레터를 쓰는 내내, 저는 한편 계속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이런 종류의 모든 '대면 활동'은 어느정도 인터넷, 유튜브로 대체된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많은 측면에서 얼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1.가격이 저렴하고 문턱이 거의 존재하지 않음 2.부담없이 언제든 연결될 수 있음 3.대화가 일어남...) 오늘날 사람들은 유튜브나 틱톡 등을 통해 항상 연결되어있고, 자신이 평생 만나볼 수 없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잖아!

하지만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곳에는 장소와 몸이 없고, 그 안에선 진정한 ‘관계’가 일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간접 체험은 - 비록 겉으론 '소통'같아보이지만 - 한 사람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타인의 존재감에 온몸으로 마주하는 경험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 순간, 사람과 사람의 눈길이 맞닿는 순간은 어떻게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을 교육하고, 조율하고, 기죽게하거나 기쁘게 만듭니다. 그 대화의 내용이 비록 시시껄렁할지라도, 단지 '대면'이라는 점 하나가 그 사람을 하루종일 기쁘게 만들 수도 있죠.

과거 도시에서의 조우와 삶에 대한 에세이를 많이 써온 비비언 고닉은 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고닉은 어느날 집의 수도꼭지가 고장나자 동네의 조그만 철물점에 가는데요. 이곳에서 사소하지만 뼈있는 농담을 던지고, 거기에 주인이 반응하자 큰 행복감을 느끼죠.

“수도꼭지 헤드를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가버스라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곳은 건장하고 나이 지긋한 유대인 남자들이 카운터에 서있는 옛날식 철물점이었다 […] (주인이 수도꼭지를 고치자) 내가 탄성을 질렀다. “고치셨네요!” 문제를 해결했다는 승리감과 그것을 부인하면서 느끼는 흡족함 사이에서 오갈 데 없어진 남자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며 음울한 미소를 지었다 […] ”(수도꼭지를 고쳐주신) 덕분에 저는 해방돼서 더 큰 걱정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사내는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시가를 다시 옮겨 물고는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거요. 그건 진짜 맞는 말이예요.” 나는 행복해져서 철물점을 나왔다.”

-비비언 고닉,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中

이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감들이 사라지더라도 뭐 어때? 싶을 수 있지만, 그 작은 순간순간의 사건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고 했을 때 - 과연 이런 순간들을 몽땅 잃어버린 채 효율적으로 자기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이들은 행복할까요?

*

실제로 어느정도 과거의 ‘낡은’ 공간을 사이버공간이 대체했을런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추세에 맞서려는 것은 마치 쏟아지는 폭포를 거꾸로 돌리려는 바보의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은, 역사상 오늘날만큼 한 사람이 이토록 좁은 공간만을 차지하고도 불평없이 잠자코 있었던 시기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비좁은 쪽방에 살면서도 '공동의 응접실'을 찾아 뛰쳐 나왔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작은 방 안에 스마트폰을 쥐고 기력을 소모하며 지루하고 얌전하게 잘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경험은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깨우침을 줬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것을요.

아마도 그것이, 태어나서 대체로 한번도 제3의 장소를 체험해보지 못했던 Z세대들마저도 어떤 장소를 그리워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요.

✏️

“내가 아는 꽉 막히고, 스스로 사고할 줄 모르고, 불행한 사람들은 대개 온종일 일하고 바로 집으로 가서 먹고, 텔레비전 보고, 자는 것 밖에 하는 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일과 가정생활 외의 그 어떤 사적인 경험도 없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 직장과 집만 있고 놀러갈 곳이 없다”- 레이 올든버그, <제3의 장소>

미국 사진작가 Eric Pickersgill의 시리즈. 그는 현대인의 단절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장면에서 스마트폰만을 지운(removed) 작품을 제작해왔습니다. ⓒEric Pickersgill(링크)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데이비드 하비, 김병화 옮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글항아리, 2019.

-책의 부제는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 1830-1871'입니다. 1830년(7월혁명)부터 1871년(파리꼬뮌)까지 약 40년간의 시기, 재상 오스만이 본격적으로 파리의 구획을 '근대화' '효율화'했던 시기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 빈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파리로 몰려와 열악한 쪽방과 골목에서 웅성였던 혼란과 에너지가 넘쳤던 시기를 장소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 있는 책입니다. 발자크, 에밀 졸라 등 당대의 파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던 소설가들의 작품과 도미에의 판화 등을 풍부하게 활용해 당시 파리 뒷골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그 풍경 가운데서도 주로 노동자들의 식당과 관련된 11~13챕터를 참고했는데, 이 부분에 묘사된 당대의 '계급/장소의 혼합과 환대, 빈민들의 진솔하고 역동적인 어울림'이야말로 어찌보면 핵심 테마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매튜 그린, 김민지 외 옮김, 『런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 경북대학교출판부, 2016.

-얇은 책이고, 과거 <제3의 장소>를 읽고 나서 커피하우스에 대한 묘사에 매혹되어 관련해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고 싶어 읽게 되었던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핵심적인 질문으로 '오늘날 왜 스타벅스는 그토록 조용한데, 과거의 커피하우스는 이렇게 엉망으로 시끄럽고 재밌게 서로가 교류했을까?'를 던지고 있는데요. 아쉽게도(?) 책의 내용이 대체로 과거 커피하우스의 특징에 대한 사료 중심이기 때문에 그 질문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늘 레터를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건 어쩌면 스타벅스가 환대의 이미지를 흉내내고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소비자가 장소를 오래 점유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약간은 ‘뻔뻔해져야’ 하는 공간이라 그런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오래 자리에 머무른다고해서 뻔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간에 기여하거나 공간에 생동감을 더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단지 보릿자루처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머쓱해진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람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정도 공간에 생동감을 더하게 될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카공족의 경우라면 사실 이때의 카페는 '제3의 공간' 특징과는 좀 동떨어져있고, 그보다는 코워킹스페이스(제4의 공간/혼합공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링크).

레이 올든버그, 김보영 옮김, 『제3의 장소』, 풀빛, 2019.

-책의 부제는 '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이고요. 이 책의 영어판이 처음으로 나온 것은 1980년대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과 메시지를 주는 책입니다. <제3의 장소>가 17~19세기 펍과 태번, 커피하우스, 비어가든 등 '제3의 장소'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사실 오늘 다룬 내용을 전반적으로 이 책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만 조금 더 개별 장소의 구체적인 특성에 주목해보기 위해 위의 책들을 골라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과거 노키즈존과 관련된 뉴스레터에서도 메인으로 다룬 적이 있는데요. 오늘 편지와 함께 이하 두 편의 편지(💌‘노키즈존: 죽은도시에서 아이 키우기’ & 💌‘‘노○○존’에 대한 해찰 : 가게 안의 ‘시민’들) 를 함께 읽어보시면 도시와 관련해서 조금 더 이런저런 입체적인 생각을 해보실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오늘 레터의 내용에 관심이 생기셔서 책을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일단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보시는 걸 개인적으로는 추천드립니다.

앨러스테어 보네트, 박중서 옮김, 『장소의 재발견』, 책읽는수요일, 2015.

-이 책은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마을,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 지하 도시, 폐허, 모퉁이, 국경 초소 사이 등 '존재 자체가 모호할뿐더러, 쓸모조차 모호한' 특이한 공간들에 대해 쓴 짧은 글들을 모아둔 탐사기입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공간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흥미로운데, 대체로 장소에 대한 글들은 장소의 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글이 전개되지만 이 책은 역으로 장소(우리가 일상적으로 장소라고 부르는 곳들)의 여집합, 흔적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장소에 대해 색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중에서도 제 눈에 띄었던 '더 월드 호'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에 소개해보았습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공간의 힘은 활력에서 나온다

독서시간: 약 2분 / 글자수: 약 1200자

🖍글 속 한 문장

중장년 센터의 기획부터 운영까지 포괄적으로 경험하면서 얻은 통찰은 이런 것이었다. 공간이 어떻게 기획되고 운영되느냐에 따라 사람들 간의 소통, 교류 정도는 달라진다. 같은 중장년 시설이어도 지리적 위치에 따라 이용자 특성과 욕구는 달랐다. 그럼에도 현재 전국의 중장년 시설들은 지역 특성과 별 상관없이 비슷비슷한 기능과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금 의아하다. 마치 유행을 좇듯 1층에 카페는 필수고, 공유 사무실이나 공유 주방, 디지털·미디어실 등을 요리조리 구색 맞추기로 배치하는 느낌이다. [...] 공간의 힘은 규모나 세련된 디자인이 아니라 ‘활력’에서 나온다. 활력을 만드는 것은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스토리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손때 묻히며 하나하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명력이 싹튼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직접 다양한 공유공간을 기획,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필자가 쓴 '공간의 힘'에 대한 짧은 칼럼입니다.

사실 우리는 장소만 대략 화려하게 잘 꾸며놓으면 '알아서 잘' 사람들이 모여서 장소를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기물이나 동선, 실내 디자인, 사람들의 반응 등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장소에 녹아들 것인지(+기여할 것인지) 스쳐지나갈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이는 공공건물이든, 가게이든 마찬가지죠. 하지만 오늘날 도심지 대부분의 가게는 '역사'나 사람의 손때가 묻어들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바뀌고 있으며 수익성만을 제1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친밀하고 편한 공간'으로서 작동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가게는 사랑방이 될 수 있을까?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3800자

🖍글 속 한 문장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 내가 손님으로 다른 가게들을 드나들 때는 몰랐다가, 가게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손님들은 거의 대부분 올 때마다 똑같이 행동한다. 본인은 모르지만 가게 주인은 안다.

[...] 한국이나 캐나다나 장사 잘된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싸가지 없는 점주…>도 건물주가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리는 바람에 성공적으로 운영한 첫 번째 가게의 문을 닫고 다른 장소로 옮겼다고 했다 [...] 여러 좋은 손님을 접하면서 “동네 사랑방까지는 아니더라도 (…) 손님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되돌려주는 ‘편의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성우제씨가 같은 '자영업자'가 쓴 책을 읽은 감상문입니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분야의 자영업을 하지만 공감하는 포인트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 레터는 대체로 '손님'의 입장에서 쓰게 되었는데요. 사실 레터를 쓰는 내내 가게 주인들이라고 해서 돈을 덜 쓰는 손님에게 눈치를 주고 싶어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웬만해서는 친절한 손님들과 어울리며 느긋하게 보낸다면 좋겠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임대료의 문제, 인터넷쇼핑 비율 증가, 프랜차이즈 증가 등) 과거 형태의 가게를 계속 꾸려나가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과거의 공간이라고 해서 이미 생명력을 오래전에 잃은 곳을 무조건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겠죠. 시대를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이 시대에도 좋은 경험과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가장 비밀스럽고 화려한 배 위의 6년

영문(CNN)

🖍글 속 한 문장

"모두가 상당히 부유하죠...그들은 '아니오'라는 말을 듣는 데 익숙하지 않죠. 소금통을 테이블에 놓을 위치부터 남극의 얼음 속에서 배를 얼마나 남쪽으로 보내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가진 매우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The World에 탑승한 모든 사람이 거의 끝없는 가처분 소득을 가지고 있다면, 왜 그들은 개인 소유의 슈퍼요트를 타고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하지 않을까요? 왜 그들은 위원회에서 여정을 투표로 결정하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걸 선택할까요? "아, 정말 쉬운 질문이에요." 안토누치가 말했다. "배에 탄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요트를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평생 보트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The World에 가는 이유는 승무원 고용, 연료 구매처 파악, 모든 사소한 일에 대한 수표 작성을 다루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매년 큰 수표 한 장만 쓰면 됩니다. 그러면 다 처리됩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떠다니는 고급아파트 '더 월드 호'의 내부에 대한 상세 정보,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비밀입니다. 특히 이들이 슈퍼리치들로만 구성되어있고 굉장히 폐쇄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이 기사는 은퇴 변호사이며 한때 더 월드호의 주민이었던 피터 안토누치(사진)를 CNN이 2024년 직접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안토누치는 은퇴 후 더 월드호의 일부 객실을 구매해 선상에서 6년을 보냈는데요. 그곳에서의 생활을 약간 엿볼 수 있는 인터뷰입니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가상의 배를 배경으로 한 세편의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성수동은 계속 ‘핫플’일 수 있을까?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600자

🖍글 속 한 문장

팝업 매장이 성수동의 젊은 이미지를 한껏 끌어올렸지만 그늘도 있다. 바로 임대료 문제다. 지난해 성수동 일대 상권 임대료는 1년새 30% 넘게 올랐다. 평당 수 천만원의 권리금이 붙는 것도 예사다.

성수동은 과거에도 젠트리피케이션, 즉 낮은 임대료로 장사하거나 거주했던 기존 원주민이 쫓겨나간 현상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2010년대 중반 성수동 서울숲길에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가 인기를 끌면서 이때도 임대료가 크게 뛰었다. 당시 성동구청은 서울숲길을 포함한 성수1가2동 일대 25만9518㎡를 상권 보호구역, 일명 ‘지속가능발전구역’(발전구역)으로 정했다.

이곳에선 프랜차이즈 매장 입점이 일부 제한됐다 [...] 한풀 꺾인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다시 불거진 건 최근 들어서다. 성동구가 지정한 발전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곳에서 다시 임대료가 뛰기 시작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방치된 장소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핫플'을 만드는 건 사람의 일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을 들여 가꾸는 곳에는 재미와 개성, 진정성이 깃들고, 그 에너지에 이끌려 사람들이 먼 곳에서도 몰려들죠. 문제는 그런 공간의 매력은 곧장 '땅값'으로 반영되고 그러면 기존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입니다.

핫플이라고 불리며 젊은 세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수동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왔는데요. 그럼에도 '사람이 모이는 곳'의 매력은 쉽게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쌈짓돈을 들고 오는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오늘날 접근성 좋은 도심 공간에서 '제3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착잡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단지 '착잡함'만으로 표현해서는 안될텐데, 왜냐면 인구밀도가 높은 장소에 서민들도 편하게 접근가능한 '적당한reasonable' 수준의 저렴하고 친절한 분위기의 장소가 있다는 건 사실 굉장한 '사회적 공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한 학자는 19세기 영국 펍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세계 어느 도시도 런던만큼 노동자들이 꼭 필요하지만 사소한 삶의 편의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중산층이 이런 편의를 이렇게 많이 누리는 도시는 전혀 없을 것이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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