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궁달득상(窮達得喪)과 증공(曾鞏)

2025-12-02

이번 사자성어는 궁달득상(窮達得喪. 궁할 궁, 이를 달, 얻을 득, 잃을 상)이다. 앞 두 글자 ‘궁달’은 ‘궁핍한 처지와, 뜻을 이룬 상태’란 뜻이다. 반대말을 나란히 배열한 구조다. 마찬가지로 ‘득상’은 ‘얻음과 잃음, 즉 이익과 손해’를 아우른 말이다. 이 네 글자가 합쳐져,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오르락내리락 변화’를 총괄하는 의미가 만들어졌다. ‘궁달득상’은 증공(曾鞏. 1019~1083)이 요절한 친구의 문집에 쓴 서문, ‘왕심보문집서(王深甫文集序)’에 등장한다. 현재 중국에선 한 글자가 바뀐 ‘궁통득상(窮通得喪)’으로 자주 쓰인다.

송(宋)나라 정치가 겸 역사가 증공은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호부낭중(戶部郎中)을 지냈고, 부친은 의례를 담당하는 태상박사(太常博士)였다. 그러나 실상은 유복한 환경이 아니었다. 불행히도 어려서 모친과 사별했다. 28세에 부친마저 갑자기 세상을 떴다. 증공은 계모를 봉양하고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과거에 응시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평생 세 차례 과거에 응시했는데, 39세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사 시험에 합격한다. 그가 제출한 담백한 문체의 답안지는 구양수(歐陽脩)를 비롯한 시험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증공은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소식(蘇軾) 등과 함께 문장에 뛰어났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힌다.

증공의 관료 생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그가 청백리였고, 지방관 시절엔 주민의 불편을 덜어주려 동분서주했기 때문이다. 치저우(齊州) 생활을 마치고 이임할 때, 주민들이 교각을 망가뜨려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증공은 평생 1000편이 넘는 산문을 썼다. 그의 산문(散文)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는 서정적이지 않은 문장을 선호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자제했기에, 그의 글은 깔끔하고 전체적으로 은은한 향기가 난다. ‘아, 심보의 의지가 차츰 튼튼해지고 덕이 차츰 진전되어 가던 중이었는데, 불행히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처럼 43세에 요절한 친구를 추모하는 취지에서 출발한 ‘왕심보문집서’에서도 격한 감정 표현은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자제력이 놀랍다.

둘째, 통찰력이 돋보인다. 뭔가를 주장할 때, 적절한 근거를 제시한다. 추론을 할 때는 대충대충이 아니고 꽤 정밀하다.

셋째, 문장의 톤(tone)이 나긋나긋하고 템포(tempo)도 느긋하다. 누군가 그의 산문을 읽을 때면, 여유를 갖고 음미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이유다.

“증공 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능가하고, 또 모든 아름다움을 잠재우는 향기를 내뿜는다.”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소식도 이렇게 증공의 산문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글도 글이지만, 증공의 매력적인 인품에 대해 많은 이들이 기록으로 남겼다. 한 예로, 신법(新法)을 추진한 개혁가 왕안석에겐 정적은 많고 절친은 거의 없었다. 왕안석은 자긍심이 대단해 우정을 나눌 때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왕안석도 자신과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눴던 사이라고 증공을 회고했다. 두 문장가의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서인지, 서로 서신도 자주 교환하며 깊게 교류했다. 사실 둘은 인척 관계이기도 했다. 증공의 고모가 왕안석 아내의 외조모였다.

궁달득상. 이 잣대로 보면, 증공의 인생은 조금 역설적이다. 외부 환경은 열악했다. 가정에 불행이 계속 이어졌다. 신법을 두고 정치적 대립도 첨예한 시기였다. 그런데도 증공은 글, 직장 생활, 교우 관계, 이 모두에서 굴곡이 심하지 않은 성공적인 삶을 이어갔다. 굳건한 철학이나 원칙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방에 꽃 향기 가득한 계절에, 향년 64세로 세상을 하직했다.

증공은 유교(儒敎)뿐 아니라 역사와 도교(道敎)에도 조예가 깊었다. 장자(莊子) ‘양왕(讓王)’편에 ‘고지득도자(古之得道者), 궁역락(窮亦樂), 통역락(通亦樂)’이란 글귀가 나온다. ‘깨달은 이는 곤궁할 때나 일이 잘 풀릴 때나 한결같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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