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자료 확보...은닉·승계 경로 조사
30년 만에 다시 불붙은 비자금 논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300억원대 비자금 은닉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계좌 추적을 통해 자금 흐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최근 노 전 대통령 일가 및 관련 인물들의 금융 계좌 자료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분석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번 수사는 1993년 금융실명제 이전 자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만큼 방대한 양의 금융 거래 내역을 역추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검찰은 오랜 시간에 걸쳐 비자금이 다양한 형태로 은닉·관리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금의 출처와 이동 경로, 상속 여부 등을 다각도로 파악 중이다. 이 과정에서 공소시효가 살아 있는 범죄 혐의가 드러날지가 관건이다.
노태우 비자금 문제는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 소송에서 다시 불거졌다.
노 관장 측은 소송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 성장 과정에 활용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고(故) 김옥숙 여사가 보관했던 '선경건설 명의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사진과 ‘선경 300억’이 적힌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1991년 노 전 대통령이 300억 원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선경건설 명의의 어음을 받은 뒤, 이 자금이 태평양증권 인수와 선경(SK)그룹 경영 기반 마련에 쓰였다는 것이 노 관장 측 주장이다.
이 내용은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수사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이다. 반면, 최 회장 측은 해당 자금 수수를 부인하며 단순 활동비 지원 약속이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메모를 유효한 증거로 인정했고, 이 돈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 원을 재산 분할금으로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 심리 단계에 있다.
비자금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관련 고발도 이어졌다. 5·18기념재단은 지난해 10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1,266억 원 상당의 비자금을 은닉했다며 김옥숙 여사, 노소영 관장,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군사정권 범죄수익 국고 환수 추진위원회와 일부 정치인도 이와 같은 취지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도마 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비자금이 국내외로 나뉘어 은닉된 정황이 있다고 지적하며, 차명계좌와 고액 저축성보험 가입, 동아시아문화센터 출연금 등을 문제 삼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부터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최근 5·18기념재단은 비자금 환수를 위한 법률가 중심의 '신군부 비자금 및 부정 축재 재산 환수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법 개정 및 재산 추적 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의 자금 흐름 추적이 본격화되면서 30여 년 전 은닉된 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공소시효 내에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지가 이번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박문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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