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부터 일찌감치 중국 시장 문을 두드려 중국 진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간 이랜드. 중국 시장을 이해하고, 관계자들과 신뢰를 쌓아나기 위해 펼쳤던 그들의 노력은 많은 기업에 귀감이 되어왔다. 현지에 파견된 직원들은 아이들도 국제학교가 아닌 현지인들과 같은 학교에 보내고 그들처럼 생활했다고 한다. 관료들에게는 끊임없이 면담하고 친필편지를 보내는 진정성으로 관계를 맺어갔다. 2002년 중국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창궐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떠나는 가운데에서도 묵묵히 중국에 남았던 그 노력은 이랜드의 괄목할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현지인을 우선 채용한 인사를 비롯한 모든 활동에서도 중국 국민들은 이 기업의 진정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랜드가 코로나-19 등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한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로 풀이된다.
이 같은 노력에 움직이지 않을 시장이 어디 있을까. 이제 이랜드의 중국 시장을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으로 치환시켜보자. 최근 모바일이나 온라인 광고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중국 기업 중 하나가 테무다. 최근 카카오톡·네이버 할 것 없이 테무 광고가 끊임없이 걸린다.
테무는 2023년 8월 한국어 판매사이트를 개설한 이후 엄청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국시장에 깊숙히 파고 들었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한국인이 테무에서 결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은 2023년 311억원에서 2024년 6002억원으로 20배가 늘었다. 국내 유통업체 대비 금액이 큰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성장세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더욱이 곳곳에서 접하는 광고 물량을 보면 한국시장에서 더욱 큰 성장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고 관측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물류센터 계약까지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기업들과 테무의 행보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테무가 쏟아내는 광고는 있지만, 테무의 전략과 정책에 대해 물을 수 있는 통로는 없다. 홍보 대행사를 두고 있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그들의 홍보를 대행할 뿐이어서 답을 받는 것 자체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상황이 비슷한지, 입다문 테무를 비판하는 외신 기사들도 상당수다.
우리나라의 법과 규정, 문화를 존중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개인정보보호 침해 소지가 다분한 셀러 공개나 여과없이 내보내는 북한 선전물, 욱일기 상품 등은 한국인의 공분을 샀다. 고객의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협력사들의 정보조차 정확하게 게시하지 않아 지적을 받았다. 한국 셀러를 모집할 때도 불협화음이 있었다. 초청장을 받은 기업만 들어간 것도 그렇지만 언제 어떻게 판매를 하겠다는 것도 감감 무소식이다. 저렴한 가격 외에 무엇하나 좋은 소리를 듣는 정책이 없다.
테무에게 한국시장은 어떤 의미일까. 트럼프 정책에 반대급부 대안으로 한국 시장을 본다든가 하는 해석들이 쏟아진다. 대답하지 않으니 알 도리는 없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테무는 한국 시장에서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의 소통이 그 첫 단계다.
문보경 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