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감독 못하면 개인배상" 성신양회 소액주주 승소 판결 의미는?

2024-11-12

[비즈한국] 성신양회 소액주주들이 시멘트 가격 담합 행위로 발생한 회사 손해를 배상하라며 임원진을 상대로 낸 소송 2심에서 최근 45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전체 배상 규모는 1심보다 25억 원이 줄었지만 임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1심과 같이 인정됐다. 주목할 점은 재판부가 담합 행위와 관련해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임원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인데, 이처럼 이사의 충실 의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은 잇따를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끈다.

서울고등법원은 제18-3민사부(재판장 진현민)는 지난달 25일 성신양회 소액주주들이 회사 시멘트 가격 담합 행위로 발생한 회사 손해를 배상하라며 김영준 명예회장과 김태현 회장, 김 아무개 전 부회장, 장 아무개 전 영업총괄부장 등 성신양회 임원 4명을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 임원들이 총 45억 원을 회사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임원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여전히 인정됐지만 전체 배상액이 1심(70억 원) 대비 25억 원 줄었다.(관련 기사 [단독] "시멘트 담합 손해 배상하라" 성신양회 주주, 경영진 상대 70억 승소)

손해배상액은 담합 사건 발생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영준 명예회장이 45억 원(1심 70억 원)을 부담하되, 45억 원 중 20억 원(30억 원)은 공동 대표이사였던 김 아무개 전 부회장이 김 명예회장과, 45억 원 중 15억 원은 이사였던 김태현 회장이 김 명예회장, 김 전 부회장과 함께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담합에 가담한 장 아무개 전 영업총괄본부장이 나머지 세 사람과 함께 5억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은 장 씨 항소가 기각되면서 유지됐다.

성신양회 임원 3명에 대한 손해배상액 감액 배경으로는 △담합행위 동기가 경영 위기 극복으로 보이고, 담합행위 과정에서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 △담합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점 △담합 사건 당시 법률상 이사 감시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이 정립되던 시기였고, 담합행위 이후 준법경영 노력을 기울인 점 △장기근속으로 회사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이 고려됐다.

주목할 점은 재판부가 담합 행위 관련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임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담합행위에 직접 가담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받은 장 전 영업총괄본부장은 물론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태현 회장과 김 아무개 전 부회장, 사내이사였던 김태현 명예회장에 대해서도 1심에서와 같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들이 이사로서 장 아무개 씨의 업무 집행을 감시·감독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상법에 따라 이사는 회사에 충실할 의무를 진다.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회사에 대해 연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주식회사의 이사는 담당업무는 물론 다른 업무담당이사의 업무 집행을 감시할 의무가 있다. 스스로 법령을 준수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업무 담당 이사들도 법령을 준수하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감시·감독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셈이다.

재판부는 “장 아무개는 표현이사로서 이 사건 담합행위를 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고, 김영준, 김 아무개는 각각 대표이사, 김태현은 사내이사로서 피고 장 아무개의 업무 집행을 감시·감독해야 할 지위에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결과 성신양회는 거액의 과징금 및 벌금을 납부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담합행위가 시장경제 질서를 교란하고 사회적 후생손실을 발생시키는 중대한 위법행위로, 피고들의 행위는 엄중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번 소송은 국내 6개 시멘트 회사 가격 담합이 원인이 됐다. 앞서 성신양회와 동양시멘트, 쌍용양회공업, 아세아시멘트, 한일시멘트, 현대시멘트 등 6개 시멘트사는 2011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담합해 시멘트 시장점유율을 조정하고, 1종 벌크시멘트 판매가격을 인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공동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부당한 공동행위라며 시멘트사들에게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성신양회 과징금은 427억 500만 원이었다.

담합에 가담한 성신양회와 회사 임원은 형사 처벌을 받았다. 검찰은 성신양회와 장 아무개 전 ​영업총괄본부장이 다른 시멘트사와 공모해 이 사건 담합 행위와 이전에 발생한 다른 건조 시멘트 모르타르 판매가격 담합행위에 가담한(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결과 성신양회는 2018년 6월 벌금 1억 5000만 원, 장 아무개 전 영업총괄본부장은 이듬해 1개월 징역 1년 형이 확정됐다. 성신양회는 과징금과 벌금을 더해 총 428억 5500만 원을 납부했다.

이처럼 이사에게 회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주주들의 행동은 거세지고 있다. 앞서 경제개혁연대 등 영풍 소액주주들은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장형진 고문을 비롯한 전현직 이사 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영풍은 석포제련소 아연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중금속 발암물질 카드뮴 오염수를 수년간 토양, 지하수 등을 통해 낙동강에 불법 배출해 2021년 11월 환경부로부터 과징금 280억 원과 복구(정화) 비용을 부담했는데, 이 같은 손해의 책임을 추궁하려는 취지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이번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영풍의 잘못된 경영 관행에 책임을 물음으로써 회사 스스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유인을 제공할 계획”이라며 “은밀하게 벌어져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기업의 환경 범죄에는 이익보다는 큰 손해배상 책임이 따른다는 선례를 남겨 영풍과 다른 기업들의 인식 전환의 계기로 삼 고자 한다. 소송에서 영풍 이사들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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