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의 소녀상’을 10년 가까이 지켜온 진보성향 시민단체의 노숙 농성이 끝나자, 그 자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거짓이라 주장하는 극우단체들이 들어섰다.
23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인근에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1710차 정기 수요시위와 이들에 맞선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소녀상 바로 옆에는 일장기와 태극기를 함께 든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국민계몽운동본부’ 등 우익단체들이 자리했다. 이 공간은 그동안 진보 시민단체 ‘반일행동’이 농성을 이어온 곳인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에 항의하며 최근 철수하자 극우 단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날 우익 집회 참가자 약 25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단 1명도 없다’, ‘위안부 사기 이제 그만’ 등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소녀상도 위안부도 대국민 사기’, ‘위안부는 고소득 직업여성’ 등을 적은 손팻말도 들어 보였다. 이들은 “위안부가 성매매한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됐냐”, “위안부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거짓말” 등 노골적인 폄훼 발언을 쏟아냈다.
정의연과 시민 약 120명은 경찰의 거리 유지 조치에 따라 소녀상에서 약 100m 떨어진 국세청 인근 도로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2019년부터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정하며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공격해온 자들의 망동이 끝날 줄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랜 세월 평화의 소녀상을 지켜온 반일행동이 집회를 접는다고 하자 기세등등 ‘우리 자리를 되찾았다’며 큰소리치는 극우 인사들의 패악질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녀상 건너편에서는 일부 수요시위 참가자가 우익 단체들을 향해 “친일파”, “매국노” 등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경찰이 양측을 바리케이드로 분리하면서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수요시위가 반대 집회 측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경찰이 적극 개입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도 “서로를 비방하거나 자극적인 언행을 삼가 달러”는 안내 방송만 했을 뿐, 집회 선순위 신고 원칙에 따라 우익단체 집회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