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이 신분증 사본을 재촬영한 사진만으로 메신저 피싱범에게 대출을 허가했다면 신분증 주인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22일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윤강열)는 A씨가 케이뱅크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건은 2022년 8월 발생했다. A씨는 아들을 사칭한 피싱범으로부터 "휴대폰 액정이 파손돼 수리하려는데 아빠 폰으로 보험금을 신청하려고 한다"는 카카오톡을 받고 원격제어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다. 이후 A씨는 사칭범이 시킨대로 운전면허증 사진과 자주 쓰는 비밀번호를 전송했고 피싱범은 즉시 케이뱅크 앱에서 2억2180만 원을 대출받아 제3자 계좌로 분산 이체했다. 추가로 비상금 대출을 받아내려 시도한 흔적도 드러났다.
A씨는 곧장 케이뱅크가 본인확인절차를 소홀히 해 피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케이뱅크 측은
피싱범이 A씨 운전면허증 사진을 재촬영한 2차 사본을 이용해 실명확인을 통과했기 때문에 은행 책임은 없다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는 “케이뱅크가 외형상 '비대면 실명확인방안'의 의무사항을 이행한 건 맞지만 '2차 사본'을 확인한 것만으론 이를 제대로 거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비대면 거래에서 2차 사본 여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술 도입이 어려웠다고 볼 만한 사정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케이뱅크가 신분증 2차 사본으로 본인확인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며 "비대면 거래라도 실명확인은 대면 거래에 준하는 수준이어야 하며 기술적 한계로 인한 위험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은행의 신분증 2차 사본 제출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수원지법은 4월 유사 사건에서 은행 측 손을 들어준 바 있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