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주인공... 숨은 주역은 메모리반도체
현존 최고 성능 '5세대 HBM 16단' 공개
'발열' 해결사 '액침냉각 기술'도 주목
델 노트북 탑재 온-디바이스용 D램 선봬
'조언까지 척척' AI 비서 '에스터' 눈길
[미국 라스베이거스=최유진 기자] 7일(현지시간)부터 10일까지 나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 세계 최대 규모 가전·IT 전시회 'CES 2025'. 올해 행사의 주인공은 단연 인공지능(AI)이었다. 가전과 헬스케어, 모빌리티,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결국 핵심 기술은 모두 AI로 귀결됐다.
하지만 숨은 주역은 따로 있다. 바로 '메모리반도체'다. AI가 제성능을 발휘하려면 필수적으로 메모리반도체 성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AI와 메모리반도체 간 관계를 실과 바늘로 비유하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현존 최고 성능의 최첨단 메모리반도체를 들고나온 SK 전시관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SK 전시관에 들어서는 입구.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혁신적인 AI, 지속 가능한 내일'이라는 문구가 적힌 이른바 '혁신의 문'이 압도적 위엄을 뽐냈기 때문이다. 가로·세로 2m 크기의 발광 다이오드(LED) 패널 21장을 3열로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된 이 문은 강렬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전시관 내부로 발길을 옮겼다. 'AI 데이터센터'를 형상화한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터대감이자 마스코트는 단연 메모리반도체였다. 현존 최신, 최대 용량인 5세대 HBM 16단 시제품(HBM3e16Hi)과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만들어진 AI 칩 모형이 관람객들 시선을 잡아끌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연산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최첨단 메모리반도체다. AI 칩은 데이터 처리 장치인 프로세서와 HBM으로 구성된다.
현장에 있던 SK 관계자는 "현재 상용화되고 있는 것은 8단과 12단 HBM"이라며 "(이번에 공개한) 16단은 올해 하반기 (제품 공급을 위한) 고객사 미팅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SK의 액침냉각 기술도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은 고성능 반도체의 숙명 '발열'을 해결할 대안으로 떠올랐다. 비전도체인 기름에 칩을 통째로 넣어 온도는 내리고 부식 속도도 낮춰준다.
기술 난도가 상당히 높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자 장비에 액체를 순환시키는 것 자체가 누수, 부식, 불순물 축적과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차세대 칩의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문제 발생 시 보상 책임을 떠안게 될 액침냉각 업계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블랙웰'(PC용 GPU)의 대당 가격은 4만 달러(한화 약 5800만원)에 이른다.
SK엔무브 관계자는 "폐정유를 활용하는 액침냉각은 버려지는 기름을 줄인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현재 세계 각국 데이터센터에서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델(미국 PC 제조사)의 GPU에도 적용됐다"고 덧붙였다.
AI 데이터센터를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온-디바이스 AI용 D램을 만날 수 있었다. 온-디바이스 AI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AI 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모바일기기, 노트북 등에 적용되고 있다. SK는 이날 온-디바이스 AI 노트북에 탑재되는 'LPCAMM2 D램 패키지'를 공개했다.
SK 관계자는 "온-디바이스 AI를 구현하기 위해 모바일기기 기준 보통 한 개의 D램이 들어가는데, LPCAMM2에는 총 4개가 장착됐다"며 "현재 델 노트북 일부에 탑재되고 있다"고 전했다.
AI와 대화를 나눌 기회도 마련됐다. SK의 AI 비서 서비스 '에스터'(Aster)가 관람객들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터는 단순 질의응답, 검색이 가능한 기존 AI 챗봇 수준을 넘어섰다. 이용자의 모호하거나 복잡한 요구에도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의도를 명확히 파악해냈다.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가 일정이나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도록 사소한 것까지 챙겨준다. 기억을 상기시키는 조언 기능도 갖추고 있다.
에스터는 오픈AI의 AI 언어모델을 비롯해 다양한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지금은 메시지로만 이용자와 소통할 수 있지만 향후에는 말하는 기능과 통화 녹음을 데이터로 전환, 저장하는 기능이 추가될 전망이다.
SK 관계자는 "에스터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AI 비서"라면서 "한국에는 다른 AI를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