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전파 통해 알게 된 동물 생태...수십년 여정의 다가온 결실[BOOK]

2024-11-29

동물 인터넷

마르틴 비켈스키 지음

박래선 옮김

휴머니스트

이야기는 1957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시작한다. 젊은 교수 조지 스웬슨과 늦깍이 학부생 빌 코크런은 소련이 깜짝 발사한 위성 스푸트닉 1호의 전파신호를 잡아내는 장치를 이틀 밤을 새워서 급조했다. 전파를 잡아 발신기 위치와 운동방향을 역추적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후 스웬슨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잡아내는 데 몰두했고, 코크런은 지상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에 발신기를 달아 이동 패턴을 추적했다. 두 사람은 친구로 남았지만, VLA(영화 '콘텍트'에 나온, 나란히 늘어선 전파망원경들)의 설계자 스웬슨과 전파생물측정학 선구자 코크런의 활동은 멀어진 듯 보였다. 40년 후 독일에서 젊은 동물행동학자 마르틴 비켈스키가 날아올 때까지는.

지은이 비켈스키는 어느덧 노인이 된 두 사람에게서 받은 영감을 ‘우주를 이용한 동물연구 국제협력’, 일명 ‘이카루스’(ICARUS) 프로젝트 구상으로 구체화하고 다시 20여년 만에 결실이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의 우여곡절을 이야기한다.

비켈스키를 코크런을 따라 철새들을 추적하다가, 새들이 무작정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재잘거리는 자기 소리에 다른 새들이 응답하는지 들어보고, 응답이 없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소리를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식으로 새들은 날아가는 높이와 방향을 의논하는 것이 분명했다. 파나마 운하 한가운데 고립된 바로콜로라도섬의 생태계를 조사할 때는, 발신기를 단 동물들이 육지를 오가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행동학자들의 상상 이상으로 동물들의 행동범위와 양상은 다양했다. 갈라파고스 섬의 쌀쥐들은 개체마다 비켈스키에게 달리 반응했다. 사육사가 친밀하게 지내는 히말라야 산록의 산양들은 사육사가 낯선 사람의 명령을 따를 때는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이 관찰할 수 있는 환경과 그렇지 않을 때, 새들이 내는 소리가 왕왕 다르다는 점도 새들에 부착한 발신기들이 입증했다.

이런 다양한 행동 패턴을 어떻게 기록하고 모을 수 있을까? 값비싼 휴대전화기술을 활용해도 동물들이 미리 계획한 범위를 벗어나면 소용없었다. 열대의 숲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비켈스키에게 스웬슨은 우주를 가리켰다. 하늘은 뻥 뚫려 있고, 저궤도 인공위성까지는 300km도 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시험 삼아 설계해보니 몇 그램도 안 되는 인식표 겸 발신기로도 위성 데이터 통신이 가능은 했다.

이렇게 구체화한 이카루스 구상을 미국, 유럽, 러시아를 오가며 일단 실현하는 데 18년이 걸렸다. 2020년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러시아 구역에 부착된 첫 이카루스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했다. 동물에 부착된 발신기는 ISS가 다가올 때쯤 미리 깨어나서 ISS의 신호를 대기한다. 신호를 수신하면 상대위치와 운동방향을 계산해 ISS가 머리 위로 올 순간에 데이타를 전송한다. 쌍방향 데이터 통신이 이렇게 실현됐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협력을 붕괴시켰지만 이제는 ISS 대신 여러 개의 전용 큐브셋을 활용해서 더 많은 데이터를 더 자주 모을 계획이다. 내년에 전용 소형위성 이카루스 큐브셋이 궤도에 오르면 우주에서 지구 전역의 동물 생태를 안정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동물 인터넷』은 개인들이 따로 또 같이 대규모 국제 프로젝트를 이루어낸 이야기로도 재미가 충분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가 사는 곳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진 세계임을 잘 보여준다. 동물들은 서로의 그리고 인간의 행동을 경험하고 학습한다. 인적 없는 숲에 전자기술이 침투해있고, 생태 탐방과 대규모 데이터 분석은 동전의 양면이 되었다. 이 책은 동물과 인간, 자연과 기술, 지상과 우주의 구별이 허물지고 있는 우리 세상을 찍은 오밀조밀한 스냅사진으로서 더 귀중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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