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군지 아니?” 성형 호빠男, 연변서 보이스피싱 황제 됐다

2025-09-17

강력계 25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延吉)시 외지의 한 별장.

연길 국제공항에서 차편으로 40분 걸리는 곳이다. 별장 입구에는 쇠사슬을 걸어둬 출입을 막아놨고 건물 창마다 비닐 커버를 씌워둔 터라 겉으로 보기엔 집주인이 오래 방치해둔 인상이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를 등쳐야 하는 생존 논리가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누가 고함을 지르자 20대 남성들이 방에서 튀어나와 일렬로 선다. 일조 점호다. 새벽 2시까지 쇠파이프로 ‘빠따’를 맞으면서 숙지한 보이스피싱 대본을 다시 검사받아야 한다. “고객님은 신용이 낮아 대출이 어려우니 일단 거래 실적부터 쌓으셔야 합니다. 일단 저희 직원을 만나 현금을 주시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이상원 검사입니다. 최근 저희가 검거한 금융사기 조직의 계좌 내역에 선생님 이름이 포함돼 입건되셨다는 사실 알려드리고…, 아, 그렇게 의심되시면 저희가 고지문을 선생님한테 보낼게요. 주소가….”

직원 하나가 중간에 대본을 씹자 관리책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는다. 그러고는 바닥에 엎어진 직원에게 발길질을 해댄다. 저 꼴이 나지 않으려면 무슨 말이든 쉴 새 없이 내뱉어야 한다. 직원들은 허공을 노려보며 폭행 현장을 외면한 채 대본을 읊어댄다.

그래도 사람 손이면 버틸 만하다. 실수를 연발했다가 쇠파이프로 얼굴을 맞아 광대뼈가 부서진 직원도 있다. 조선족 특유의 성조를 지우지 못한다며 냄비에 팔팔 끓인 물을 정수리에 들이붓기도 했다.

“다들 저 새끼 보이지.” 조직의 총책이 나타나 복도 한편에 무릎 꿇은 속옷 차림의 남성을 가리킨다. 얼굴의 눈가가 함몰돼 있다. 수술하지 않으면 그대로 뼈가 굳어 기형이 될 판이다. 2주일 전 한국으로 도주했다가 조직의 감시책에게 붙잡혀 저렇게 됐다. “도망가고 싶으면 가라. 어차피 조선족 풀면 느그들 찾는 거 금방이야. 300만원이면 팔다리 자르는 건 일도 아니고. 역 앞에서 앵벌이나 뛰는 불효자 되고 싶으면 한번 나가 봐.”

총책의 이름은 이승현. 본명은 아닐 것이다. 전신에 그려 넣은 문신만이 그의 지문처럼 남았을 뿐이다. 순수 한국인임에도 조선족 소도시에 보이스피싱 조직을 차리고 공안들과도 호형호제하는 관계라고 한다. 매달 주머니에 월급 정도를 꽂아주면 뭔 일이 나더라도 뒤로 빼준다고. 중국 사회에서 필수라는 ‘꽌시(關係)’ 문화다.

업무 개시를 위해 콜센터 사무실로 달려가는 직원들의 등에다 이승현은 소리 질렀다.

“한국에 가면 윤덕영이란 짭새도 꼭 만나라. 나 잡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인데 기왕 보게 되면 안부나 전해. 조만간 배때기에 칼침 들어갈 거라고.”

슬링백 멘 그놈, 딱 봐도 범죄꾼

2017년 3월, 수서경찰서 수사과 지능팀의 윤덕영 형사는 내근 중 신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출 상담 전화가 걸려왔는데 본인 사정을 어떻게 알고선 ‘신용등급이 낮아 목돈 구하기 어렵지 않느냐. 우리는 당일 대출이 가능하다. 다만 고객님의 신용등급을 올려야 하니 거래 내역부터 쌓아야 한다. 500만원을 가져오시면 그걸로 우리가 실적을 만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피싱이다. 접선지가 어디냐고 묻자 신고자는 “오전 11시까지 역삼동 국민은행 앞에서 보자고 하던데요”라고 했다. 윤 형사는 보이스피싱 전담팀 후배 둘을 데리고 접선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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