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대 해체법

2025-09-01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케데헌의 주제가는 중독성이 강하다. ‘we’re goin 업 업 업’으로 무한정 올라가서 ‘거너 비 골든’에 이르면 몸이 들썩인다. 청소년들의 떼창이 치솟는 미국에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 고위층이 몽땅 불려갔다. 비서실 3 실장, 외교통상관계자와 기자들로 꽉 찬 미국행 비행기는 무거웠다. 사전 조율 덕에 스위스 대통령처럼 아예 손절당할 위험은 없었겠지만 트럼프의 돌발행동에 마음은 천근만근, 대통령을 사전 교육하기도 빠듯했을 터다.

아닌 게 아니라,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의 발언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 숙청 혹은 혁명 같은 상황인가? 묵과할 수 없고 사업을 할 수도 없다.” 일단 무마했지만 내란 척결과 특검은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대통령은 눈치가 빨랐다. ‘당신은 지구촌의 피스 메이커!’ 트럼프도 알고 있다. MAGA 패권 전략에 한국이 필수적 파트너임을. 경제사절단이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한국의 대기업 총수 16명이 공손히 바친 천문학적 액수의 투자의향서였다.

일단 선방 평가에 정권은 안심

투자금 짐 안은 대기업 총수들

국회는 경영자율권 빼앗고 환호

한국 경쟁력인 함대구조 해체법

선방했다는 평가에 한껏 고조된 통상사절단이 ‘오~ 업 업 업’을 불러제끼는 가운데, 대기업 총수들의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대한항공이 먼저 나섰다. 무려 75조원에 달하는 항공기 103대와 엔진 구매계약을 맺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공장 신설에 51조원, SK 하이닉스는 첨단 패키징 공장 신축에 18조원, 현대차는 4년간 34조원을 약속했다. MASGA의 전략산업인 조선, 원자로, 에너지 투자가 미국 협상단을 기쁘게 했다. 한경협 대표 풍산그룹 류진 회장은 에너지, 바이오, 광물자원 및 제련소까지 총 1500억 달러(한화 약 209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를 합의했다고 밝혔다. 국내투자라면 얼마나 좋겠냐만, 돈과 일자리를 미국으로 빼는 하이웨이가 뚫렸다.

대체 기업들은 저 엄청난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건 ‘알아서 하고’인가? 조공외교에 선방한 것으로 대통령의 임무는 끝났다. 이제 경제계는 국회로 불려가서 뭇매를 맞아야 한다. 총수들이 돈을 짜내 헌납한 날, 집권 여당은 대기업을 패는 법안을 마구 통과시켰다. 전투 의지로 충만한 여당 대표가 평생의 한을 푼다는 듯 자본에 목 칼을 씌우고 포효했다. 드디어 사회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소위 노란봉투법.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노사협상이 가능해졌다. 벌써 현대제철 하청업체가 고소장을 제출했고, 현대차와 한화오션이 쟁의를 신고했다. 대체 대기업 산하 협력업체가 몇 개나 될까? 포스코는 100여 개,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천여 개 이상, 조선업과 방위산업, 건설업은 수천 개다. 원청 대기업은 365일 이들의 고소 고발을 상대해야 한다. 중간에 낀 하청업체는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동일노동 동일 임금!’- 이 원론적 구호가 실현된 나라는 없다. 몇 년 전 동경만에 위치한 일본제철소를 방문했을 때 하청업체 월급은 본청의 70%였다. 그 정도에 만족한다는 직원들의 답에 필자는 직분(職分)이란 일본 개념을 떠올렸다.

1차 개정에 분이 안 차 강도를 올린 ‘더 센 상법’은 어떤가? 이제부터 지배주주는 이사회 이사와 감사위원 선임에 소액주주의 눈치를 봐야 하고, 투자 실패가 발생했을 때 배임죄를 감수해야 한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3%로 제한되면 외국계 펀드의 이사회 개입에 문이 열린다. 일본 기업이 머뭇거릴 동안 한국 자본의 발 빠른 진출과 적시 투자가 가능했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배임 리스크를 안고 큰 손 투자를 단행할 수 있을까? 집권 여당은 이것으로 ‘코스피 5000’ 시대를 장담했는데, 운동권 정치인들의 외계인적 발상이다.

모든 하청에 대(對)원청 교섭권한을 주는 것이 ‘노사관계 정상화’인가? 노사관계를 사분오열시키는 ‘노란싹수법’이다. 이사회에 최대주주 개입 극소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자본의 정의를 가져올까? 외부 개입과 헤지펀드의 집요한 작전에 취약하다. ‘더 센 상법’은 한국 기업경쟁력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더 센 마취법’이다. 우파 논리라고? 천만에. 집권 여당의 낡은 좌파 논리가 문제다. 유럽 좌파는 경영자율권을 빼앗고 임금과 고용 개선을 다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어느 좌파도 모든 노동자에 협상과 파업 자유를 주지 않는다.

한국의 기업구조는 특수하다. 수천 개 협력업체와 순항을 꾀하는 함대형 구조다. 수천 척의 구축함과 호위함이 모함(母艦)을 둘러싸고 수출 작전을 수행한다. 선진국이 두려워하는 무적함대다. 그런데 구축함에 저항권을 부여하고 심지어 모함에 포격을 가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함대 해체법에 박수칠 나라들이 많다.

한국은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어르고 국회는 때리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트럼프와 약속한 투자금을 어쨌든 만들어 내야 하고 정권의 뭇매와 노조의 고소 고발을 감당해야 한다. ‘업 업 업’ 치솟는 경제계 잔혹사에 국가채무와 폐업 공장이 늘고 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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