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째지만, 현장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7월 경남 의령 고속도로에서 근로자가 숨졌고, 8월 광명~서울고속도로 공사에서는 감전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여전히 되풀이되지만 대형 건설사의 유죄 판결은 단 한 건도 없다. 법은 존재하지만 멈춰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들은 ‘안전관리자 배치’, ‘예산 확대’라는 장부상의 기록으로 제도의 문턱만 넘는다. 그러나 실질적 변화는 없다. 숫자가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현장이 잘 안다.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는 회피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례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포스코이앤씨는 사고가 터지자 대표가 수습은 외면한 채 자리를 피했고, 임원들은 사표를 냈지만 회사는 수리하지 않았다. DL건설 역시 사망사고 이후 ‘책임 통감’ 입장문을 냈지만, 실제 변화 대신 조직 개편과 인사로 덮으려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렇듯 대형사들의 ‘보여주기식 책임’은 희생 앞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구조적 허점이다. 경영책임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사고와 의무 위반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법은 번번이 멈춰 섰다. 결국 법의 추상성이 현실의 비극을 가려주는 셈이다. 그 사이 희생자 가족은 끝없는 기다림에 내몰리고, 사회적 경각심은 점점 옅어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안전 불감증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드러난 것은 허술한 제도와 무력한 집행뿐이었다. 이제는 보완해야 할 시간이다. 보여주기식 책임이 아니라 실질적 책임, 형식적 준수가 아니라 현장의 변화가 필요하다.
죽음은 통계가 아니다. 법이 멈춘 사이 또 다른 현장 비극은 반복된다. 국회와 정부, 사법부 모두가 답해야 한다. ‘법은 있는데 쓰이지 않는 나라’에서, 다음 희생이 없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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