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붓을 보았다
족제비도 산토끼도 아닌 물가 움막에 사는
갈대의 머리털로 만든 거였다
물이랑 사이 난독의 문장이 올라오곤 했다
년도가 불분명한 묵은 서체였다
오랜 기억 속 필담을 나눈 적도 있는 듯했다
목책 바깥 시큰둥하니 내가 있는 쪽으로
긴 모가지를 뻗어 조탁의 언어들 넘실댔다
바람이 책장을 넘기며 빠르게 읽어갔다
먹이 마르기 전 필법을 훔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갈대의 머리털로 만든’ 붓은 누구에겐가 보낼 시를 허공에 썼으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체로 나눈 ‘필담’은 오래오래 견디어 온 세상 이야기였을 것. 천변을 거닐면서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마법의 붓이 움막에서 산다. 날개 달린 편지가 가슴 속으로 날아들기도 한다. 어쩌다 감동을 주는 시 한 구절을 만나면 언어의 ‘조탁’도 하는 ‘오래된 붓’에 마음을 빼앗긴다. 화자의 산책은 행여 ‘필법을 훔쳐야겠다’라는 욕심이 발동하지 않을까./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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