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혼선 있지만 정책 후퇴 없어야
출석률만 학점 반영하면 의도 퇴색
다음 수능 개편 땐 절대평가 전환해야
서술형 AI 채점 개발… 동력 기대감
과도한 유아 영어학원은 단속 강화
고교생 자정까지 학원 연장엔 반대
“학점 이수기준에서 학업성취율을 제외한다면 고교학점제는 후퇴할 것이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고교학점제 개선에 착수한 가운데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학업 이수기준에서 학업성취율을 빼는 방안에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그는 “출석만 가지고 학점을 주는 것은 고교학점제의 심각한 후퇴”라며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학업성취율 이수 조건을 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들이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한 뒤 192학점 이상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로, 올해 전면 도입됐다. 학점을 이수하려면 과목별로 ‘학업성취율 40% 이상’, ‘출석률 3분의 2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선 모든 학생의 학업성취율을 챙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수 조건을 완화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교육부와 국교위는 선택과목은 출석률만 적용하고, 공통과목에 대해선 학업성취율과 출석률 모두 적용하는 1안과 출석률만 적용하는 2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교원단체 등은 학교 부담이 적은 2안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 교육감은 원안에 가까운 1안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고교학점제는 취지 자체는 좋은 정책”이라며 “윤석열정부에서 정책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아 시행에 어려움이 생겼지만 폐지하거나 학업성취율 조건까지 뺄 수 없다. 취지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보궐선거에 당선된 정 교육감은 이제 막 취임 1주년을 맞았지만, 남은 임기는 약 7개월뿐이다. 지난 5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난 정 교육감은 재선 도전을 묻는 질문에 “일단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향후 취임 후 추진해온 ‘정근식표’ 사업들을 전국으로 확산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다음은 정 교육감과의 일문일답.

―고교학점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제도 시행에 어려운 면이 있지만 폐지할 순 없다. 고교학점제는 취지도 좋다. 다만 취지를 살리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대입이 바뀌어야 하고, 여러 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또 학업성취율 미달 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정부에서 지난 3년간 이런 것들을 검토하지 않고 예산과 인력도 안 만들어놨다. 이제 어떻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지 고민할 때다. 예산과 시간 투자가 불가피하다.”
―고교학점제는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나.
“학점 이수 기준은 지금보다 완화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공통과목도 출석률만으로 평가한다면 고교학점제는 심각히 후퇴하게 된다. 선택과목은 출석률만 적용해 부담을 줄이고, 공통과목은 학업성취율도 적용하는 것이 취지와 현장 수용성을 모두 고려한 방안이다.”
―평소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절대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음 대입개편은 2032 혹은 2033학년도일 텐데 이때 절대평가로 전환돼야 한다고 보나.
“가급적 다음 개편 시 수능·내신 절대평가가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3년 발표된 2028 대입개편안은 고교학점제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학생, 학부모의 우려가 크다. 다만 현행 고교 체제가 유지된 채 이뤄지는 절대평가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수목적고·자율형사립고의 점진적 축소 등 고교 체제 개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수능·내신 절대평가 전환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대입 개편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인 만큼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개발을 시작한 AI 서·논술형 평가 자동채점 모델도 수능·내신 절대평가 전환에 동력을 부여할 것이라 본다.”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규제하기 위해 국회에 미취학 아동의 영어 사교육을 하루 40분으로 제한하는 법안이 계류돼 있다. 이런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나.
“유아기는 성장·놀이·사회성 발달이 핵심인 시기고, 과도한 선행 사교육은 아동학대다. 하지만 학부모의 영어 교육 욕구가 있는 것도 현실이어서 현재 논의되는 개정안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국 교육청에서 유아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를 전수조사했는데 전국에서 적발된 곳은 23곳, 서울은 11곳에 그쳐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향후 단속을 강화할 계획인가.
“레벨테스트, 4세·7세 고시 형태 운영 여부 등에 대해 지도·점검을 강화할 예정이다. 현재 몰래 레벨테스트를 진행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안다. 단속을 강화하면 적발사례도 많아질 것이다. 단속 강도를 높이려면 과태료 부과, 영업정지 등 지금보다 강력한 행정처분이 가능해야 한다. 현재는 행정지도만 할 수 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사전 레벨테스트 금지 등 법 개정을 교육부에 건의하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고교생의 학원?과외 교습 가능 시간을 오후 10시에서 자정까지 늘리는 조례가 올라왔다. 이미 서울보다 교습 가능 시간이 긴 지역도 있어 서울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우리 교육청은 시간 연장에 반대한다. 지역 간 형평성을 말하려면 다른 지역들이 교습 가능 시간을 오후 10시로 줄여서 통일하는 것이 맞다. 서울의 10시 기준이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사교육 경감대책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하고 있는데 사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공교육 예산을 늘려야 한다. 사교육을 공교육에서 대체하려면 돈과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정부에 그런 투자를 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이 있어야 한다.”
―학원 레벨테스트 시장이 과열된 것은 초등학교에서 평가가 적어 학부모들이 불안을 느끼고 학원 시험으로 몰리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문제는 알고 있으나 사교육 경감을 위해 사교육 방식을 그대로 공교육으로 옮기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해법이 될 수도 없다. 서울 초등학교의 평가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과정을 관찰하고 진단하는 ‘과정중심평가’다. 표준화된 시험 형태의 성적 산출은 적지만, 교육은 경쟁을 줄이고 학생이 스스로 성장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수업이 정치적으로 편향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학부모도 있다.
“정치기본권이 보장된다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수업 중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 준수되도록 가이드를 명확히 제시하고, 사안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행정 절차도 점검하겠다. 우리 교육청은 이미 수업 시간에 정치·사회 현안을 논쟁적으로 다루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모형’ 교육과정을 적용하고 있고, 교사가 수업 중 정치적 발언을 할 경우 교육청 차원의 특별장학 및 감사, 징계도 가능하다.”

―급식 노동자 등 교육공무직이 처우·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3월 기준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율이 11%로 17개 교육청 중 가장 낮다.
“서울은 지방보다 조리실 면적이 넓고 건물 층수가 많아 배관 길이가 길고, 민가 인접 학교가 많아 소음 방지 대책도 함께 세워야 한다. 교육부는 학교당 1억원을 지원하지만 실제 3억원 이상이 소요돼 재정 부담이 크다. 예산 절감 방안을 찾는 연구용역이 11월 완료 예정이다. 결과를 토대로 추진계획을 구체화하고, 내년에는 올해의 두 배 수준인 약 5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
―5년째 운영 중인 농촌 유학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다.
“지원자가 많아 모두 보내지 못할 정도다. 현재 전남?전북?강원?제주 등과 진행 중인데 내년에 강화?옹진 등 인천으로도 확대 예정이다. 환경?생태체험 교육으로 시작했지만 도농 상생 사례가 됐다. 현지 학교들이 맞춤형 교육을 갖춰 농어촌 학교 특성화 계기가 됐고, 젊은 세대 부모들이 함께 가 지역 분위기가 살아나는 효과도 있다.”
―잔여 임기가 7개월이다. 내년 선거에 도전하나.
“선거 얘기는 안 하려고 한다.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남은 임기 동안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싶은 사업은.
“취임 후 추진한 기초학력 보장 지도,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 수학과학융합교육센터 설립,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모형을 통한 민주시민교육 등의 완성도를 높여 전국화하고자 한다. 그동안 추진한 사교육 경감대책 TF 운영 결과도 발표할 것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1957년 전북 익산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서울시교육감(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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