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추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한·미 외교가에서 퍼지고 있다. 현실화한다면 초유의 일로, 미국과의 원자력 협력, 첨단 기술 교류 등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10일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비 민감국가에서 민감국가로 재분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민감국가는 “국가 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국가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지정될 수 있다. 민감국가에 대해 에너지부는 “정책상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로 설명하고 있으며, 에너지부 산하 정보방첩국 등이 명단을 관리한다.
대표적 민감국가로는 중국, 러시아, 시리아 등이 있다. 북한도 민감국가로 분류돼 있다.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에너지부뿐 아니라 사실상 미국 연방부처 전체와 협력이 어려워진다. 원자력 분야를 비롯, 다양한 과학 기술 교류에서 제한을 받고, 각종 계약 등에서도 비 민감국가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민감국가 국적자가 미국에서 연구에 참여할 때도 보다 엄격한 심사를 받게 된다.
미국이 조선업,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큰 동맹국인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할 경우 양국 관계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미국은 다양한 원칙과 기준으로 국가들을 분류하면서 과거에도 이런 정무적 고려는 배제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미국 국무부가 매해 발표하는 인신매매 근절 평가에서 한국을 처음으로 1등급에서 2등급으로 강등한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국무부는 한국의 외국인 성매매 피해자 처벌, 인신매매에 대한 소극적 기소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민감국가 지정 이야기가 나온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통상 이런 작업을 하면서 상대국과 사전 협의를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후적으로도 구체적 경위 설명을 하지 않기도 한다. 민감국가 지정이 법률적 규제를 수반하는 만큼 한국에서 일어난 특정한 사건이나 행위를 문제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부가 이런 검토를 하는 게 사실이라면, 국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핵무장을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요구가 분출하는 게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일각에선 지적한다. 실체적 행위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위해 미국을 설득하려 한 적이 있는 데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1년 내에 핵무장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2023년 4월)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이 한국을 주시해야 할 국가로 인식한 것일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한전)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대형 원전 원천 기술 침해 문제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 휘말린 게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1월 분쟁 종결에 합의하기는 했지만, 한국의 독자 원전 수출이 미국의 원천기술 유출이라는 인식을 미 정부 역시 공유하는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당혹감이 역력하다. 관련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까지도 대응 등을 묻는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가 “관계부처 등과 관련 내용을 확인 중”이라는 답한 게 정부 차원에서 밝힌 입장 전부다. 정부는 일단 주미 대사관을 중심으로 경위를 파악하는 데 분주한 분위기다. 에너지부의 카운터파트인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구체적 상황 파악은 하지 못한 채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