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 접목한 인간 중심 건축
한국 현대건축의 초석됐죠
주변을 살펴보면 아파트부터 상가, 고층 빌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요. 이런 건축물은 공원과 나무 등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각 도시만의 분위기를 연출해 색다른 풍경을 자아냅니다. 우리는 이를 도시 경관이라고 불러요. 도시 경관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에서도 건축물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해요. 건축물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도시의 이미지, 기능, 문화적 가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며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건축은 시대정신과 시대상을 반영해요. 1960년대 우리나라는 산업화로 인해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서울을 비롯해 여러 대도시의 모습이 급변했죠. 당시 도시 경관은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로 기록됐습니다. 한국 현대건축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은 "건축가는 사회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공간을 처방하는 의사와 같다"고 말한 바 있죠.
김중업 건축가는 건축을 단지 형태로 보지 않았고, 삶의 방식과 시대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보았습니다. 건축을 예술의 범주로 이해한 그는 실용적이면서도 독특한 구조를 가진 창의적인 건물을 선보인 것으로 유명해요. 한국 최초의 초고층·현대식 건물로, 서울 마천루의 초석이 됐다고 평가받으며 여전히 서울 도심 스카이라인을 빛내는 건물 중 하나인 삼일빌딩과 안국빌딩 등이 이에 해당하고요. 특히 동양 최고층 빌딩으로 명성을 떨친 삼일빌딩은 당시 서울이 국제도시로 성장하고 있다는 상징이었죠.

주한프랑스대사관, 서강대학교 본관, 제주대학교 본관, 육군박물관, 서울올림픽 평화의 문…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대표 건축물을 보면 모던하지만 묘하게 우리나라 전통의 미가 느껴집니다. 지금은 없어진 주한프랑스대사관 건물의 지붕은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처마와 닮았는데요. 김중업은 처마·기와 등 우리 전통건축 요소를 과감하게 활용하면서 한국적인 미감과 정신에 서구 현대 건축의 기법과 조형 원리를 결합해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창조했어요. 또 건축 공간에 조각·회화·공예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건축과 예술의 조화를 추구했죠. 그의 예술적 감각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있는 '평화의 문'이 꼽혀요.
김중업은 혁신적인 시도와 감각적인 설계를 통해 학교·관공서·주거 공간 등 다양한 건축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국 건축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기능적인 공간을 넘어, 도시 미관과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한국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후배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해요.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이서준·이시온·최수혁 학생기자가 경기도 안양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가다
2014년 3월 문 연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지은 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외관의 독특한 기둥과 노출 콘크리트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지금 봐도 세련된 느낌이었죠. 소중 학생기자단을 반갑게 맞아준 안양문화재단 오동건 주임은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김중업의 건축적 특징과 그가 설계한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김중업이 1959년 설계한 유유산업 안양공장 부지를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곳으로, 노후하거나 버려진 건축물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부여해 되살리는 '재생 건축' 공간으로도 주목받죠”라고 소개하면서 박물관 입구에 있는 기둥을 가리켰습니다. “이 흰 기둥을 보면 어떤 알파벳이 떠오르지 않나요?” 오 주임 질문에 서준 학생기자가 “알파벳 Y랑 닮았어요”라고 답했죠. “맞아요. 이 기둥은 유유산업의 이니셜 YY를 표현한 것으로 당시 유유산업 공장이었던 건물의 정체성을 드러낸 거예요”라면서 벽돌과 유리의 재료 사용, 비례에 따른 벽면 분할 등 김중업 초기 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중업의 건축세계를 이해하려면 ‘예술’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어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어 화가를 꿈꿨다고 해요. 그러다 일본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하면서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됐는데, 나중에 미술과 가까운 것이 건축이었기 때문에 건축을 하게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김중업은 건축을 예술로서 바라보고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미와 모더니즘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오 주임 설명처럼 김중업은 이전의 한국 건축사에서 볼 수 없었던 유기적인 곡선과 한국적인 미를 건축물에 드러내 새로운 한국 현대건축의 길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받아요. 그의 건축세계는 프랑스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만나면서 더욱 견고해졌죠.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적 모듈, 도시계획 등을 창조하고 현대건축의 5대 원칙(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 띠 창, 자유로운 내부 공간, 옥상 정원)을 제시하며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이끈 인물로 유명해요. 르 코르뷔지에가 정립한 ‘모더니즘’은 과거의 장식적이고 형식 위주의 유럽건축 전통을 끊고, 무장식과 순수한 외관 등을 지향하는 건축을 의미해요. 외관이 철과 유리로만 이루어진 고층빌딩이나 콘크리트만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건축물들이 모더니즘의 일반적인 형태로 최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건축 양식 중 하나죠.

모더니즘의 기반을 정립한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 김중업은 그에게 배운 현대건축의 5대 원칙을 자신의 작품에 재해석해 반영했습니다. 그가 만든 건축물을 보면 필로티(Piloti·기둥이나 내력벽 등 하중을 지지하는 데 필요한 구조체를 제외한 외벽이나 설비 등을 설치하지 않고 1층 부분을 개방시킨 구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죠. 이와 함께 '모듈러(Modulor)'도 많이 활용했죠. 모듈러란 르 코르뷔지에가 고안한 건축 비례 체계로, 인간의 신체 치수를 바탕으로 건물의 크기와 공간을 설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다시 말해, 건축의 기준을 추상적 수학이나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신체 감각에 두겠다는 건축가의 철학을 담은 거죠. 김중업 건축가는 “건축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인간의 몸과 생활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건축의 근본을 인간 중심으로 뒀고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이런 사상을 구현했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찾아볼 수 있다며 제주대학교 본관 모형 전시를 가리킨 오 주임은 “제주대 본관은 2층과 3층을 연결한 경사로의 기하하적인 곡선을 통해 제주도 바다의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했고 필로티 조형 추상주의, 공간의 흐름 등을 기반으로 제주 지역의 정서와 자연을 응축해냈어요. 독특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기능성도 굉장히 뛰어났던 이 건물은 21세기 미래 건축으로 꼽히며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효시로 주목받았죠”라고 했어요. 서준 학생기자가 "이런 멋진 건물을 1960년대에 어떻게 생각해내고 만들었는지 신기해요"라면서 놀라워하자, 오 주임은 "1964년 완공한 제주대 본관은 김중업 건축가 스스로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여겼고,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해요. 당시 국내 기술로는 이러한 복합적 조형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던 셈이죠"라고 덧붙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주대 본관은 바닷바람과 습도 등에 의한 건물 부식으로 여기저기 하자가 생겼고 1995년 결국 철거됐죠. 김중업 건축가는 제주대뿐만 아니라 서강대·부산대·건국대 등도 설계했는데, 소중 학생기자단은 그중 캠퍼스 전체 건물을 통합하는 구심점에 자리하고 있는 부산대 본관 전시물을 살펴봤죠. "부산대 본관 계단의 전면은 유리로 처리했는데, 이는 근대건축의 주요 요소인 투명성을 강조하는 기법이었죠. 또 건국대 도서관은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의 건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요. 건국대 도서관의 경우 Y자형 건물로 학교 전체를 상징하는 조형과 중앙의 둥근 지붕이 특징으로 꼽혀요."
"김중업 건축가가 스스로 뽑은 대표 작품이나 아끼던 건축물이 있나요?" 수혁 학생기자가 묻자 오 주임은 "이번에 살펴볼 건물이 그가 아끼던 건물 중 하나였어요. 지금은 철거된 주한프랑스대사관으로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평가받죠. 1959년 설계안이 당선된 후 1962년에 완공됐으며 대사관저, 대사 집무실, 영빈관으로 이뤄졌죠"라고 소개했어요. 한국 전통가옥의 배치에 따라 경사진 대지 위에 균형 있게 세워진 건물은 브릿지와 통로를 연결했으며 대사 집무실 건물의 지붕 처마선은 한옥 기와지붕의 곡선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곡선미는 대사관저 지붕의 직선적 형태와 시각적 균형을 이루며 마치 예술 작품을 연상케 했다고 해요.
"주한프랑스대사관 외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윤명로·김종학 화백의 합작품이었죠. 영빈관 난간에 전통 문양을 응용하는 등 한국의 미를 곳곳에 배치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고 합니다. 김중업 건축가는 이 건물로 한국전통 건축을 재해석한 독창성을 인정받아 196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죠." 생전에 그는 주한프랑스대사관에 대해 "한국의 얼을 담고, 프랑스다운 우아함을 표현하려고 했다"며 "나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길잡이가 됐다"고 말할 만큼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어요. 김중업 건축가는 스승 르 코르뷔지에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닌 나아가 전통과 자연의 조화를 모더니즘에 접목해 독창적인 양식을 확립했다고 평가받죠.

한국적 모더니즘 구현한 '김중업 스타일'
김중업 건축가는 서울 도심 마천루를 완성한 선구자로도 불려요.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 있는 삼일빌딩과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안국빌딩 등이 1970년대 당시 서울 스카이라인의 새로운 지표를 만든 건물로 전해져요. “1952년 10월부터 1955년 12월까지 총 3년 2개월간 프랑스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소(아틀리에)에서 근무한 김중업 건축가는 귀국 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건축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한국 사회는 국가 재건과 산업화에 매몰돼 건축은 기능과 양산의 도구로 간주하던 시기였거든요. 이에 김중업 건축가는 '우리는 왜 한국에서 한국적인 건물을 짓지 못하는가'라는 고민을 통해 '서구 건축의 기술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1956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김중업 건축가는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열고, 전통 한옥의 공간 감각을 현대건축에 어떻게 이식할까 고민을 거듭했죠.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1960~70년대 자신만의 한국적 모더니즘을 구현해내며 '김중업 스타일'을 만개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삼일빌딩입니다. 삼일빌딩 전시를 본 시온 학생기자는 “지금 봐도 요즘 건물처럼 멋있는데 어떤 기법으로 만들었나요”라고 물었어요. “1970년도 완공한 삼일빌딩은 지하 2층, 지상 31층 총 114m 규모로 당시 동양 최대 고층 빌딩이었죠. 한국 산업화와 도시 현대화를 상징하는 건물로 명성이 자자했고요. 그 시절 국내 건축 기술 수준을 고려해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를 병용한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했다고 해요. 또 승강기와 계단실을 배치하고, 주변을 사무 공간으로 둘러싼 중앙 코어(core)형 평면은 이후 한국 오피스 빌딩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됐고요.”

“삼일빌딩만의 특징은 뭔가요?” 서준 학생기자가 궁금해하자 오 주임은 “삼일빌딩은 현대 고층빌딩의 교과서적 모델로 안과 밖의 공간이 어우러져 보일 수 있도록 '커튼월(curtain wall·통유리벽)' 기법을 활용해 투명성을 강조했죠. 이 공법은 건물 외벽을 기둥과 보로 지탱하고, 외벽은 비구조적 재료로 마감하는 방식으로 고층건물 건축 시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1976년 완공한 안국빌딩 모형으로 자리를 옮겼죠. “안국빌딩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유리 커튼월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건물이에요. 저층부는 공개공지와 연결되며 도시 보행 동선을 고려한 배치가 눈에 띄는데, 이는 단순히 사무실 기능을 넘어 도시 공간과의 관계를 중시한 것으로 해석돼요.”
안국빌딩은 삼일빌딩처럼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하진 않지만, 종로와 북촌 일대라는 역사적 공간에 들어서면서 현대적 업무 공간과 전통적 요소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죠. 삼일빌딩이 ‘고층화의 상징’이었다면, 안국빌딩은 ‘현대적 감각과 도시 맥락의 조화’를 제시했다는 평을 받아요.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빌딩들은 우리나라 마천루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수혁 학생기자 질문에 오 주임은 “김중업 건축가는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배운 근현대건축의 원리를 한국적 맥락에 맞게 적용해,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정의한 건축가로 추대돼요. 이 두 건물은 단순한 사무용 빌딩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도시화와 세계화를 상징하는 이정표로 인정받았죠. 오늘날 서울 스카이라인을 논할 때, 김중업의 이름이 반드시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라고 강조했습니다.

곡선의 미와 한국적 특징 강조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곡선’입니다. 그의 건축에 나타나는 조형적 특징은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힘 있는 곡선으로 한국 전통예술의 멋을 선에서 찾아 적용한 거죠. 오 주임은 “김중업 건축 작품을 살펴보면 선을 통해 분절된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경향을 보여 준다”고 말했어요. “김중업 건축가가 곡선에 부여한 의미는 단순한 형태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았어요. '건축은 인간이 거주하는 집이자 생명이 숨 쉬는 공간'이라며 곡선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건축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죠. 한국 전통건축의 기와지붕 곡선, 산세를 닮은 자연스러운 곡선, 불교 사찰의 처마와 곡선적 단청 문양 등 여러 곡선 요소에서 건축적 영감을 얻었고요.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곡선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생활과 감정을 담아낸 상징적 장치로 분석돼요.”
이러한 특징을 담아낸 건물이 서울 중구에 있는 서병준산부인과(서산부인과·현 아리움 사옥)입니다. 1967년 완공한 이 건물은 협소하고 세모난 대지 위에 위치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형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곡선을 사용해 독특하면서도 기능적으로 설계됐죠. 서산부인과 조형물을 본 수혁 학생기자는 “이렇게 작은 공간에 어떤 기법으로 건물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요”라고 물었죠.

“우선 산부인과라는 의미를 건축물에 반영해 아기를 담고 있는 자궁과 태아의 이미지로 디자인하고 타원형 방들을 기능적으로 배치했죠. 환자들을 빠르게 이송할 수 있도록 램프(ramp·입체 교차하는 두 개의 도로를 연결하는 도로의 경사진 부분)를 설계해 기능적인 면도 충실하게 반영했고요. 또 노출 콘크리트로 된 벽체를 세우고, 램프 부분에 투명한 유리창으로 배치해 조형성을 극대화한 외관은 건물의 특징이자 강점으로 꼽혀요.”
이어 곡선의 미와 한국적 특징이 강조된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을 소개했죠. “높이 24m, 폭 37m에 이르는 이 기념비적 작품은 서울의 관문으로 자리매김했는데요. 당시 김중업 건축가는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끝까지 설계를 마무리했고, 김중업건축연구소 실장으로 있던 곽재한 건축가가 현장을 맡아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죠.” 오 주임이 평화의 문 모형을 가리키며 “여기 상부 구조물인 지붕 부분이 양 날개처럼 펴지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냈는데, 뭔가 떠오르는 거 없나요”라고 묻자 서준 학생기자가 “날개를 펼친 새랑 닮았어요”라고 답했죠.

“맞아요. 서준 학생기자 말처럼 새가 날개를 펼쳐 비상하는 듯한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곡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평화와 화합, 미래로 나아가는 역동성을 상징해요. 직선의 힘이 권위와 기세를 드러낸다면, 곡선은 열린 포용성과 생명력의 의미를 담고 있죠. 특히 평화의 문 하부도 색다른 공간으로 주목받았는데요. 사방이 직선으로 둘러싸인 듯 보이지만 지붕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하늘과 연결돼 열린 공간감을 배가시켰다고 평가받고요. 또 지붕 아래에는 화려한 단청 문양의 태극과 봉황을 그려 곡선적 이미지와 어우러지며 ‘한국적인 미’와 ‘보편적 평화의 가치’를 동시에 드러냈죠.
이렇듯 직선적 구조와 곡선적 장식, 전통적 상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축물들은 김중업 건축가가 추구했던 건축의 가치이자 지향점일 것입니다. 그는 생전에 “서구 건축의 기술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전통한옥의 공간 감각을 현대건축에 이식하기 위해 힘쓴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멋있고 화려한 도시 경관이 만들어진 거겠죠.
동행취재=이서준(경기도 평촌중 1)·이시온(경기도 홈스쿨링 6)·최수혁(서울 위례초 5) 학생기자
김중업 건축가 약력

1939년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 진학
1941년 마츠라·히라타 건축사무소 근무
1952년 유네스코 주최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 한국 건축가 대표로 참석해 르 코르뷔지에 만남
1952년~1955년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 근무
1956년 한국 귀국, 김중업건축연구소 개소, 건국대학교 도서관과 부산대학교 본관·정문 등 완공
1957년 4월 제1회 김중업 건축작품 전람회 개최
1958년 서강대학교 본관 완공
1959년 유유산업 안양공장(현 김중업건축박물관&안양박물관) 완공
1960년 주한프랑스대사관 완공
1964년 제주대학교 본관 완공
1970년 삼일빌딩 완공
1971년 제2회 작품전 개최
1983년 대한민국 산업훈장
1985년 KBS 국제방송센터(IBC) 완공
1985년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 문 완공
1988년 5월 11일 사망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후기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김중업의 작품과 철학, 건축기법 등을 살펴봤어요. 김중업 건축가가 50여 년 전 직접 설계한 유유제약 공장 건물이 박물관으로 활용됐는데, 반세기가 넘은 건물임에도 세련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중업 건축가는 전설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게 서양 건축 양식을 배우고 한국 건물에 접목했습니다. 그중 주한프랑스대사관과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이 인상 깊었죠. 주한프랑스대사관의 지붕은 네 꼭짓점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솟아있는 형태인데,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죠. 평화의 문은 지붕 부분이 한쪽으로 치우쳤는데,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설계했는지 궁금해졌고요. 아이디어와 예술성이 남달랐던 김중업 건축가 덕에 우리나라 건축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서준(경기도 평촌중 1) 학생기자
한국 현대건축을 자세히 살펴보고 배운 취재였습니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이 과거 제약회사 공장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죠. 김중업 건축가의 대표작으로는 주한프랑스대사관,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제주대학교 본관 등이 있는데, 이런 건축물은 마치 예술 작품을 떠올리게 했어요. 김중업 건축가 역시 "건축은 예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해요. 모형으로 전시된 김중업 건축가의 건축물을 보면 곡선들이 참 많았는데, 이러한 곡선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돈되는 기분이었죠. 저는 특히 부산대학교 본관, 현재는 인문관으로 쓰고 있다는 건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번 취재로 한국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앞으로 멋진 건축물을 발견하면 유심히 오랫동안 쳐다볼 것 같아요.
이시온(경기도 홈스쿨링 6) 학생기자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어릴 적부터 건축이랑 건물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블록으로 여러 건물을 만들어보곤 했는데요. 블록을 높이 쌓고 잘 무너지지 않는 건축기법 같은 것도 스스로 개발하기도 했던 터라 이번 취재가 남달랐죠. 박물관에서 김중업 건축가의 건축물과 건축기법, 그의 일생 등에 대해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건축의 특징과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김중업 건축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삼일빌딩, 제주대학교 본관 등을 보며 옛날에 둥근 곡선과 같은 어려운 기법으로 건물을 지었다는 게 신기했죠. 건축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가볼 것을 추천해요.
최수혁(서울 위례초 5) 학생기자
글=이보라 기자 lee.bora3@joins.com,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