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1억 달러(약 1400억원) 상당의 보석이 도난당한 직후, 현장 인근에서 찍힌 한장의 사진이 전 세계 SNS를 달궜다. 사진 속 남성은 단정한 스리피스 정장에 트렌치 코트를 걸치고, 클래식한 중절모(페도라)를 쓴 채 경찰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셜록 홈스나 에르퀼 푸아로(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작한 소설 속 탐정) 같은 명탐정이 수사 현장에 나타난 듯한 모습이었다.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기자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루브르 앞에서 촬영한 것으로 사진 설명은 ‘도난 사건 이후 출입이 통제된 루브르 앞의 경찰들’ 한 줄뿐이어서 이 남성의 신원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하지만 SNS에서는 곧 “페도라맨(Fedora Man)”이라고 불리며, “진짜 탐정일까?”, “AI가 만든 인물일까?”와 같은 추측이 쏟아졌다. 일부는 “1940년대 누아르 영화에서 막 걸어 나온 프랑스 형사”라고 했고, 넷플릭스가 시리즈로 제작해야 한다는 농담도 나왔다. 조회 수는 500만 회를 넘었다.
하지만 ‘페도라맨’의 정체는 의외였다. 그는 파리 교외 랑부예(Rambouillet)에 사는 15세 소년 페드로 엘리아가르손 델보(Pedro Elias GarzonDelvaux)였다. 사건 당일 그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루브르를 방문했다가, 박물관이 폐쇄된 이유를 물으러 경찰에게 다가가던 중 카메라에 포착됐다.
페드로는 친구를 통해 자신이 인터넷 스타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엄마 친구들이 ‘네 사진이 뉴욕타임스에 실렸더라’고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페도라맨’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패션 감각으로 주목받은 페드로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특별한 날에는 중절모를 쓰고 신사답게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세기 인물들, 특히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와 프랑스 레지스탕스 영웅 장 뮈랭(Jean Moulin)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학교 축제에서는 친구들이 ‘오징어 게임’이나 ‘미니언즈’로 분장할 때, 그는 장 뮈랭 복장을 택했다. 중절모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어머니 펠리시테 두스 드 라 살(Félicité Douce de la Salle)는 “아들의 차분하고 시대를 초월한 복장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 같다”며 “루브르 절도라는 어두운 사건 속에서 모두가 ‘이 소년이 루브르를 구할지도 모른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원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페드로의 가족은 예술계와 인연이 깊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외조부모는 공연예술가와 큐레이터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18세기 궁전을 개조한 박물관에서 자라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다. 덕분에 페드로도 어릴 때부터 전시회와 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한편 프랑스 경찰은 루브르 보석 절도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 4명 중 3명을 체포하고, 100여 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도난당한 보석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페드로는 아직 고등학생이며, 탐정이 될 계획은 없다. 대신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 외교관의 길을 꿈꾸고 있다. 다만 영화나 패션계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저 멋지게 옷 입는 걸 좋아할 뿐”이라며 “하지만 영화 쪽에서 제안이 온다면 탐정 역할도 나쁘지 않겠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현재 델보 가족은 루브르 앞에서 찍힌 사진을 부엌 한 쪽에 액자로 걸어두었다. 어머니는 “아마 곧 페드로 방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