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암각화 탁월한 가치 제대로 담론화하려면 국격에 맞는 국립 암각화 연구소 설립 시급"

2025-01-22

[울산저널]이종호 기자= 21일 화목 토론에서 '울산 암각화 그리고 21세기형 울산 문화'를 주제로 발표한 장석호 박사(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원)는 울산 암각화의 가치와 독창성을 밝히기 위해 40년 가까이 스칸디나비아부터 태평양 연안, 아프리카 우간다까지 암각화가 있는 현장을 조사해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1999년 러시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장석호 박사는 이듬해 예술의전당에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비닐로 떠내 작업한 실사 채색 도면을 전시했다. 고래는 회색에서 검정색 계통으로, 거북은 파란색으로, 사람은 노란색 계열로, 호랑이와 표범은 붉은색으로, 배는 보라색으로 분류했다. 울산시의 의뢰로 천전리 암각화도 똑같이 작업했다.

20세기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 공업의 메카였던 울산은 21세기 들어 공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장 박사는 울산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간절곶, 대왕암, 영남알프스, 처용, 학춤 등을 다 합쳐도 암각화에 견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열규 교수는 경주를 다 줘도 울산 암각화와는 안 바꾼다고 했고, 러시아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니콜라이 보코벤코 박사는 대곡리 암각화의 가치가 삼성 브랜드 가치를 능가한다고 말했다.

장석호 박사는 문화유산청이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암각화의 이름을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라고 바꾼 것은 선사시대 암각화가 신라시대 명문보다 못하다는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쇠나 돌에 새겨놓은 글을 의미하는 명문(바위 글씨)은 "글과 그림은 뿌리가 같다"는 '서화동원론'에 따르면 바위그림이기도 하다. 결국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라는 말은 '천전리 암각화와 암각화'라는 동어반복이라는 지적이다. 장 박사는 "한국 학계의 학문적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암각화와 관련한 거대 담론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는데 지난 20년간 울산 암각화는 "맑은 물도 필요하고 암각화도 필요하다"는 식의 양시론(兩是論)으로 저울질돼 왔다는 지적도 했다. 장 박사는 "물이 암각화를 집어삼켰다"며 사연댐 위에 취수 시설이 없는 대곡댐을 완공한 것은 맑은 물을 빙자한 집단이기주의의 표상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울산의 암각화는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걸리처럼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소수의 문화 권력자들만 향유하는 꿀단지가 돼버렸다"며 "울산시민과는 무관한, 특별한 의미도 없는, 전문가들이나 행정 공무원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그런 유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쓴소리했다.

장석호 박사는 국보 제285호인 대곡리(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단 하나만 있는 대체 불가한 가치를 띤 유일한 암각화라며 대곡리암각화의 특장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도감이고, 선단식 포경의 발상지라는 것과 대곡리만의 동물 그림 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을 들었다. 외딴 봉오리, 바위 그늘과 소리 증폭 현상 같은 바위그림 유적의 보편적 가치도 언급했다.

이어 울산 암각화를 남긴 사람들은 배를 만들고 고래를 해체하고 운반해 식량과 기름을 얻었던 태화강 선사문화를 일궜다며 그 유전자가 울산의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 정유공장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고, 그것이 20세기 울산 문화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21세기형 울산 문화는 어떻게 창출해야 하는가? 장석호 박사는 "울산은 이미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자연, 문화, 관광 인프라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은 없는 듯하다"며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살거리, 입을거리 같은 ~할 거리와 걷고 싶은 거리(路)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장 박사는 "석기 시대 울산만 사람들이 배를 타고 고래를 잡았던 것처럼 20세기 울산의 문화 주인공들이 배를 만들고 석유화학공단을 만들었듯이 21세기의 우리는 그와 같은 문화적 전통 위에서 획기적인 변신을 꾀해야 한다"면서 "상호 이질적인 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하이브리드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을 모색하는 젊은 과학자와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실험실과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상상도 못한 새로운 버전의 문화를 창출해 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석호 박사는 "시급한 것은 우리 국격에 맞는 국립 암각화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라며 "전문 연구자들을 불러 들이고, 후속 세대를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학자들과 공동 연구도 하고 국제적인 학술지도 펴내면서 학문의 질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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