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자연 위, 빛이 춤추는 듯
빛에 반사된 자연 풍경에 반해
“나뭇잎 관찰하니 점으로 연결”
점으로 대상 채워 몽환적 매력
풍경보다 작가 정서 구현 집중
일찍이 모네 같은 인상주의자들은 빛과 색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해 가시적인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했다. 그들은 사물의 본질이 빛에 따라 변화하는 순간적인 색채에 있다고 믿었다. 인상주의를 이끌었던 모네는 그 유명한 ‘수련’ 연작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색의 변화를 표현했다.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고희전을 시작한 이장우 작가는 특정한 시간대의 빛이 빚어내는 풍경의 상태를 색과 형태로 기록하려 했던 인상주의의 전통을 따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대상을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기록하려 했던 전통 인상주의와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형식적으로는 빛의 영향 아래 있는 대상을 묘사하되, 내용적인 측면에선 철저하게 자신의 서정에 기댄다.
“작정하고 풍경을 관찰하기보다 저의 내면에 파장을 주는 풍경을 만났을 때 화폭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림의 소재는 주로 자연이다. 자작나무 숲이나 활짝 핀 장미 정원,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의 눈부신 물가 등의 자연 풍경을 그린다. 자연에 대한 끌림은 대구 군위의 청정 자연에서 나고 자란 그의 내력과 무관치 않다. 눈 뜨면 무시로 마주했던 자연을 공기처럼 호흡했고, 자연이 불어넣은 호흡은 작업하는 과정에서 그의 내면을 타고 손에서 붓끝으로 전해져 화폭에 옮겨진다.
“고향 숲의 촉촉하면서 알싸한 안개 냄새나 흐드러진 진달래꽃의 붉은 색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일상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고 위로를 건넵니다.”
풍경을 그렸지만 현실의 풍경 같진 않다.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어느 지점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화폭을 지배한다. 대상에 반사된 빛에 집중하고, 점묘법과 유사하게 획이나 점을 찍어 대상을 채워가며 대상의 윤곽을 흐린 효과다.
빛을 예술의 중심에 놓기 이전에 그는 일찍부터 빛에 매료됐었다. 빛은 이장우에겐 향수다. 어린 시절 고향 군위의 산과 들과 냇가를 내달리는 그의 등 위에 빛이 늘 친구처럼 함께했다. 빛에 반사된 풍경은 어린 마음에도 눈이 부시게 아름답게 다가왔다. “빛과 자연은 함께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식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 살아서 빛에 반사된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죠.”
인상주의에서 점묘법은 중요한 표현방식이었지만 이장우가 점으로 대상을 채우는 방식에는 다분히 서사적인 요소가 짙다. 순간적인 깨달음이 나이프로 거칠게 작업하던 방식에서 부드럽고 섬세한 점묘법으로 전환한 계기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개 나뭇잎을 보면 덩어리로 인식하기 마련인데, 2018년 어느 눈이 부신 날에 그가 나뭇잎을 가까이서 본 기억은 달랐다. 그 속에 무수히 많은 점들의 연결이 있음을 새롭게 발견한 것. 그러면서 대상을 점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미술이 점과 선과 면의 예술이라고 수없이 들었지만 자연에 그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어요. 특히 수많은 점들의 연결로 덩어리가 되는 것을 보고, 점으로 채워 덩어리인 면을 구축하게 됐죠.”
그가 스스로를 “천상 촌놈”이라고 했다. “구상이라도 과일을 풍요롭게 그리거나 자연을 그리지만 대상을 단순화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도회적이고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뼛속까지 시골적인 정서가 짙어서 정감 있는 자연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미감에 부합하는 그림을 그려서 명성을 얻을 순 있겠지만 제가 즐겁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 본성에 맞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정감 있는 자연풍경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그의 내면에 파장을 일으키는 풍경이 그림의 소재가 되는 작업 특성상 현장감은 필수다. 현장에서 직접 본 풍경 중에서 감정을 건드리는 풍경을 만나면 스케치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다. 작업실에서도 감동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진행한다. “느낌을 살리지 못하면 죽은 그림이 되기 때문에 제가 풍경에서 느꼈던 감상이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그리고 있습니다.”
칠순인 그가 “이제는 그림에 대한 마음도 내려놓게 된다”고 했다. 형식적인 부분에서의 완성도에 집착하기보다 내용적으로 느낌을 살리는 그림을 좋은 그림의 범주에 두게 되면서 생긴 그림에 대한 철학이다. 대구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등을 맡아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다작을 할 정도로 작업에 매진하고 있고, 이제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자유로움을 구가할 수 있을 만큼 기술적으로 충만하게 된 데서 나온 자신감의 발로다.
세월이 주는 선물은 또 있다. 색채의 변화다. 색채가 점점 밝아지고 있다. 그가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는데 수채화 느낌이 난다고 할 정도로 색이 밝아졌다”면서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한 결과”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회활동을 접고 작업에만 매진하며 건강이 좋아졌고, 더불어 작업하는 맛도 새삼 느끼면서 그림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이다.
“다작을 할 만큼 작업 시간이 많아도 건강하니 즐겁게 작업할 수 있고, 더불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밝아졌습니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이 색채에도 영향을 주어 율동성 있는 그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빛이 주제인 만큼 소재에 제약은 없다. 빛 아래 모든 존재는 그림의 대상이 된다. 작가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을 그리고,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인데, 그는 빛 아래 세상은 무엇이든 그림의 대상이 되니 그 질문으로부터 자유롭게 됐다. 필요한 것은 오직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흥이면 된다. 감흥하는 이장우가 실존이라면, 그의 정서는 본질일 수 있다. 이런 논리로 그의 그림은 실존과 본질의 이중주다. 전시는 10일까지 대백프자라갤러리 전관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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