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계 25시

2004년 7월 16일 새벽 4시.
기동수사대(광역수사대 전신, 이하 ‘기수대’) 건물을 탈출한 유영철이 신변 정리를 마치고 향한 곳은 영등포 사창가로 전해진다. 영등포 로터리에서 문래동으로 넘어가는 대로변에는 낡은 철공소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안쪽에 위치한 비좁은 골목길이다. 건물 1층마다 유리창 너머 성매매 종사자들이 손짓하는 그곳에서 유영철은 비를 맞으며 또 다른 희생자를 물색했던 것이다.
범행 전의 스트레스는 연쇄살인자의 살인을 촉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17시간 밤샘 조사를 받은 데다, 한 번 덜미를 잡히면 지옥행이라는 수배자 신분이 된 그다. 무엇보다 더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2003년 서남부 사건에서 9명을 살해한 뒤 4개월간 종적을 감췄지만 이듬해 3월부터 7월까지 출장 마사지사 11명을 죽였다. 한 달에 한 번꼴이었던 살인 행각은 막판 들어 나흘마다 벌어졌다. 소위 말하는 냉각기의 붕괴다. 7월 13일 살인을 저지른 그는 살욕을 못 참고 이튿날 출장 마사지사를 신촌오거리로 또 한 번 불러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천운도 그런 천운이 없을 테지만 유영철은 서울 도심을 다시 활보하게 됐다.
“유영철이 살인을 계획하고 성매매를 위한 쪽방으로 들어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 아마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역이었던 오피스텔과 달리, 거기선 여자의 비명 한 번에 포주들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김상중 형사는 회고했다.
마지막 희생자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가겠다는 식의 자포자기 상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일단 선을 넘어버린 연쇄살인자는 계속해서 사람을 죽일 생각에 사로잡히며, 그럴수록 범행계획도 치밀하게 세운다. 경찰에 쫓기는 환경에선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무사히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 궁리했을 공산이 큰 대목이다.

이날 기수대 형사3계 2반은 김상중 형사의 쏘렌토와 권영준 형사의 마티즈로 나눈 2개 조로 영등포 일대를 돌며 유영철을 수색 중이었다. 오전 10시를 갓 넘긴 때로 대로변에는 행인들로 가득했다. 외근을 나온 직장인들이며 주부들, 천막을 치고 장사 중인 행상인들이 뒤섞여 있다. 거기다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까지 더해져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마티즈 조는 1차로에서 최대한 연석에 가깝게 차를 몰면서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은 김준철, 민관덕 형사가 빠르게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었지만 단숨에 속도를 높여 로터리를 지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범인 검거를 눈앞에 둔 유사시에 과속이나 신호위반은 수사의 상도라고 할 수 있지만, 유력한 목격 정보도 없는 현재로선 서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 민관덕 형사가 말했다.
“형님, 저기요.”
“뭐?” 선배들은 막내의 말에 심드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