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은 동고서저(東高西低)입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큰 강은 서쪽인 서해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와 반대여서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입니다.
황하나 양자강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지요.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충북 괴산군 화양구곡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 가평 조종천의 만동묘에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라는 의미의 글은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중국과 관련된 글귀이지요. 어쩌면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의 의미가 큽니다.
우리나라의 서쪽에서 물이 동류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형상 사행천으로 굽이굽이 흐르다 보면 잠시 동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이 중국과 닮았다고 여겨서 중국 황제를 기리는 만동묘를 세웠습니다. 만동묘는 중국의 만력제와 마지막 황제인 의종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그런데 만동묘를 오르는 마지막 계단은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9층으로 만들어졌고 경사를 70도 안팎으로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조선의 백성이 천자를 뵈러 올라가면서 똑바로 서서 올라갈 수 없도록 만든 의도가 있지요. 경사도가 너무 높아 일반적인 자세로는 올라갈 수 없고 몸을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만 오를 수 있습니다. 곧 직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명나라 황제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의종은 명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그리고 만력제는 임진왜란 때 군사 5,000명과 은화 2만 냥을 선조에게 보냈습니다. 조선의 백성의 굶주림을 듣고 쌀 100만 석을 보내왔지요. 이는 조선의 쌀 수확량 10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입니다.
어쨌든 쇠퇴해 가던 명나라는 일본에 침탈당한 조선을 구하고
운명이 다해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명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그 은혜를 잊지 못하여
‘친명배청(親明排淸)’ 정책을 오랜 기간 유지한 까닭이기도 할 겁니다.
괴산의 화양구곡이나 가평의 조종천에는 바위에 의종의 친필이 암각되어 있습니다.
화양구곡엔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글이
조종천에는 ‘사무사(思無邪)’라는 글이 새겨져 있지요.
이 두 곳은 모두가 우암 송시열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사대주의는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스스로 소인배의 나라, 오랑캐의 나라를 자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특히 영어문화권에 대해 사대하거나, 문화사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맹목적으로 큰 나라를 따라 하거나 자국 문화를 폄훼해서는 곤란합니다.
K-문화가 세계를 선도하는 지금
우리나라도 자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