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된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은 새 교황이 교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여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 평했다. 희망찬 가톨릭 세계와 달리,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한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영화 ‘콘클라베’다.
대선 앞둔 한국 상황 녹록지 않아
갈등의 주된 원인은 지나친 ‘확신’
사회적 통합과 포용을 방해할 수도
신념 있되 유연함 갖춘 지도자 필요

콘클라베는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들의 비밀회의다. 바티칸 관리가 교황직이 공석이 되었음을 선언하자, 후보들 간에는 교황직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다.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고, 후보의 성 추문이 드러나며, 돈으로 표를 매수한 사실도 밝혀진다. 가장 압권은 선거단장인 로렌스 추기경의 투표 전 연설이다. “제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마지막에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 주십사 주님께 기도합시다.”
교황선거는 우리 정치와 흡사하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국가와 인종으로 갈라진 모습은 교회 밖의 세상과 똑같다. 비상계엄으로 시작하여 대통령 탄핵까지의 과정에서 노출된 심각한 갈등과 분열은 무엇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의 ‘확신’이 원인이었다. 확신은 ‘우리와 그들(Us and them)’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타협할 수 없는 선과 악으로 규정했다. 개인에게 확신은 위대한 힘이다. 실패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확신이 집단의 것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역사는 집단적 확신이 초래한 비극으로 넘쳐난다. 종교나 민족주의, 극단적인 이념이 확신이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전쟁과 폭력이 일어났던가.
확신은 외교에서도 공고한 진영논리를 만들어 냈다. 원래 진보는 미국의 민주당에서 보듯이 자유주의 외교철학을 따라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며,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 가치외교는 보수보다 진보에 적합한 외교비전인데 이것이 한국에 와서는 뒤바뀌었다. 한국의 보수 정권은 가치외교를 지지했고, 진보진영은 가치외교가 아니라 실익외교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원래 보수와 진보의 성향과 무관하게 한국에서는 대립을 위한 대립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가치, 원칙을 배제한 실용주의 외교를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가치외교든 실용외교든 어느 한쪽에 대한 맹신은 또 다른 문제를 부를 것이다. 가치와 원칙을 한쪽에, 이익을 다른 쪽에 두고 이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섞어 활용하는 것이 정답이다.
영화에서 로렌스 추기경이 욕심을 내어 교황 후보로 자신의 이름을 써내자, 갑자기 천벌처럼 폭발음이 들리며 창문이 와장창 깨지고 그 깨진 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장면은 기존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철학적 상징이다. 니체는 그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깨진 틈(broken gap)’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고 했다. 니체가 말하는 깨진 틈은 기존의 확신에 대한 의심·상처·결핍 등을 상징한다. 확신은 단단한 벽과 같다. 다른 시각이 들어갈 틈이 없다. 벽에 균열이 생길 때 우리는 그 틈으로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니체는 이런 깨진 틈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 변화, 성장의 출발점이 된다고 보았다. 확신이 의심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영화에서 깨진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아녜스 수녀다. 그녀는 남성 추기경들의 성 추문과 음모를 조용히 드러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추기경들 앞에서 “수녀들은 눈에 띄지 않아야 하지만, 주께서는 우리에게 눈과 귀를 주셨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남성들이 독식해온 바티칸 세계의 균열과 변화를 의미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준다. 확신은 통합과 포용의 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이 있되 독단에 빠지지 않고, 의심과 손잡고 갈 수 있는 포용력과 유연함을 갖춘 지도자다. 자신의 신념조차도 끊임없이 의심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다. 이번 대선후보 중에 이런 지도자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