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에서 후저우까지 차(茶)와 함께 한 향긋한 여행

2024-12-26

항저우에서 후저우까지, 저장성에서는 몇 날 며칠, 차(茶)를 달고 지냈다.

5,000년의 시간을 마신 날들이었다.

●송나라 스타일의 말차 라떼를 찾아

차문화를 논할 때 중국을 빼놓을 수 없듯, 중국의 차문화를 논할 땐 <다경(茶經)>을 빼놓을 수 없다. 당나라 시대의 문인이었던 육우 선생이 중국의 차문화를 빼곡하게 저술한 저서 말이다. <다경>에 따르면 중국 차문화의 역사는 기원전 2,700년 경부터 시작해 삼국 시대와 당나라, 송나라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5,000년의 시간이 축적돼 있는 것으로 기록됐다. 세계에서 차나무를 가장 먼저 발견한 나라도 중국이다. 이렇게 중국의 차문화는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불교와 함께 세계 각국에 전파됐다. 자랑할 만한 역사를 품은 중국 차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저장성, 항저우다.

항저우시 서쪽에는 중국 10대 사찰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천년 고찰, 경산사가 있다. 경산사가 귀한 대접을 받는 데에는 아름다운 경치뿐만 아니라 차문화와도 연관이 깊다. 1,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경산사는 양질의 차를 재배해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황실에도 보급했다. 귀한 분에게 올리는 것이 차였던 만큼 엄격한 예의를 갖춘 다도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송나라 때 전성기를 맞이한 경산사는 지금까지도 차를 재배하고 송나라 시절의 차문화 전통을 알리는 역할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다. 경산사에서의 다도 체험은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송나라 시대 중국인들은 말차를 주로 마셨는데, 경산사에서는 송나라 시대의 차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 곱게 빻은 말차 가루와 대나무 솔, 따뜻한 물이 담긴 주전자와 찻잔이 올랐다. 작은 티스푼으로 말차 한 스푼을 찻잔에 넣고 따뜻한 물을 조금 부어 대나무 솔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휘휘 저은 다음 말차 가루와 물을 조금씩 추가해 수차례 반복하는 것이 송나라 시대에 차를 즐기던 방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손목을 부드럽게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면서 대나무 솔이 찻잔 바닥에 닿지 않게 띄운 채로 휘젓는 것. 그렇게 수천 번을 젓고 나면 부드럽고 미세한 말차 거품이 위로 떠오른다.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그 위로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송나라 스타일의 우유 없는 말차 라떼가 완성된다. 말차 가루가 짙게 농축된 차 한 잔에 몸도, 마음도 한결 느슨해진다.

챠오샹탕 채식 레스토랑(炒香堂 素食餐厅)

경산사는 1년 365일 기도를 올리는 신자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불자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기품이 묻어나는 사찰의 분위기에 빠져들 확률이 높다. 채소만을 사용해 정성껏, 우아하게 한상 차려내는 챠오샹탕의 사찰음식도 꼭 경험해보길 권한다. 새콤하게 절인 가지나물과 두부 요리, 비빔국수 등 눈이 번쩍 뜨이는 고급스러운 채식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당나라 문인처럼 기품을 갖추고

육우 선생은 고즈넉한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당 공차원에서 차문화의 정석과도 같은 책, <다경>을 집필했다. 후저우시에 위치한 대당 공차원은 당나라 시절부터 황실에 차를 공급하던 곳으로 특히 자순차의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야기는 육우 선생의 <다경>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동시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고. 그래서 대당 공차원은 육우 선생의 공로와 역사적 가치를 기리기 위해 육우 선생의 동상을 세워 육우각을 만들기도 했다.

대당 공차원에서는 찻잎을 끓여 마시던 당나라의 차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이곳의 차 전문가들은 찻잎을 굽는 시간, 물의 온도, 타이밍 등의 규칙을 꼼꼼하고 예민하게 지키는데, 차 한 잔을 끓이는 데에만 필요한 도구가 24개에 달한다. 모든 도구를 하나하나 다 사용해 전통 방식 그대로의 차를 대접하고 있는 만큼 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귀한 경험이다.

당나라 시절 중국인들은 찻잎을 주전자에서 끓여 마셨다. 손으로 딴 어린 찻잎을 쪄서 떡처럼 뭉쳐 건조시킨 다음 주전자에 끓여 두고두고 마시는 형태다. 여기에 마늘이나 생강 등을 조미료처럼 넣어 마시기도 했단다. ‘떡 차’는 은은한 불 위에서 한번 굽는 것으로 시작한다. 곰팡이와 같은 균을 없애는 소독의 역할은 물론 차향을 더 극대화하는 역할을 함께 한다. 이렇게 살짝 구운 떡 차는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냄새를 맡는 것도 금지돼 있다. 차향을 한껏 머금은 떡 차는 각기 다른 도구를 사용해 두 번에 걸쳐 곱게 으깨고 채로 알맹이(찻잎)와 가루를 분리해준다. 찻잎은 뚜껑이 없는 냄비에 옮겨 약간의 소금과 함께 따뜻하게 끓이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물이 보글보글 끓지 않도록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온도를 조절해주는 것. 그렇게 완성된 차는 주전자에 옮겨 담에 개인 찻잔에 나누는 것이 당나라 스타일의 차문화다.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당나라 스타일의 차는 충격적일 정도로 우아한 기품을 품고 있다. 폭발적인 찻잎 향에 한 번 놀라고, 쌉싸래한데 결코 과하지 않은 밸런스에 두 번 놀라울 뿐. 그 역사와 가치가 담긴 차맛에 한 잔은 아쉬워 두 잔, 세 잔을 천천히 다 비우고 왔다.

●삼도차에 담긴 의미

바다처럼 큰 태호(太湖)를 품은 후저우시는 물의 고장답게 아름다운 수향마을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남순고진(南浔古镇)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된 중국식 전통마을이기도 하다. 중국을 크게 남과 북으로 나누면 북쪽은 땅이 많고 넓어 주로 말로 이동했다면, 남쪽에는 물이 많아 주로 배를 타고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순고진 역시 유통과 이동, 상업을 목적으로 약 700년 전부터 수로가 만들어진 마을로 이곳의 물길은 상하이까지 이어진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흐드러진 버드나무 아래 아름다운 마을을 감상하기 위해 유람하는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말이다.

건축물만큼 잘 보존된 후저우의 로컬 차문화는 바로 ‘삼도차’다. 삼도차는 세 가지 차를 세 번에 걸쳐 마시는 것을 의미한다. 후저우에서는 처음 마시는 차로 찹쌀튀김과 설탕을 넣어 달달한 맛이 매력적인 차를 낸다. 두 번째로 마시는 차는 참깨와 말린 당근, 완두콩 등이 들어가 짭조름한 맛이 지배적이며, 세 번째 차는 쌉싸래하면서도 깔끔한 녹차로 마무리되는 코스다. 후저우시의 삼도차는 송나라 시절부터 형성된 문화로 당시 혼례문화와도 관련이 크다. 후저우에서는 혼인을 앞둔 예비 신부의 처가에서 예비 신랑에 대한 속마음을 삼도차로 표현했다고. 예비 신랑이 신부 집에 인사를 하러 간 자리에는 보통 삼도차가 오르는데 그중 첫 번째 차만 내어준다면 혼인을 ‘반대한다’, 두 번째 차까지 내온다면 ‘고려해보겠다’, 세 가지 차가 모두 나오면 혼인을 허락하고 기쁘게 맞이하겠다는 의미로 통했다고. 지금은 혼인을 위한 인사 자리보다는 비즈니스 미팅에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내오는 경우가 많다. 각기 다른 매력적인 맛의 차를 두고, 첫 번째 차만 마시고 돌아선 예비 신랑의 뒷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마음이 찢어진다.

내손으로 만든 화과자로 당 충전

차와 함께 즐기기 좋은 간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 화과자다. 대당 공차원에서는 차문화 클래스와 함께 달달한 앙금을 이용해 예쁜 모양으로 빚는 체험도 가능하다. 재료와 도구는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화과자 전문가의 안내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부드럽고 달콤한데 내가 만들어도 예쁜 화과자와 함께라면 차를 즐기는 시간은 더욱 달달해진다.

중국 저장성 글·사진=손고은 기자 koeun@

취재협조=저장성문화방송 및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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