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경회루 부페’ 있었다, 양식에 푹 빠진 고종의 파티

2025-10-26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

1890년의 어느 하루. 경복궁 경회루에서 성대한 연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고종 황제의 오른팔, 손탁 부인이 지휘하는 파티인 만큼 프랑스 요리부터 샴페인, 궁중 무용의 풍악까지 모든 게 완벽합니다. 고종은 이날도 손탁 부인이 소개해 준 양탕국(커피)를 여러 잔 드셨다고 하네요. 손탁 부인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아무도 믿지 못하던 고종을 위해 양식을 차려주며 조선의 양식 시대를 열었던 인물입니다.

고종이 그에게 하사했던 정동길 손탁 호텔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글로리 호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죠. 오늘은 고종이 양식과 커피에 눈 뜨게 된 이야기를, 한국인 최초 웨이터 이중일씨가 1971년 중앙일보에 남긴 이야기 보석함으로 만나 보세요.

사실 확인을 위해 다양한 관련 서적과 사료를 참고했습니다. 보완해 추가한 내용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참고문헌 목록은 기사 끝에 적시했습니다. 기사 말미엔 이중일씨의 이야기에 나오는 손탁 호텔에 얽히고설킨 역사를 다양한 사료를 파고들어 알차게 정리해 드립니다. 그 옛날, 무성영화 변사의 목소리처럼 AI로 생성한 오디오로도 기사를 들으실 수도 있어요. 기사 중간에 있는 오디오 버튼을 살짝 눌러 주세요.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④ 고종, 양식에 눈뜨다

중앙일보 1971년 3월 3일자

고종에겐 제일 두려운 것이 음식이었다. 독살 위험 때문이었다. 고종 32년(1895년) 8월 20일(음력) 새벽, 경복궁에서 민비(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상해(살해)된 후엔 특히 더 그러했다. 은퇴했던 대원군이 다시 등장하면서 고종과 순종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궁중의 한 방에 몰아넣고 말았다. 먹지를 않으면 굶어 죽겠고, 먹자니 독약을 섞었을까 겁이 나서 차마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이때 고종의 우군으로 등장한 인물은 외국인 외교 사절과 그 가족들이었다.

러시아 공사였던 웨벨(위패)의 부인이 앞장서서 조석(朝夕) 수라를 손수 만들었는데, 혹여 독약을 탈까 하여 이중 철궤 속에 넣고 자물쇠까지 채워서 궁중으로 배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칼 이바노비치 웨벨(Karl Ivanovich Weber 혹은 Waeber로 표기)은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한반도 최초 러시아대사로 부임했던 1885년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그는 이후 장장 12년을 조선에 머무르며 고종과 친하게 지냈다. 고종에게 명성황후 시해 이듬해인 1896년 2월,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으라는 아관파천(俄館播遷) 제안을 했던 인물도 웨벨이다.

그런 웨벨의 부인이 한식을 만들었을 리 없으니, 고종은 싫으나 좋으나 양식으로 끼니를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옮긴 뒤 엄 상궁이 뒷바라지하기까지는 약 석 달의 시간이 있는데, 이때 고종은 오로지 철궤 속에 잠겨져 들어오는 (서)양요리로만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고종은 러시아공관에 머물며 양식 맛이 단단히 들고 말았다. 덕수궁에 돌아온 뒤에도 러시아 공관에서 양식을 시켜다 먹곤 했다. 궁궐에 양식을 만드는 집기 등이 마련돼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러시아 공관을 통해 양식을 먹은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여성이 손탁이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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