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확률 79%” 공황장애 아니었어? AI가 10초만에[메디컬 인사이드]

2025-02-21

“전부 다 힘들어요. 전부 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되고 기운도 하나도 없고, 잠도 계속 못 자고요. 제가 나을 수 있을까요?"

항공사의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는 서제경(30대·가명) 씨는 몇달 전 여객기가 새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로 긴급 회항하는 일을 겪었다. 항공기 이착륙 또는 순항 중 새가 동체나 엔진 등에 부딪히는 건 비교적 흔한 일이지만 엔진 쪽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고 기체에 이상진동이 감지돼 이륙 30여 분 만에 회항이 결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서 씨는 그날 이후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던 순간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울음을 터트리면서 혼란이 빚어지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아 잠을 설치는 날도 늘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서씨는 비행이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고서야 병원을 찾았다. 한 방송에서 '사고 트라우마로 인해 공황장애나 비행 공포증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듣자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서씨의 예상과 달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긴 면담 끝에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 심한 우울감 2주 넘게 지속…직장·학교 등 일상생활에도 지장

우울증은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돼 일상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한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즐거워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퍼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저하되더라도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고, 대개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없어진다.

우울증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이러한 우울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이 폐만 끼친다고 느끼고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겨 과도한 자기 비난에 시달린다. 심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삶에 대한 흥미가 줄어드니 사고력, 집중력이 떨어지고 식욕에도 영향을 준다. 먹고 싶은 마음은 물론,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자연스레 살이 빠지고 기력도 약해진다. 반대로 유독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이 당겨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는 경우도 있다. 불면증이 생기거나 반대로 잠이 과도하게 많아지기도 한다. 깊은 수면의 비율은 줄어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상들이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매일, 최소 2주 이상 지속되고 직장·학교·대인관계에 상당한 지장을 줄 때 병적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와 단순한 우울감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척도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며 "우울감 때문에 평소 무난하게 해오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조절하기 힘든 자살충동이 든다면 치료가 필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 우울증 환자 100만명 시대…방치하면 자살 시도 등 극단 선택 이어질 수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우울증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100만 7079명에 달한다. 2018년 75만 3011명에서 매년 늘어 코로나19 직후인 2021년 91만 명대로 올라섰고 이듬해 100만 명 문턱을 넘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19만 4200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16만 4942명), 60대(14만 9365명), 40대(14만 6842명) 순이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울증이 급증하자 정부는 20∼34세 청년층의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우울증 뿐 아니라 조현병·조울증도 검사하기로 했다. 우울증을 제 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자살 시도 등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일반인들의 모방 자살 등 사회적 파급 효과를 동반할 수 있어 더욱 심각하다.

◇ 제한된 시간동안 우울증 감별 한계…AI 활용하면 진단·평가 효율 ‘쑥’

문제는 우울증이 개인 성향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다른 정신질환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냥 피곤해서", "원래 좀 예민한 성격이라서"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거나, 심리적 저항 때문에 구체적인 증상을 숨기기도 한다.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으로 혼동해 우울증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제한된 시간 동안 정형화된 면담만으로 우울증을 잡아내기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우울증 진단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작년 12월 우울증 진단을 보조하는 AI 의료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첫 허가를 받았다. AI 전문기업 아크릴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닥터앤서2.0'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한 'ACRYL-D01'이 주인공이다. 이 기기는 환자의 실제 면담 기록을 AI로 분석해 우울증 확률을 수치화해 진단을 돕는다.

대한의학회와 질병관리청이 공동으로 발간한 '우울증 임상진료지침'의 우울증 모니터링 및 평가 기준에 따라 서울성모병원에서 수집된 환자 면담기록지 2796건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민감도 83.68%, 특이도 92.56%로 성공기준인 95% 신뢰구간 안에 들며 임상적 유용성을 확인했다.

◇ 국산 AI 기술 접목…환자 면담기록 분석해 수치화된 우울증 확률 제시

해외에도 음성인식, 언어사용 등으로 우울증을 진단하는 AI 기술이 개발돼 있지만 실제 환자의 면담기록지를 토대로 우울증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 상태를 반영해 우울증 확률을 수치화하는 의료기기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된다.

이 연구를 주도한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보라매병원, 서울성모병원에서 실증사업을 진행한 결과 Acryl-D01을 활용하면 우울증 평가에 소요되는 평균 시간을 기존 10분에서 10초까지 단축시킬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의료 AI 소프트웨어가 전문 의료진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준은 아니다"라면서도 “우울증 확률을 수치화해 제시해주는 AI 의료기기가 현장에 보급되면 의사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질병의 조기 진단이 가능해지면서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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