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68) 정세훈 시인의 ‘겨울 암자로 가는 길’

2025-11-30

‘겨울 암자로 가는 길’

- 정세훈 시인

없는 듯 있는 듯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가는 길을,

무성한 잡초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접동새 둥지로 내어주기도 했다가

잔 돌부리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절벽 위 노송 뿌리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이끼 낀 넓적바위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낙엽 뜬 계곡물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허다한 날들을

아련하게

까마득히

스미고 번져갔을 어느 발길

천상에 닿을 듯 내려

쌓이는 눈발에게

그 모든 길을 내어주고 있다

생의 자락에서

단 한 번도 떠나보내지 못한

인연을

소복소복 묻고 있다

<해설>

겨울 암자 가는 길이 마치 하늘로 가는 길처럼 평화롭습니다.

암자로 가는 길이 “없는 듯 있는 듯/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아득하게 이어졌습니다. 이 길에 눈이 소복소복 내려서 “허다한 날들을/ 아련하게/ 까마득히/ 스미고 번져갔을 어느 발길”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덮습니다. 마침내 길은 하늘에 닿을 듯 꿈결처럼 놓였습니다.

계절의 길목입니다. 세상의 번다한 인연을 다 내려놓고 어느 한적한 암자에 스며들고 싶습니다. 굳이 눈이 오지 않더라도요.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