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아 ‘동방으로부터’ 여정단(단장 심홍재)이 지난달 29일 전주에서 출정식을 갖고, 다음 날 인천공항을 통해 폴란드 바르샤바로 출국했다. ‘동방으로부터’는 지난 2015년 10월 3일 한반도의 부산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우랄산맥을 넘어 서쪽 대륙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이동하면서 평화통일을 향한 한반도의 강렬한 메시지를 곳곳에 전했던 행위예술가들이 함께한 프로젝트다. 10년이 지나 다시 시작된 시즌2 여정에서도 이들 예술가는 현지 예술가들과의 협업 무대, 거리 퍼포먼스, 국제 예술제 참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의 사절단’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본보는 응원의 마음을 담아 그들의 발걸음을 뒤쫓는다. <편집자 주>

8월 30일 낮 12시 4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시차로 6시 30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킹가(Kinga)가 미리 준비한 초콜릿과 살구 등을 건네며 환대를 해준다. 공항에서 여정단을 픽업해 숙소까지 안내해 주고 휴가철 마지막 날 파티(last holiday party)가 벌어지고 있는 근처 기차역 플랫폼에서 이색 경험을 하게 해준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서 노르웨이에서의 행사 관련 토론을 마치고서야 몸을 뉘인다.

다음 날 오전 10시에 올드타운 투어 안내를 자처한 킹가를 따라 나섰다. 만오천여 걸음을 두 시간 만에 빠르게 돌다 보니 코스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사이사이 준비해 간 현수막을 펼치면서 ‘허공에 PEACE 쓰기’를 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좋은 친구가 오면 집에 초대해 식구들을 소개하며 음식을 나누는 폴란드 현지인의 풍습에 호응해 킹가의 집에 저녁 식사에 초대돼 이야기꽃을 피운다. 집 선반 위에 나의 고상 작품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며 유럽에 진출한 나의 첫 작품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9월 1일 문화과학궁전 광장으로 나온 여정단은 지체 없이 퍼포먼스를 펼친다. 유지환 작가는 준비해 온 흰색 칠을 한 코트 뒷면에 ‘PEACE Over War’를 쓰는 작업을 하고 나는 조은성 작가의 비나리와 조성진 작가와 콜라보 작업 사이에 ‘허공에 PEACE 쓰기’를, 권영일 작가는 순간순간을 기록하면서도 준비해 간 PEACE 심볼을 들고 자기의 언어를 전달했다. 퍼포먼스 전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리플릿을 전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글들을 현수막에 적게 했다.

그렇게 첫 폴란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11시 리투아니아 빌니우스로 가는 야간 버스에 오른다.
9월 2일 새벽 여명을 버스 안에서 맞는다. 대지 위에 낮게 깔린 안개와 여명 사이의 풍경들이 을씨년스러운 초가을 모습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르샤바에서 첫날부터 힘들게 걸었던 터라 몸이 찌뿌둥해 다음 날 작업할 것들을 토론하고는 노곤함에 쉬이 잠에 빠진다.

9월 3일 맑은 아침. 빌니우스 대성당 뒤편 중세시대 빌니우스 어퍼캐슬의 고대 요새였던 게디미나스 성탑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펼치고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유지환 작가는 흰색 칠을 하여 끌고 갔던 여행용 가방에 PEACE OVER WAR를 손가락으로 쓴다. 바르샤바에서 흰색 외투 작업과 짝을 이루며 한 세트가 된 모습이다.

조은성 작가는 머리 위에 향을 꽂고 현수막 위에 앉아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듯 명상볼을 치며 시작했고 유지환 작가는 PEACE OVER WAR 외투를 들고 서 있다. 나는 은성 작가 머리 위의 향에 불을 피우고 ‘허공에 PEACE 쓰기’를 한 후 한지에 ‘전쟁보다 평화·Peace over war’를 쓴 후 붓을 들어 우리의 염원을 알리고 퍼포먼스를 마쳤다.
라트비아 리가로 떠나는 날, 갠 아침은 어젯밤에 뇌우를 동반했던 비가 무색하리만큼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다.
글·사진 = 심홍재 한국행위예술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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