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국회의원들이 대치 국면 속에서도 산업 지원에 뜻을 모은 것은 국내 제조업의 뿌리인 철강 산업이 미국의 ‘세금 폭탄’으로 경쟁력 잠식 위기에 몰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다.
미국 철강 업체인 US스틸 인수로 우회 수출이 가능한 일본, 일정 물량까지 관세 면제를 협상 중인 유럽연합(EU)과 달리 한국 철강 업계는 고율의 품목관세에 대한 피해를 온전히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전후방 연계 효과가 큰 핵심 산업인 만큼 철강 산업의 약화는 자동차·조선 등 연관된 핵심 수출산업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철강 산업을 전폭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이 여기서 나온다. 지난해 기준 철강의 수출액은 332억 달러로 반도체(1419억 달러)보다 낮지만 전후방 산업에 유발한 생산액을 표현한 생산유발계수는 2021년 기준 1.9로 반도체(1.3)보다 높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의원 100여 명이 4일 공동 발의하는 ‘K스틸법(철강 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 철강 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의 핵심은 대통령이 중심이 돼 철강 산업의 국가적 지원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법안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5년 단위의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재정 지원의 근거를 마련한 점도 중요한 항목이다. K스틸법에서는 탄소 중립을 위한 연구개발(R&D), 설비투자 등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기본법 성격의 법안인 만큼 구체적인 지원 예산의 출처나 방안 등이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후속 입법과 정부 예산 편성 과정에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국회철강포럼 여당 측 공동대표인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구체적인 세금 감면 등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후속 입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강 업계에 따르면 올 3월 25%, 6월 50%로 연달아 오른 미국의 품목관세 여파로 철강 업계는 심각한 수출 위기를 겪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관세 부과 영향으로 5월(-12.4%)부터 3개월 연속 수출 감소가 나타났다. 7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품목관세인 만큼 경쟁국도 같은 관세를 맞지만 일본의 경우 미국의 US스틸 인수를 통해 우회 수출할 수 있어 우리보다 유리하다. EU는 일부 철강사들이 미국 내 전기로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미국과 일정 물량까지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쿼터제를 도입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반면 대부분의 물량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한국은 별다른 우회 전략을 세우기도 어렵다.
K스틸법은 단순한 미국 관세 대응을 위한 차원을 넘어 탄소 중립 등 중장기 규제 과제에 대응한 지원책까지 촘촘하게 담아 산업 방패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미국과 EU 등은 탄소 중립 구현을 위해 2028년부터 본격적인 탄소세 부과에 나설 태세다. 이 법안은 녹색 철강 특구 지정, 탄소 중립 설비 지원, 녹색 철강 기술 세제 혜택 등을 명시했다. 녹색 철강 산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특임교수는 “철강 관세 50%보다 더 큰 문제는 탄소 중립 대응”이라며 “철강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탄소 중립 규제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책을 함께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인구 감소 구조하에서 인재 확보가 어려워지는 산업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외 인재 양성·확보 등 세부적인 내용을 촘촘히 포함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산업 지원을 위해 폭넓은 지원책을 다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위기 산업 지원을 위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 여야는 후속 입법 등에서도 합의를 기반으로 속도감 있는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어 의원은 “미국의 50% 관세 폭탄은 미국의 산업 공급망에 기여해왔던 우리나라 철강에 대해 사실상 ‘수입금지’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며 “이번 여야의 협치가 의미 있는 시도에 그치지 않고 국민 삶을 바꾸는 성과로 연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의를 주도한 국회철강포럼은 여야 의원 33명이 참여한 초당적 모임이다. 지역구에 각각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자리한 어 의원과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