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밤 사이 전 세계는 두 개의 총격 사건을 마주했다. 호주 시드니 본다이비치와 미국 브라운대에서 발생한 총격은 서로 다른 대륙에서 벌어졌지만 공포가 일상 공간을 침범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평범한 시민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는 폭력은 우리에게 테러와 증오가 더 이상 전쟁터나 국경 너머의 이야기가 아님을 새삼 확인해 줬다.
바다 건너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배경과 동기는 분석돼 곧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총격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폭력은 이미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서는 것 같다. 온라인 공간에서 출처 불명의 정보를 통해 증오와 음모가 확산되고 정치적·종교적·문화적 적대가 증폭되는 현재 미디어의 구조 속에서 폭력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나타난다.
테러와 전쟁은 본래 집단과 집단의 충돌을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폭력은 경계가 없다. 전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타임라인과 알고리즘을 통해 스마트폰 화면으로 일상에 침투하고 테러는 고립된 개인의 손에 쥐어진 채 공공 공간에서 무차별 실행된다. 증오는 더 이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추천되고 증폭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과연 중립적인 도구로 남아 있는가. 고도화된 알고리즘은 분노와 공포·적개심을 가장 빠르게 확산시키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고통은 화면 속에서 빠르게 타자화되며 인간의 감정은 데이터로 환원된다. 증오와 분노는 클릭과 체류 시간을 통해 수입과 영향력으로 교환되고 공감은 혐오로 빠르게 대체된다. 폭력은 어쩌면 물리적 총성이 울리기 훨씬 이전부터 디지털 공간에서 준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적어도 이제 곧,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AI)’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인간의 판단, 알고리즘의 계산, AI의 예측이 결합된 이른바 ‘복합 인텔리전스’ 환경에서 이에 대한 질문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러한 세상의 중심에 인간은 여전히 건재한가, 아니면 효율과 확산 논리에 의해 끊임없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가.
인도주의의 위기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생명의 긴 호흡보다 속도와 반응성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마우스 스크롤 몇 번으로 소비되는 타인의 고통과 데이터와 영상으로 분해되는 전쟁과 테러, 총격 사건 앞에서 인간을 보호해야 할 기술과 지능 체계는 오히려 인간의 존엄을 마모시키는 역설이 발생한다.
해답은 기술을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기술과 지능이 어디를 향하도록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폭력과 증오를 증폭시키는 구조에 대한 책임을 플랫폼과 사회가 함께 나누고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인도주의적 원칙을 기술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본다이비치와 브라운대에서 울린 총성은 단지 개별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과 테러·증오가 기술과 결합할 때 어떤 세계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휴먼 인텔리전스를 넘어선 복합 지능이 고도화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집요하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발전의 중심에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그 중심에서 어떤 인텔리전스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미래를 꿈꾸는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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