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미군 '8240 특수부대원' 활동한 김인수씨 별세

2025-04-05

6·25전쟁 때 미군 '8240 특수부대원' 활동한 김인수씨 별세

북한 피난민으로 구성된 비정규군으로 정보 수집 및 의무 활동

1965년 미국 이민해 의사로 활동…참전 60년 지나서야 공로 인정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6·25전쟁 당시 북한 피난민으로 구성된 미군 특수부대에서 활동했던 김인수 씨가 별세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시 부고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3월 31일 타계했다. 향년 92세.

김씨는 1932년 6월 23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인 김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의 종교 탄압을 피해 몸을 숨겼고 1950년 10월 평양을 탈환한 유엔군에 합류했다.

김씨는 2023년에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유엔군에 합류한 계기에 대해 "유엔군에서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저는 의학을 공부했고 조부님이 영어를 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군의 후퇴로 남쪽으로 피난했다가 1951년 미8군 제8240 부대에 입대했다.

그는 국군이 아닌 미군 소속이었고 미군 공식 문건은 김씨 같은 이들을 '북한 유격대'(North Korean Partisan)로 지칭했다.

이들은 북한과 가까운 동·서해안 섬을 기지로 삼아 적진에 침투해 첩보 수집, 보급로 타격, 포로 구출 등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8240부대는 켈로(KLO·Korean Liaison Office)부대로 한국에서 알려지기도 했지만, 김씨는 자신이 KLO가 아닌 TLO(Tactical Liaison Office) 소속으로 전술 정보 수집이 주 임무였다고 생전 설명했다.

그는 적군의 이동 경로와 무장, 지형 등에 대한 정보를 모았고, 의학을 공부한 덕분에 야전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일을 많이 했다.

그는 생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난 죽이는 게 싫어서 사람을 직접 쏘고 그런 것은 없다. 그러나 내가 제공한 정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있던 적진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수 동료가 전사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살아남은 게 "축복 같다"면서 "살려고 산 게 아니고 싸우다 보니까 어떻게 살았다"고 말했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 8240 부대원들은 한국군으로 배속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 출신으로서 미군에서 활동한 그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미군은 8240부대의 활동을 수십년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부대원들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다가 정전 후 약 60년이 지나서야 양국에서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2014년 8월 5일 척 헤이글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 명의로 감사장을 받았고 이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김씨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은 미국 시민권자라 미국 정부에서 참전용사 대우를 받고 있지만, 8240 부대원 다수가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채 숨지고 잊혔다며 크게 안타까워했다.

그는 "8240 부대원들이 여태까지 받을 수 있는 대우를 못 받고 살았다. 돈 한 푼 못 받고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고 말했었다

김씨는 한국군 의무부대에서 복무 기간을 채우고 제대한 이후 1965년 미국으로 이민해 사실상 빈손으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결핵환자 요양원에서 피 검사하는 일을 하다가 보스턴의 병원 연구실에 취업했고, 이후 워싱턴DC에서 동·서양의 의학을 접목한 병원을 45년 운영했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딸 원주씨와 아들 브라이언씨 등이 있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김동현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